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데미안과 에마 부인의 존재부터 시작해 여러 부분들이 좀 작위적이라고 생각함
많은 사람들이 데미안을 읽고 지루해하거나 재미없다 느끼는 건 그 성장의 과정에서 공감하지 못하는 저런 부분들 때문인 거 같음(살면서 자신을 고난에서 구원해주는 초월적 친구나 플라토닉한 사랑의 대상, 그들 과의 정신적 통합 등을 경험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에 비해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 데미안에 비해 좀 더 공감의 여지가 많다고 봄
어린 시절 선생보다 더 높은 권력에 꼰지르며 얻는 쾌감과 그것이 어른들에겐 장난으로 받아들여지는 맥락을 깨닫게 되는 성장, 자신의 꿈과 진로를 고민하고 이를 확신하는 에피파니적인 순간, 집단 정신에 속하기 싫어하는 반골 기질 등등 좀 더 성장 소설의 정의에 잘 부합하지 않을까?
그러니 앞으로 독갤 공식 성장 소설은 젊예초로 하자. 그리고 모두가 젊예초를 읽게 되는 날 독갤은 율리시스에 한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야
금각사로 해야지
오히려 데미안에 등장하는 그 데미안이 자신의 반쪼가리 내부인 것을 인지하는 과정을 보여주니 엄연한 진짜 의미의 성장소설 아닐까?
하지만 그 반쪽의 초월성이 너무 과하다 생각함
외부와의 대립이나 반골 기질을 겪어가며 크는 성장소설도 있지만, 데미안은 자기자신이 나날이 명확해지는 타입의 성장소설 아니냐
본인의 내적, 정신적 성장에 치중한 건 맞지. 하지만 난 그 내적 성장이 지금와서는 공감하기 힘든 면이 있다 생각해서.
내 생각에 그 정도의 초월성을 적시하지 않았다면 되려 그저 그런 소설이 되었을 거라 생각. 오히려 에바부인이나 데미안의 -현실과는 잘 와닿지 않는 그런 절대성이 주인공 내부에 자기자신도 모르고 있던 어떤 부분을 일깨우는 것이 아니었나
소설 내에서는 그런 장치의 역할을 하지. 하지만 솔직히 개인이 성장하는 경험에서 내적인 초월성에 의지한 정신적 상승을 느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은 거임. 황야의 이리도 그렇고 데미안도 그렇고 헤세의 소설들은 너무 정신적인 영역에 매몰된 것이 단점이라고 생각함.
나는 시대를 불문하고 데미안의 플라토닉함과 자기자신의 다른 부분, 고매한 부분을 일깨우고자 하는 시도는 살아남을거라 생각해서
뭐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 하지만 난 내가 그런 경험을 못 느꼈던 적도 있고 지금 시대에 개인의 정신 영역에서만 성장을 찾는 건 그닥 공감이 안 가기도 했고. 오늘날은 이전의 어느 때보다 개인의 주체성이 외부 환경의 작용에 영향을 받는다 생각함. 그런 의미에서 젊예초가 좀 더 포괄적이고 다양한 의미에서의 성장을 보여줬다 생각하고.
그르긴 하지. 그냥 취향 다른 두 노선의 성장소설이 있다고 생각하자. 사실 내가 헤세 좀 좋아함. 오히려 그런 점 때문에
영문과에서 성장소설은 데미안보단 호밀밭의 파수꾼이 더 유명합니당 데미안은 저 학부때나 임고준비할 때 사실 본 적이 없는데... 한국에서만 이상하게 유명함 - dc App
전혜린씨 번역으로 인기가 빡 떴다는 얘기가 있던데
사실 번역까진 귀찮아서 안 따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문예꺼 호밀밭 데려옴 문예책 1권도 없어서 - dc App
나는 날 구원해준 사람이 한명 있었고 그 애한테 거의 빠져들게 되가지고 상당히 몰입해서 읽게됐음
오 상당히 생경한 경험일텐데 부럽네
그렇기도 한데 사실 데미안 처럼 알에서 깨어났다니 무슨 계시받거나 계몽을 당했다니 이런말 개인적으로 안 좋아함 ㅠㅠ 개취임... 교회느낌 나기도 하고 인간의 자유의지 믿음 - dc App
데미안 5번 정도 읽은 거 같은데 최근 느낌은 작위적이기도 하고 조금 유치하더라...뭐 헤세 소설이 다 작위적 느낌이긴 함(유리알유희는 안읽었서 모름)
나도 스무살 넘어서 처음 사귄 여자친구가 방구석 히키였던 나를 손목 잡고 끌고 나와서 세상 구경 시켜준 경험이 있어서 데미안에 몰입 잘 되더라
데미안과 비슷하게 미시와의 사랑이 소재로 쓰이는 성장 소설 해변의 카프카를읽죠
젊예초 짜짜 나나 박박 재밌음ㅋㅅㅋ
이런 글. 댓글 너무 좋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