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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김현 단평들 다룬 글이 올라온 걸 보고 예전에 읽었던 <행복한 책읽기>를 다시 훑었다.


'고은', '김윤식' 등과는 서로 손절했나 싶을 정도로 신랄하게 평가한다.

물론 그러한 평가는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어보이기에 억지는 아니다.


 -고은의 『전원시편』(민음사, 1986)은 별 재미가 없다 자신의 삶에 대한 의식이 없는 의식에 대해 나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것은 고은이라는 떠돌이의 의식이 자작농에 가탁한 가면 때문이다 달관의 제스처 섞인 선적 언어의 비-선적 남용(예: 벌써 별 하나 떠 이 세상이 우주이구나 - 이 무슨 소리!), 지켜야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아닌지 잘 알 수 없는 민족 정서들에 대한 집착

(1986. 3. 28의 기록)


뭐 이런 식이다. 이들뿐만 아니라 여러 문인들, 여러 작품들이 김현의 예리한 눈썰미에 정체를 간파 당하고 김현의 필력에 쥐어 터진다.

실력에 비해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데 능숙한 얼치기들이 아무리 뻔뻔해도 등골이 오싹했을 것이다. 맞은 데가 많이 아팠을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재능 중의 하나는 인간이란 두껍고 끈적끈적하고 더러운 혼합물이라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데 있다. 그가 그리고 있는 인간은 단순하고 명료하지가 않다.


독붕이들이 좋아하는 도끼에 대한 평도 여러 차례 나온다.


두툼한 책이라 제대로 읽고 감상을 쓰긴 힘들 듯하다. 또한 평론집의 특성상 내가 읽지 않은 작가나 책에 대한 얘기는 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는 깐깐한 평론가다. 제목이 <행복한 책읽기>인데 대부분의 독서와 평가는 <'행복하지 않은' 책읽기>로 보일 때도 있다.

1986년부터 1989년까지의 기록이다. 그는 1990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그야말로 인생 막바지의 글이 모여있는 것이다.

죽음을 예감하는 그 시점에도 그는 어마어마하게 독서를 했고 글을 썼다. 그는 진정 책읽기를 행복해 했던 것이다. 

나는 <행복한 책읽기>가 옳은 제목이라고 다시 생각하게 됐다.


내가 앞으로도 한국 문학을 읽는 한, 내가 잘 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김현을 계속 펼쳐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