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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기서 말하는 이승우 작가는 축구선수 이승우가 아니다. 이렇게말하는 이유는 축구선수 이승우가 혹시나 나중에 책을 낼수도 있으며 제목을 이승우 라고 하여 혹여 낚여서 들어온 사람이있을까봐서 쓴 배려다. 축구선수 이승우를 검색해서 이글을 봤다면 불고기 백반을 먹으면서 함께 이승우의 미궁에 대한 추측을 주문하고 소주 한잔때리는 걸 추천 한다.
2. 이승우는 아빠가 어린시절 사망하셨고 그로인해 히키적 생활을 오랬동안했다고 한다. 학벌은 부천 소재 신학대 출신이고 대학원은 연대연합 신학원 중퇴자다. 아무튼 기독교적 신학이 만빵이라는 거다.
3.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히키적 감수성이 매우 풍부히 무더난다. 아마 일본 라이트노벨에서 나오는 뭔가 해결될수 있어보이는 히키적 감수성이아니라. 진짜 결코 돌이킬수 없을 정도의 히키적 감수성이다. 원래 상업적이라는게 다그러하지않은가 진짜를 파는 것처럼 속이고 가짜를 판다. 하지만 이승우는 절대 그러한 짓을 하지않는다. 다만 히키적 감수성이 너무나 강해서 그가 어떤소재로 글을 써도 그소재가 뭍혀버려서 매력도와 상업도가 떨어진다.
이유는 이승우 작가는 사회 반항적, 저항적 이라기보다 사회순응형 적 인물들과 이야기를 주로 하기때문이다.
물론 거기서 피어나는 아이러니와 인간 군상들이 있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기독교적 색체를 느낀다. 기독교 적 세계관에서는 순응을 하든 반항을 하던 가 흔들리던가 상관없이 결국 신이 제시한 질서 앞에 무릎이 굻을수 밖에없다.
그러면서 단순 히키 소설 로 끝날수 있던 글에 풍미와 이러니를 안겨준다. 물론 그방식은 책마다 달르고 읽는 사람 성격에 따라서는 존나 빡치기도 하고 주인공을 죽여버리고 싶게만든다.
하지만 질서에 굴복 하는 인간이라는 작가의 테마를 생각하다보면 어쩔수 없는 거 이것이 기독교적 알레고리를 차용한 작품들의 한계가 아닐까한다.
4. 기독교적 알레고리의 세계는 무조건 적 복종과 무조건 적 믿음의세계다. 이릉 어기면 문제가 터지고 악인이된다. 어떤부당한 명령이라도 다들어야한다.
목숨을 원하신다면 목숨을 드려야하고 아들을 원하시명 아들을 드려야한다. 흔들이면 안된다. 흔들리면 문제가 시작되고 그것에대해 용서를 받기위해서는 희생을 치뤄야한다. 희생이 어떤것이든 모른다. 성경에 자주나오는 대로 국가멸망이나 유대인 노예화일수도 있고 종류야 많다. 그러나 언제나 신은 용서를 해준다. 그래서 혹자는 기독교는 잔인하고 비정하다고 말한다. 내가 생각해도 그러하다. 그런알레고리를 차용한 이승우의 소설도 잔인하다고 볼수 있다.
5. 사실 아이러닉한 부분이다. 이승우의 소설이 잔인하다라는 건 왜냐 그의 소설 대부분은 쏘우나 여차장르소설 에서 이제는 흔하게 보이는 작혹한 묘사가 나오지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부분을 말할때마다 항상 사람들과 의견 마찰이일어난다. 보통 사람들은 누군가가 죽고 그 시체나 살인이나 죽음의 모습이나 기타등등이 잔혹하게묘사가되어야 잔인하고 무정 하다고 느끼기때문이다. 이승우처럼 현실에서도 능상 벌어지는 일이나 묘사 정도로는 그러한걸 느끼지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일상에서 얼마나 잔인하고 무정한 악한의 행동으로 살아가는 지 잊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선인인가? 사람만 안죽이면 선인인가? 서울역 노숙자에게 밥이라도 준적있는가? 차별대우 하지않나 학력이나 학벌 나이 외모 호감 유무로 싫어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매장 시킬려고 하고 무시하고 만만하게보고 골탕 먹이려고하고 이이제의하면 역으로 지랄하고 괴롭히고 다하지않는가.
