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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의 문학
독자의 수용 방식이 변화했다. 한국 문학은 이 기조에 발맞추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한국 문학의 종말’을 얘기하지 않으려 한다. 황정은, 김금희의 작품들은 때때로 압도적인 현실감을 띤다. 정지돈, 오한기, 이상우와 같은 작가들은 독특한 문법으로 자신만의 가상을 구현하기 시작했다. 서이제, 신종원과 같은 신예 작가에게도 기대를 걸어볼만 하다. 한국엔 아직 뛰어난 작가가 많다. 다만, 여전히 ‘재현’이란 올드한 방식으로 예술을 끌어내리려 드는 비평과 철지난 리얼리즘, 실험주의를 관철하려 드는 문단에 문제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만큼 실상 한국 독자의 무관심은 K문학의 종말이 아닌 K문단의 종말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디지털 시대가 도래했다. 이 글은 독자의 요구가 달라졌음을 말하기 위해 썼다. 하지만 변한 것은 단순히 수용 방식만이 아니다. 글을 끝내며 한 가지 다른 이야기를 꺼내려 한다. 발터 벤야민은 20세기 “독자와 필자의 구별은 신분적인 것에서 기능적인 것으로 바뀌었다”라 말한 바 있다. 지난 세기는 능력이 된다면 누구나 쓸 수 있는 시대였다. 이젠 다르다. 21세기, 독자와 필자의 구별은 기능적인 것에서 욕구에 의한 것으로 변화했다. 능력이 없더라도 얼마든 말할 자유가 오늘날엔 존재한다. 이제 독자도 무엇을 읽길 원하는지 강력히 주장해야만 한다. 독자-작가의 관계가 다시 회복될 때 우린 자기만의 뚜렷한 세계를 가진 작가를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다.
교조적 태도부터 버려야됨.. 느덜은 독자한테 선택받는 입장이지 가르치는 입장이 아니란걸 알아야 되는데 똥팔육 찌꺼기들이 아직도 모르고 있는 것처럼 그걸 알지가 미지수
그러니까 현실을 재창조하지 못하고 단지 재현하려하기 따문이라는 말임?
재현 아님 파괴, 이분법에 빠져있단 말이지
흥미롭게 읽었다. 잘 봤다
니가 쓴겨?
ㅇㅇ
선추 때리고 일단 나중에 읽어본다.
잘 읽었음. 그럼 결국 문제는 재현에 매달리는 구태의연한 관점이라는 건가? 그런 맥락에서 오늘날 상당수 소설과 심지어 김사과 같은 유의 실험소설의 실패는 여전히 현실의 재현을 문제시하는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고? 이런 사태들의 배경에는 디지털 시대의 미디어/콘텐츠 수용 방식이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흐리는 방식으로 나타난다는 게 있는 거고... 이는 곧 '현실보다 현실적'이거나 '아예 현실을 넘어선' 차원의 경험을 독자들이 문학에서도 마찬가지로 요구한다는 거고???
그런것 같음. 근데 더 근본적으로 작가들이 재현을 문제시하는 이유는 현실과 가상을 명확히 구분하려는 태도에 있다는 게 내 생각임. - dc App
근데 나는 극사실주의적인 소설이나 초현실주의적인 소설의 형태를 왠지 정확히 떠올리기가 어렵네. 몇몇 젊은 작가들을 언급해줬는데, 얘네가 쓰는 글이랑 님이 비판하는 재현에 종속된 소설들하고 어떻게 다른 건지 모호하게 느껴짐
현실/가상 경계의 무화는 나도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긴 한데, 그냥 이렇게 얘기하기는 좀 막연하고.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무는 소설은 어떤 방식으로 쓰일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좀더 나와줬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듦
원래는 노벨상 수상작들이랑 구체적으로 비교하려했는데, 글 분량이 너무 길어서 다 지움 ㅈㅅㅈㅅ - dc App
한강이랑 앨리스 먼로, 조남주랑 바르가스 요사, 김사과랑 페터 한트케를 비교해서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싶었음. 요지는 독자가 말하는 '재미'가 새로운 경험에 있는데, 해외에서 인정받는 작가들은 새로운 가상을 충실하게 만드는 반면 한국 작가는 그 가상을 핍진하게 구성하는 능력이 모자라단 말이었음 - dc App
예컨대 정지돈을 비롯해서 정지돈과 같이 묶인 작가들은 재현의 전면적인 포기를 이미 염두에 두고 글을 쓰는데, 그래서 화자가 작가와 겹치는 경우가 상당히 많고 파스티시라고 해야 할 듯한 텍스트의 무차별 인용도 많음. 그렇다면 이러한 종류의 글쓰기가 소위 surreal한 글쓰기인가? 근데 그렇다면 노래, 소설, 영화 등을 소설에 인용하는 (아마도 하루키에게서 수입한 듯한) 지적인 소설 쓰기의 전통은 이전에도 있었는데 그런 것과 작금의 파스티시는 어떻게 다른지...
