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2cb3d466f2d336a26bad969a38fd0d13578608e5d7393521aa965fb71b84305ee8deafa5053d2a



시, 소설, 평론에 모두 능하다는 이장욱의 "기린이 아닌 모든 것"이라는 소설집을 읽고 있는 중이다.


누군가 원로 평론가가 하루키 이후로 모든 작가들이 하루키를 따라만 해서 그게 너무 싫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가

구설수에 올랐었는데,

사실 지금 상을 받고 매스컴에 소개되는 작가들의 대부분이 페미/퀴어/pc를 가지고 글을 쓰는 것처럼,

00년대 초반 쯤에는 분명 당시 데뷔를 하던 작가들에게 그런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고 느낀다. 


그리고, 이장욱에게서 하루키의 반도화가 비로소 완성에 가까운 모습이 된 것이 아닐까 라는 느낌을 받고 있다. 


사실 하루키 소설은 1Q84 이후로 보질 않아서, 무슨 소설이 어땠는지 잘 기억나질 않지만,

나에게있어 그 특유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 것 중 하나가

주인공의 처지, 마인드 셋이다. 

뭐 크게 부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생계가 곤란한 정도에 이르지 않는,

자신의 직업에서 더 큰 성공이나 발전을 이룰 생각은 별로 없는,

"(굳은 의지를 가지고 기필코)살아낸다" 나 "(질질 끌려다니면서 두들겨 맞지만, 그럼에도 어떻게든) 살아진다"가 아닌

"(그냥 살아있는니까) 살아간다" 같은 식의, 삶의 무의미, 인생의 공허함을 받아들여 체화한 자의 애티튜드에서 나오는 사색적인 쿨함이다. 


그리고, 이 소설집의 주인공들에게도 아직 절반밖에 읽지 않았지만, 동류의 태도를 느낄 수 있다. 


물론 하루키처럼 비현실적인 사건이 등장인물에게 벌어지고, 그게 등장인물을 변화시키고 

뭐 그런건 없다. 이건 각 소설이 거의 정확하게 50페이지 남짓 되는 단편소설이니까 말이다. 


다 읽고 별도로 감상을 쓸지는 모르겠는데 현재까지는

하루키에게 거부감이 없는 나로썬, 

안정적인 구도와 문장을 구사하는 편인 반도 작가도 그 엇비슷한 분위기의 글을 쓸 줄 안다는 것 자체가 반갑다. 


사족으로, 또 하나 좋은 점은

독자에게 뭔가를 전시하거나, 주입하거나, 강요하려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인공의 삶에 대한 태도처럼, 작가 역시 단지 독자에게 뭔가 그럴싸한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고,

독자 역시 거기서 운이 좋으면, 싱크가 맞으면,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뭔가 그럴싸한 걸 얻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것

난 그게 하루키 소설의 감상법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