물론 다 그럴듯 한 이유가있을 것이다. 그런데 살인도 다 이유가있고 사람을 고문한 사람도 고문에 다이유가있다. 그사람이 악마라서 살인하고 고문 하고 강간 하고 그러는게 아니다. 만약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했다면 자기를 한번 돌아보는게좋을 거다. 나는 기회가있었으면 얼마나 많은 살인과 강간과 고문을 타인에게 했을지 그 기회가 얼마나 많았을지 한번 생각해보기바란다.
6. 물론 이승우의 소설에서 이러한지점이들어나는 건 절대적 믿음의 현실 즉 일반적 이미지의 세계의 질서를 거부하거나 흔들리거나 여러가지이유로 훼손당하거나 할때일어난다. 이말은 일반적 이미지의 세계가 유지가된다면 우리는 별일없이 행복하게 살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깨지면서 우리는 고통 받는 세계 갈등의 세계로 들어가 용서를 받아야 하기때문이다. 그리고 용서를 받기위해서는 희생을 치루어야 한다. 희생은 언제나 잔인한법이다.
7. 이런 측면으로 보면 어딘지모르게 전체주의 냄새가난다.
절대 복종 절대 구원을 파는 종교인 기독교에는 그러한 측면이 존재라고 그런 알레고리를 이용해 소설을 쓰는 이승우의 소설에서 그런 측면이 뭍어나오는 건 어쩔수가 없다. 거기다 이승우는 포교를 기반으로 해서 강건한 신앙인을 만드는 걸 목표로하는 연대련합신학원 출신이니 더욱더 그럴수밖에없다. 물론 이승우는 그렇게생각하지않을수있다.
8. 끝이다.
2. 이승우는 아빠가 어린시절 사망하셨고 그로인해 히키적 생활을 오랬동안했다고 한다. 학벌은 부천 소재 신학대 출신이고 대학원은 연대연합 신학원 중퇴자다. 아무튼 기독교적 신학이 만빵이라는 거다.
3.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히키적 감수성이 매우 풍부히 무더난다. 아마 일본 라이트노벨에서 나오는 뭔가 해결될수 있어보이는 히키적 감수성이아니라. 진짜 결코 돌이킬수 없을 정도의 히키적 감수성이다. 원래 상업적이라는게 다그러하지않은가 진짜를 파는 것처럼 속이고 가짜를 판다. 하지만 이승우는 절대 그러한 짓을 하지않는다. 다만 히키적 감수성이 너무나 강해서 그가 어떤소재로 글을 써도 그소재가 뭍혀버려서 매력도와 상업도가 떨어진다.
이유는 이승우 작가는 사회 반항적, 저항적 이라기보다 사회순응형 적 인물들과 이야기를 주로 하기때문이다.
물론 거기서 피어나는 아이러니와 인간 군상들이 있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기독교적 색체를 느낀다. 기독교 적 세계관에서는 순응을 하든 반항을 하던 가 흔들리던가 상관없이 결국 신이 제시한 질서 앞에 무릎이 굻을수 밖에없다.
그러면서 단순 히키 소설 로 끝날수 있던 글에 풍미와 이러니를 안겨준다. 물론 그방식은 책마다 달르고 읽는 사람 성격에 따라서는 존나 빡치기도 하고 주인공을 죽여버리고 싶게만든다.
하지만 질서에 굴복 하는 인간이라는 작가의 테마를 생각하다보면 어쩔수 없는 거 이것이 기독교적 알레고리를 차용한 작품들의 한계가 아닐까한다.