하긴 하나의 글에서 다루기에는 지나치게 방대한 분량, 내용이긴 함ㅋㅋ 나중에라도 써주면 좋겠음. 아무튼 '새로운 문학적 가상'은 과연 어떠해야 하는지 정말 어렵네. 최근에 소설을 구상하고 있어서 더 고민되는 내용이라 세세하게 캐물어봤음
다음 글은 말한 대로 글쓰기 방법론적인 측면에서의 비교가 들어가면 정말 양질의 분석이 될 듯. 해외 작가하고 비교도 좋고 국내 작가 중에 님이 좋게 평가하는 작가를 다뤄도 좋지 않을까 싶음
구체적으론 기법보단 작가의 관점이 변했다는 말임. 김사과, 이기호같은 작가들도 시나리오를 삽입한다든지, 외부 인용을 가져온다던지 하는 기법 자체는 정지돈, 오한기랑 비슷함. 그보단 문학 자체를 대하는 관점이 달라짐 - dc App
변하지 않는 현실이 있고, 그걸 반영하거나 파괴하겠다는 태도. 오한기는 대놓고 한국에서 총 이야기를 꺼내는데, 여기에 대해 구태여 정당화하려는 기미가 없잖아. 이런 은연중에 드러나는 작품의 태도를 말하고 싶었음. 나도 급하게 써서 분석이 좀 모자라보이긴 한듯. 이것도 이미 10000자 가까운 분량이라 다음 기회에 다루는 걸로 ㅠ ㅠ - dc App
총 얘기하니까 우마 서먼이 비행기에 칼차고 타게 한 영화 킬빌 생각도 나네. 아무튼 자유분방하게 상상의 나래를 펴느냐, 아니면 현실의 제약을 알게 모르게 받고 있느냐의 차이라고 봐야 할는지... 소설에 어떻게 적용하느냐 하는 문제는 정말 너무 어렵긴 한 듯
잘 읽었음. 솔직히 한국소설 읽으면서 사회를 너무 충실히 반영하고 재현할 필요가 어디 있나 싶은데 주제의식이나 메세지도 사회로 너무 나아가려 하고... 그런 부분을 제법 잘 긁어준 듯
게이야 2편 어따 팔아먹었노?
어디 문예지에다 싣고 싶은 글이네오 홍홍
월간독갤에 실릴 글입니다 헤헷/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계몽주의도 한 가지 현상인데, 그보단 더 근본적으로 작가들이 현실과 가상을 따로 떼놓고 생각하려는 것 자체가 문제란 얘기였음. 그 때문에 계몽주의, 실험주의, 재현주의, 참여주의가 파생된다는 말이었고. 잘 읽은 듯
근데 왜 그렇게 된거라고 생각함? 왜 사실을 소설로 재창조할 능력을 가지지 못한 자들이 소설가를 하고 있는걸까? 바꿔말하면 사실을 소설로 재창조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가 더 정확한 질문이겠네
'사실을 소설로 재창조해야한다' 이게 기존 문단의 관습이고, 그러다보니 그런 류의 작가만 뽑고 있는게 문제라 생각함. 디지털 시대 소설가가 가져야하는 태도란 '현실이 소설과 별개로 존재하고, 내 소설이 현실에 뭔갈 이뤘으면 한다'가 아니라 '나는 세계를 이렇게 해석한다' 내지 '내 세계는 이렇다'라 생각하고. 자꾸 현실 세계와 소설 세계를 분리해놓고 어느건 참여고 어느건 순수니 하는 게 문제가 아닐까.
아, 내가 재창조란 말 뜻을 조금 착각한듯. 재현과 다르게 새로운 가상을 만든단 의미에서 재현이 아니라 재창조라 표현을 썼네. 어쨌든 기본적으로 '세계와 현실의 분리'가 큰 문제라 생각.
조금만 더 다듬고 양도 채워넣으면 훌륭한 논설문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100%!
재밌게 읽었음. 재현장치로서의 위력을 갖고 있던 근대문학은 막을 내렸고, 다시 가상과 재미의 영역으로 회귀했다는 가리타니 고진-조영일도 떠오르고...
