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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키워드는 꿈이다. 책의 뒷표지부터 본문까지 온갖 텍스트이 형식으로 이를 강조하니. 작가는 이 소설에서 꿈을 몹시도 긍정한다. 기괴함과 환상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갬성적 도구로써의 꿈 말이다. 이는 작중 등장인물들의 입과 상념을 빌려 직접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인지 소설의 태반은 어떤 서사나 무대없이 꿈처럼 알 수 없는 묘사와 문장들로 가득하다. 등장인물들의 삶을 보여주는 여러 단서들이 종종 등장하기도 하지만, 이내 꿈의 표현이라는 어휘들에 밀려 사라진다(이전에 배수아의 현실을 바라보는 편협함을 지적한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이 소설은 그런 편협함도 드러나지 않는다. 이데올로기니 젠더니 하는 것들은 전부 몽상 속으로 빠져나가 버린다). 소설이 보여주는 것은 누군가의 꿈을 활자로 읽고 있다는 하나의 경험이다.

배수아는 힙스터 기질이 다분한 젊은 층에게 사랑받는 작가라고 알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의 힙스터들이 제일 좋아하는 건, 파스텔톤 세일러문 프로필 사진과 같은 갬성으로 꾸며진 꿈과 같은 몽실몽실한 환상성의 요소들이다. 환상성의 추구가 이 작가의 단단한 팬덤을 만들어 낸 것일까? 그렇다면 이 소설은 오늘날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정신분석의 보고서로서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시, 앞서 읽었던 정영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소설은 그저 제시만 할 뿐 탐구는 하지 않는다. 꿈의 세계? 좋다. 그래서 그 꿈의 세계를 경험하는 인간은 어떻게 실존하는가? 적어도 그에 대한 답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이 소설의 독자는 테마파크와 같은 드림랜드를 즐기다 나오면 될 뿐, 독자에게 테마파크 자체에 대한 질문은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소설이 추구하는 것은 꿈과 환상, 그리고 카프카식 세계관의 분위기에 대한 무한한 긍정일 뿐, 그 긍정을 영혼의 먹이로 살아가는 인간들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만일 꿈이라는 요소에 매력을 느끼는 인싸-힙스터 성향의 독붕이라면 취향에 맞겠고, 그냥 독붕이라면 그닥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