4. 기독교적 알레고리의 세계는 무조건 적 복종과 무조건 적 믿음의세계다. 이릉 어기면 문제가 터지고 악인이된다. 어떤부당한 명령이라도 다들어야한다.
목숨을 원하신다면 목숨을 드려야하고 아들을 원하시명 아들을 드려야한다. 흔들이면 안된다. 흔들리면 문제가 시작되고 그것에대해 용서를 받기위해서는 희생을 치뤄야한다. 희생이 어떤것이든 모른다. 성경에 자주나오는 대로 국가멸망이나 유대인 노예화일수도 있고 종류야 많다. 그러나 언제나 신은 용서를 해준다. 그래서 혹자는 기독교는 잔인하고 비정하다고 말한다. 내가 생각해도 그러하다. 그런알레고리를 차용한 이승우의 소설도 잔인하다고 볼수 있다.
5. 사실 아이러닉한 부분이다. 이승우의 소설이 잔인하다라는 건 왜냐 그의 소설 대부분은 쏘우나 여차장르소설 에서 이제는 흔하게 보이는 작혹한 묘사가 나오지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부분을 말할때마다 항상 사람들과 의견 마찰이일어난다. 보통 사람들은 누군가가 죽고 그 시체나 살인이나 죽음의 모습이나 기타등등이 잔혹하게묘사가되어야 잔인하고 무정 하다고 느끼기때문이다. 이승우처럼 현실에서도 능상 벌어지는 일이나 묘사 정도로는 그러한걸 느끼지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일상에서 얼마나 잔인하고 무정한 악한의 행동으로 살아가는 지 잊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선인인가? 사람만 안죽이면 선인인가? 서울역 노숙자에게 밥이라도 준적있는가? 차별대우 하지않나 학력이나 학벌 나이 외모 호감 유무로 싫어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매장 시킬려고 하고 무시하고 만만하게보고 골탕 먹이려고하고 이이제의하면 역으로 지랄하고 괴롭히고 다하지않는가.
물론 다 그럴듯 한 이유가있을 것이다. 그런데 살인도 다 이유가있고 사람을 고문한 사람도 고문에 다이유가있다. 그사람이 악마라서 살인하고 고문 하고 강간 하고 그러는게 아니다. 만약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했다면 자기를 한번 돌아보는게좋을 거다. 나는 기회가있었으면 얼마나 많은 살인과 강간과 고문을 타인에게 했을지 그 기회가 얼마나 많았을지 한번 생각해보기바란다.
6. 물론 이승우의 소설에서 이러한지점이들어나는 건 절대적 믿음의 현실 즉 일반적 이미지의 세계의 질서를 거부하거나 흔들리거나 여러가지이유로 훼손당하거나 할때일어난다. 이말은 일반적 이미지의 세계가 유지가된다면 우리는 별일없이 행복하게 살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깨지면서 우리는 고통 받는 세계 갈등의 세계로 들어가 용서를 받아야 하기때문이다. 그리고 용서를 받기위해서는 희생을 치루어야 한다. 희생은 언제나 잔인한법이다.
7. 이런 측면으로 보면 어딘지모르게 전체주의 냄새가난다.
절대 복종 절대 구원을 파는 종교인 기독교에는 그러한 측면이 존재라고 그런 알레고리를 이용해 소설을 쓰는 이승우의 소설에서 그런 측면이 뭍어나오는 건 어쩔수가 없다. 거기다 이승우는 포교를 기반으로 해서 강건한 신앙인을 만드는 걸 목표로하는 연대련합신학원 출신이니 더욱더 그럴수밖에없다. 물론 이승우는 그렇게생각하지않을수있다.
8. 끝이다.
팩트) 작가 이승우는 축구 선수였다.
팩트)여기서 말하는 이승우는 불백 좋아하는 그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