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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사람들은 8편의 단편들을 모아놓은 소설집이다. 그러나 다른 내용으로 느껴지지않는다. 주인공 들이 비슷 아니 모두 똑같은 사람들이라고 봐도 무방하고 소설마다 비슷한 코드들이 지속적으로 나와서  연작으로 볼수 밖에 없다 작가는 다른 생각이있을 수있겠지만  내가 알아야할 이유가 없다.

박솔뫼의 얼굴을 이소섷에서 처음 보고 아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사람을 아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개는 박솔뫼가 아니라고 했다. 나온 학교도 다르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알았다고 하고 맥주를 사러 나갔다. 맥주를 안주없이 먹으며 책을 마저읽었다.

그런데 이소설이 어제읽은 정새랑의 이만큼 가까이와 이랑 비슷하다는  생각이들었다.
영화에대한 언급들 과 정치혹 사회문화에 치이는 사람들 주변에 주인공이있다는 점  외국어 하나이상은 할줄알거나 혼자 외국에나가서 아무문제없이 잘지내고 돌아오는 인물, 그리고 끝임없이 부유 하는 지식인 주인공 혹은 인물들. 서민적으료 묘사하지만  분명하게 흐르는 엘리트 스러운 분위기 페미스러운 느낌.

물론 정세랑과 박솔뫼가 이와같은 요소를 이용하는 방법은 다르다. 하지만 비슷한 부분도있다.

예를 들면 정새랑이 영화를 언급하고 영화계에서 일하는 주인공을 담은건 걍 영화계을 욕하고 싶고 히치콕을 까고 싶어서지만 박솔뫼는 광주로 내려가기위해서 친일파에대해 이야기하기위해서 이용하는 도구거나  주인공의 부유를 보여주기위한 장치 외국으로 나가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엘리트적 분위기를 내기위한  장치로쓰인다.  

그러나 사회상에대해 이야기하고 특정역사적 무슨의 사건을 이야기할때 보면 둘은 똑같은 선택을 내린다. 과거는 무조건 야만의시기 로 다루며 남자는 야만적 태도를 가지고있다. 그리고 무조건 그시대에 반대가 되어야만 옳다는 늬앙스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이게 소위 문화 엘리트 들이 역사를 바라보는 역사관이라는 것인가라고 생각을 한번 해본다. 정세랑의  이만큼 가까이에서 이런말이나온다. 서민들 편에 스는 사람이 타락을해도 그사람이없는 것 보다는 났다는 것이다. 그는 타락해도 서민의 보호자니까.  
박솔뫼는 재일교포 연쇄살인자와 동의대 사태를 쓰며 그들에게  모종의 면죄 아니 그시대는 그렇게해야만 말을 들어주던 야만의 시대였다 그러니 그들을 미워하지마라 적어도 그들은 너희들보다 시대에 도움이됐다는 감정을 들게한다.

그리고 나는 그때마다 꽤나 당혹스럽다. 내안의 서민근성을 건드려서일수도 있다. 하지만 무언가어색하다.

예를 들면 광주 민주화운동을 이야기하는데 혹은 친일파에대해 이야기하기위해서 전혀 그것과 상관없는 주변부 인물을 끌어들이고 그 사람과 비교해가며 혹은 그사람
경험담인것 처럼 한것  다큐멘터리적 요소를 가추고 쓴 거짓된 증언 극화된증언 으로 그시대에있었던 사건과 연결시켜서 무언가 헛헛 하게 보이고자하는 태도. 무언가 역사를 수정하려는 쿠엔틴 스러운 태도  하지만 호쾌함은 없고 수정만하려는 괴상한 태도가 그러하다.

왜 박솔뫼는 당당히 쓰지못하고 그주변부를 통해서 혹은 먼미래의 관찰자가 그사건에대해 다큐멘터리적 생각을 억지로 하고 특정 사건과아무연과도없으면서 광주만 내려가면 1980년을 생각하고 동의대 사건을 생각하게하고 일본에가면 친일파와 재일교포를 생각하게하는
정치병 환자 같은 인물을 평범하게 다룰려고 노력하면서도 그런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용기가 없었으면 이사건을 다룰려고 하지도않았겠지만.

단지 한국의 후일담 문학이라는 전통을 도저희 무시할수 없었던것인가. 그렇다면 박솔뫼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면 그전통 부터  깨부셔야하지않을까. 아니면 박솔뫼는 그사건과 아무상관도 없고 인간관계도 없는 다큐멘터리적 주인공을 내세우면서  인간관계들로 켭켭이쌓여있는 후일담 문학을 탈피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진짜 전화를 걸어서 묻고 싶을 따름이다.

이소설이 다루고있는 또다른 지점은 관습이다. 인물들이나 주인공들은  관습적 일상생활을 하고있다. 1월1일이면 온양온천에 가야 하는 인물 농구를 말하면서 농구에대한 관습 전수를 하는 과정에대한 서술하는 특정한 누군가하고만 자전가를 타야만하는 인물 부산남자하고만 연애를 하는 인물.

등등 모두 어떠한 관습이라도 있는 것처럼  거기에 지배당하는 사람처럼 묘사된다. 약간 불편한지점이있다면 모두 소설을 쓰기위해 조작된걱 같이 묘사된다는 점이다 어떤자연스러운 인간의 습관이아니라.
어떤 운명론에 의거한것처럼 묘사된다. 물론 단편이라는 한계가있어 그렇겠지만 그렇다고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도구적 으로 쓰인다고 본다.  

인물을 도구적으로 사용된다 는것이 나쁜것인가 생각을 하게하지만. 생연극 이라는 개념이 도입된이후로 일반적인 인물의 도구적 쓰임은  죽어있는 극이며 죽어있는 소설을 만든다. 그래서 하지말아야할 일이라는 의견이있다. 나는 그의견을 존중한다.

박솔뫼는 그의견을 전혀존중 안하는 것 같다.
오히려 죽어있는 것처럼 박제를 해야 표본적 가치가있고 책은 극이아니기에 살아있을 필요가없고 책은 오히려  표본에가깝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