님이 쓴 글 보고 레퍼런스 찾아보다 쓰게 됐음. 다만 조영일은 순수하게 재미만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 같은데, 그런 취지로 쓴 건 아니었음. 암튼 ㄱㅅㄱㅅ
한국 문단의 빈약함은 미학의 방향 문제라기보다는 깊이 문제 같음. 그 어떤 '새로운 것'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학 전통의 편협함 때문에 망조가 든 느낌. 요즘 한국 작가들은 2문장을 제대로 연결시킬 줄 아는 작가들이 안 보여. 번역 문학이 훨씬 더 강력한 문장력을 보여주기 때문에 한국 문학이 경쟁력이 없는 듯.
현실과 가상 간의 관계 같은 문제들은 서구 리얼리즘의 발달 과정에서 이미 다 거쳐 간 단계. 빠르게는 18세기 말-19세기 리얼리스트들의 문제 의식이 20세기의 벤야민 같은 이론가들의 문제 의식을 폭이나 깊이 면에서 능가한다고 봄. 20세기의 문예 이론은 리얼리즘의 깊이를 해명하거나 변주하는 역할을 했을 뿐.
돈 키호테부터 시작해서 현실과 가상을 가로지르는 '사실'의 세계의 표현으로서의 서구 리얼리즘 문학은 놀라운 것인데, 다만 한국식 리얼리즘이 그 깊이를 따라가지 못할 뿐.
사실 리얼리즘이 별 게 아니라 결국에는 현실이든 환상이든 실감나게 묘사하자는 걸로 귀결되는 인식론인데, 이 서구적인 '실감'의 감각이 충분한 문학적 전통이 없는 문화권의 작가들에게는 도달하기가 힘든 기적과 같은 영역인 것. 그래서 한국 작가들이 뭘 묘사하든 서구 고전 작가들에 비해 평평하고 납작하고 조잡하고 지루할 수밖에 없는 듯.
글쎄, '실감'이 문학적 전통으로 해명될 수 있는 부분인가, 한국 문학의 부진이 단순히 실력의 문제로 치부할 수 있는가, 고민할 부분이 많음. 한국에도 문장딸은 오지게 치는 작가들이 많고. 현재 활동하는 작가만 보더라도 박형서, 이승우, 한강, 황정은, 김금희 다 문장에 치중하잖아. 서구 문학은 영화와 접목하면서 한 단계 더 발전했음. 님이 말한 것 처럼 단순히 '실감'나는 것만 표현하던 20세기에서 21세기로 들어오며 오히려 '실감'나지 않는 작품, 환상적인 분위기와 몽롱한 느낌을 강조한 작품이 늘고 있음. 근 10년 노벨상 수상작품을 보더라도 초현실, 극사실의 문법을 취하고 있고. 이런 좋은 해외 작품을 보고도 한국 비평가의 해석을 읽고 짜게 식은 적도 많거든.
캐나다 문학은 그 전통이 거의 없이 출발했는데도 불구하고 앨리스 먼로나 마거릿 애트우드가 등장했고, 아프리카, 터키, 중동, 중국 등 전통과 관계 없이 발군의 작가들이 나온 걸 보면 확실히 작가 자체의 문제라기보단 '작가와 독자 사이 관계', '작품을 해석하는 비평가들의 문제' 로 봐야한다고 생각함.
당장 한국 고전 작가들이 해외에서 은근히 고평가 받는 걸 보면, 근 10년 사이 부진은 단순히 한국 문학 전통의 부족이나 작가 실력이 안되는 걸 넘어서는 체질적인 문제가 있음. 난 그게 작가를 구성하는 미학의 문제에 있다고 봤고. 그래도 최근 작가들이 열일해주고 있어서, 난 아직 희망이 밝다고 생각함
이건 창작자들 본인들이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일 텐데, ['실감'이 나지 않는 것, 환상적인 분위기와 몽롱한 느낌]을 "실감 나게" 표현할 수 있게 된 게 리얼리즘의 결정적인 성취들 중 하나인 거지. 예를 들어 김현도 "흐릿한 이미지를 '명료하게 불명료하게' 표현해야 한다"고 한 게 이런 의미. 리얼리즘이 현실의 재현을 의미하는 것이고, 가상, 환상, 추상은 리얼리즘에 속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음. 그리고 캐나다 문학은 영문학에 속하고, 마이너 언어권에서 좋은 작가가 나오기 어려운 까닭은 무엇보다도 문학 전통의 부재 때문이지.
그리고 문학 전통이란 서구 문학의 수입 전통만을 의미하는 게 아님. 터키, 중동, 중국의 인문학적 토양이 한국 같은 불모지와 비교가 되나? 한국 문학 전통의 편협함에 대해서는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327409
이 글에서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문장딸과 명문장 사이에는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심연이 있고, 그 심연을 건너가려면 튼튼한 다리(충실한 문학적 전통)가 있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야.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새로운 미학에 대한 추구보다 고전 문학에 대한 충분한 소화가 우선시되어야 할 듯. 전통이 없으면 발전에 여러 가지 한계가 있음. 원리를 파악할 수 없고 결과물만 모방하게 되니.
