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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사강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동명의 영화에서 세실 역을 맡은 진 세버그(네 멋대로 해라의 그 배우, 오른쪽) 와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로 먼저 만난 사강의 쉽고 감성적인 문체에 반해서 읽게 된 이 책은 정녕 이게 데뷔작이 맞나 싶을 정도로 놀라움 그 자체였다. 1인칭으로 쓰인데다 사강 본인이 이 책을 발표한 당시 나이를 알고 있는터라 마치 사강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지는 이 책은 무엇보다 매우 섬세하고 치밀한 감정 묘사가 돋보인다. 브람스…가 아니라 이 책으로 사강 문학을 시작해도 괜찮을 것 같다. 번역의 질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김난주(민음사 브람스… 번역한 사람) 가 번역해서 아르떼 출판사에서 나온 판본이 뒤에 사강의 짧은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기도 하니 추천할만하다. 

세실과 그의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정부 엘자로 시작한 어느때와 다름 없는 행복한 휴가는 죽은 어머니의 친구의 방문으로 인해 갑작스런 난관을 맞게 된다. 세실의 회상으로 시작하는만큼 액자식 구성을 취하는 이 소설은 소설 속 크고 작은 사건에서 세실이 느끼는 감정, 그리고 세실이 극 중 인물들에게 대하는 태도를 바탕으로 어느 여름날 벌어진 소동을 매우 섬세하게 그린다. 가장 놀라운 건 여러번 언급한 것과 같이 사강 그녀의 문체이지만, 치명적인 결말이 어느정도 예상되는 전개 속에서도 추진력을 잃지 않는 그 에너지 또한 언급할만하다. 

마지막으로 도입부 첫 문장과 결말부 마지막 문장의 기가막힌 매치가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시간의 흐름 상 일부 액자식 구성을 취하는 것과 별개로, 부드러운 비유의 문장으로 소설을 열고 거기에 완벽하게 대응하는 더없이 솔직한 문장으로 소설을 닫는 구성이 정말 훌륭하다. 밑에 간단히 그 문장이 포함된 문단을 옮겨 놓을테니 참고하면 좋을듯. 아무튼 이 훌륭한 소설을 다들 읽어봤으면 좋겠다.



나를 줄곧 떠나지 않는 갑갑함과 아릿함, 이 낯선 감정에 나는 망설이다가 슬픔이라는 아름답고도 묵직한 이름을 붙인다. 이 감정이 어찌나 압도적이고 자기중심적인지 내가 줄곧 슬픔을 괜찮은 것으로 여겨왔다는 사실이 부끄럽게까지 느껴진다. 슬픔, 그것은 전에는 모르던 감정이다. 권태와 후회, 그보다 더 드물게 가책을 경험한 적은 있다. 하지만 오늘 무엇인가가 비단 망처럼 보드랍고 미묘하게 나를 덮어 다른 사람들과 분리시킨다. (p11)

다만 파리 시내를 달리는 자동차의 소음만이 들려오는 새벽녘 침대에 누워 있을 때면 때때로 내 기억이 나를 배신한다. 그해 여름과 그때의 추억이 고스란히 다시 떠오르는 것이다. 안, 안! 나는 아둠 속에서 아주 나직하게 아주 오랫동안 그 이름을 부른다. 그러면 내 안에서 무엇인가가 솟아오른다. 나는 두 눈을 감은 채 이름을 불러 그것을 맞으며 인사를 건넨다. 슬픔이여 안녕. (p186)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