고전에 대한 이해가 선행해야한다, 이걸 부정하는 건 절대 아님. 다만, 시가 아니라 적어도 소설 쪽에선, 난 한국 문학 전공자들이 충분히 공부하고 있다 느꼈음. 오한기, 정지돈은 레퍼런스가 충분한 작가고, 이청준-윤후명-이승우로 이어지는 작가들도 해외 고전에 대한 이해가 출중함 - dc App
글고 용어상의 문제지만, 님이 표현하는 건 리얼리즘보단 기법의 탁월함을 설명하는 듯. 리얼리즘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을 말하는 주의고, 상황에 맞는 적절한 기법이 사용된다, 가 적절한듯. - dc App
근데, 내가 미학의 문제를 얘기한 건 비단 한국 문단만이 아님. 프랑스, 미국, 일본, 중국, 님이 금방 말했던 전통이 풍부한 국가에서도 뉴페이스가 부족하다, 실력이 모자라단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고, 그건 또 어디서 비롯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듯 - dc App
세계적으로 문학이 위기에 처했는데, 20세기 작품들 중 현대 디지털 미학에 부합하는 작품만 다시 발굴되는 상황이라 봤음. 일본 순문학계도, 미국 순문계도 나름 고충을 겪고 있다는 글을 예전에 봤거든. 그렇기에 더더욱 전통, 공부 부족의 문제는 아닐거라 봄 - dc App
ㅇㅇ 리얼리즘은 기법인 동시에 세계관이지. 그리고 리얼리즘이 근본적으로 현실의 영역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즉 현실과 가상의 구분을 허무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지. 카프카도 리얼리즘이고, 조이스도 리얼리즘이고. 우리가 경험하는 환상, 상상, 관념을 현실의 일부로 편입시킨 게 리얼리즘의 주요한 역사적 공헌이었고. 세계적으로 문학이 위기를 겪고 있는 건 맞는 말인데, 그 위기의 원인은 고전적 문화 감각의 망각에 있는 것이기도 하고, 미학적 편협성에 있는 것이기도 하고, 사실 둘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문제겠지.
어쨋든 좋은 글을 써줘서 고맙네!....... 오랜만에 좋은 글을 읽었구먼.
https://m.dcinside.com/board/twitter/816491
저어 궁금한거 있음. 독자들이 재현을 넘어서길 요구한다고 했는데 사실 서점에서 잘 팔리는 순위건 책들은 퀴어-페미니즘 소설이 맞자늠. 심지어는 독자의 요구에 그토록 민감한 서브컬쳐계마저 피씨와 페미니즘을 필수요소마냥 하나씩 끼고 있고... 어떤 근거로 독자의 요구가 그 밖에 있음을 주장하는거임?
아 내가 비평이나 미학쪽 용어는 잘 몰라서 잘못 이해한건 바로바로 말해주면 매우 감사하겠음
페미니즘-퀴어 소설은, 2부 보면 알겠지만 현실을 '재현'하는 문학이 아니라 현실의 일부를 잘라내고 편집해서 메세지에 부합하는 가상을 만드려는 노력으로 봐야함. 퀴어 소설의 독자 다수가 퀴어가 아니라는 사실에서, 독자가 바라는게 실은 재현보단 나름의 '현실성을 갖춘 가상'에 가까운 거지 - dc App
모든 페미니즘-퀴어 소설이 그렇다는 건 아니고, 강화길, 조남주, 전하영, 박상영 등 요새 잘나가는 작가가 쓰는 페미니즘-퀴어 소설이 그렇단 말임. 아니 에르노도 페미니즘 서사를 쓰는 작가지만, 현실을 편집하려하진 않거든. - dc App
이 때 편집이란 건, 메세지에 부합하지 않는 인물, 사건이 작중에 일절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말하는 거임. 대표적으로 82년생 김지영의 경우 여성 캐릭터는 모두 핍박받는 인물로, 반면 남성 캐릭터는 모두 억압하는 - 속어로 말하자면 '한1남'으로 드러나는데, 이런 평면성이 작위적인 편집에서 나오는 거지 - dc App
정리하자면, 독자들이 페미니즘 소설에서 원하는 건 얼마나 현실에 가깝냐가 아니라, 여성이 얼마나 억울한 일을 겪는지를 보여줘라이고, 거기에 값싼 분노를 표출하고 싶은 거지. - dc App
자세한 답변 압도적 감사! 내가 그동안 페미니즘 소설 읽으며 느낀 이질감이 뭔지 알 것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