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요 이틀간 난 고전에 관해 계속 이야길 했음. 한국 문학의 부진에 대한 글을 올린 이후로 부지런하게 댓글이 달렸고, 그중 한 사람이 “한국 문학은 고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의견을 주었음. 한국 문학엔 영미권 문학관 달리 이렇다 할 ‘고전’이 없다. 문학이 나올 비옥한 인문학적 토양이 한국엔 자리하지 못했다. 그건 어떤 면에선 참 맞는 말이었지만, 왜였을까 난 그 문장을 한참동안 곱씹었음. 뭐가 그렇게 가슴 깊이 찔렸을까. 내가 소설을 쓴 작가도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 한 켠이 계속 아렸고, 고전 작품의 부재가 주요한 문제는 아니다, 한국 작가들이 공부가 부족하지 않다고, 종일 변호를 했음. 좀처럼 의견 차인 좁혀지지 않았음. 이 의견 차이가 단순히 ‘한국 작가가 부진하냐 아니냐’에서 비롯하는 게 아니란 생각은 일찍이 들었지만, 글쎄 정확히 어디가 논쟁 지점인진 짚을 수 없었고, 서로가 가진 레퍼런스가 너무도 달라 결국 흐지부지 논쟁을 마무리 지었음. 역시 모르겠다. 난 한국 작가들을, 그리고 한국 작품을 너무도 사랑하지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태생적인 한계가 있는 걸까, 일련의 문제가 정말 ‘고전의 부재’에서 온다면 이걸 해결할 방법은 있는 걸까, 조금은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음. 이후 ‘고전에 대한 흔한 착각’이란 글이 올라왔음. 글을 읽고 내 마음에 계속 걸리던 문제, 내 심기를 살짝 건드렸던 문제가 뭐였는지 형체가 잡혔음.
고전은 믿고 따라야 할 예수 따위가 아니다.
내가 글을 쓰면서 계속 부정하고 싶었던 부분은, 한국 작가들이 부진하지 않다는 부분이 아니라 고전의 절대적인 가치 그 자체였음. 고전은 인간을 꿰뚫는 보편 가치를 가진다. 과연 그럴까. 그럼 반대로 인간이 가지는 ‘보편성’이란 무엇일까.
문학에서 잠깐 벗어나 볼게. 리처드 펠만 베럿은, 인간 마음의 상당 부분은 기실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 이라 말했음. 우리가 가진 심리의 대다수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구성되는 것이라고. 재밌는 사례가 있는데, 나미비아의 힘바족 사람들은 “심리적인 것들을 파악하지 않”음. 무슨 소리냐면 서구 문화권을 포함한 기존 문화권에선 외적인 행동과 ‘생각’이 따로 있다, 우리는 행동을 하면서 동시에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한다고 흔히 이해하는데, 생각과 행동의 이분법, 이게 실상 사회적인 구성물이란 말임. 좀 더 보편적인 예로 서구 문화권에선 몸과 마음이 분리돼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 임상적으로 마음이 아프다고 몸이 따라서 아프진 않는데, 재밌게도 동양 문화권에선 마음이 아프면 몸에 훨씬 더 그 반응이 직접적으로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가 있음. “마음은 보편적 특징이 좀 적은데, 이는 마음이 부분적으로 문화에 의해 세부조정tuning되고 가지치기pruning되는 미세 배선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난 다시 묻고 싶음. ‘인간’이, 인간 ‘마음’이 가진 보편적 가치란 무엇인가. 우리가 보편적이라 생각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실제로 보편적인 게 아니라 시대-사회가 보편적인 것으로 구성했기 때문이 아닐까?
고전이란 구성되는 것이다. 이게 내 생각임. “폭풍의 언덕”이 그랬고, “모비 딕”이 그랬듯이. 폴 고갱이 그랬고, 고흐가 그랬듯이. 고전이 시대를 앞서 본 게 아니라, 후대 사람들이 사회에 필요하다 느끼는 가치를 ‘고전’을 규정하면서 동시에 만들어 내는 것이다. 고전은 가변적이고 정치적인 것이지,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 고전에 담긴 건 시대를 초월하는 통찰, 이 아니라 후대가 만들어낸 허구적인 가치다. 내가 현실/가상 사이 소통을 얘기했던 것도 사실 기저엔 이런 논리가 깔려있었음. 문학/현실이 어딘가에 고정돼서 보편적으로 모두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절대적이라 믿었던 것들은 거의가 가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건 ‘고전’이란 절대적인 가치 역시 마찬가지지. 그렇기에 더더욱 현대에 문학을 논하기 위해선 “종교 노동자나 그들의 무지성 팬클럽”처럼 굴어선 안 된다고 생각함. 오히려 고전들이 현대 사회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은 무엇인지, 이제 와서 퇴색된 의미가 무엇인지 더 적나라하게 까발려야 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함. 한국 문학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선 한층 뻔뻔하게, 고전의 가치를 부정하고 현대에 부합하는 새로운 가상을 들이밀어야 한다는 게 내 주장임.
물론 작가들이 고전을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아님. 고전은 현 시대가 절대적으로 여기는 가치를 품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치열하게 공부하고 깨부숴야하는 대상임. 하지만, 한국엔 인문학적 토양이 부족하기에 좋은 문학이 나올 수 없다, 이 의견엔 동의할 수 없음. 인간은, 더더욱이 작가는 언어에 구애되지 않는다고 생각함. 셰익스피어가 동시대 작가들에 비해 라틴어, 그리스어 실력이 미진했음에도 불구하고 불후의 명작을 줄줄이 남겼듯이 말야. 그보단 현 시대에 작용하는 권력 관계를 읽어낼 수 있냐 없냐가 좋은 작가를 결정하는 보다 근본적인 요건이라고 봄. 그 통찰은, 사회보단 개인에게 있다는 생각이고. 조만간 한국에도 좋은 작가가 나오리라 믿음.
누가 틀렸다기 보단, 서로의 관점이 어디에서 차이가 있는지 그 핵심을 잠깐 정리하고 넘어갈 필요를 느꼈음. 토론이 너무 겉돌고 있단 느낌을 받아서. 그냥 재밌게 읽고 가볍게 넘겼으면 좋겠음.
솔직히 이런 세계화 시대에 한글 고전이 없다는 토양 탓을 정말 할 수 있을까 싶음. 번역 문학도 우리 문학이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라 생각하는데
계속 고민해서 사고를 확장시키는 모습이 멋있네요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다
뭐임. 요즘 독갤 왜 갑자기 수준 높아짐?
고전은 절대나 보편이 아니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 dc App
글 전반적으로 반대함. 고전의 가치를 절대나 보편에서 찾는 것에도 반대하고, 고전을 후대가 만들어낸 허구적 뭐시기라고 하는 데도 반대함. 셰익스피어가 부족한 라틴어 실력을 가지고도 고전을 썼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자는 건지도 모르겠고. 한국문학이 어떻든 거기에 나는 관심 없어서 그 부분은 너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생각이 너무 달라서 댓글 닮.
다른 건 개인의 생각이니까. 다만 셰익스피어 얘긴 문학적 토양이 명작을 만드는데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란 말이었음. - dc App
너는진짜 정박아다
나도 오랫동안 고전이란 무엇이고 어째서 좋은 것인가 고민을 해왔고 나름의 결론을 내린 사람으로써 고전이 가변적이고 정치적인 성격을 띤다는 사실엔 동의하지만 '고전은 시대를 앞서본것이 아니라 후대가 만들어낸 허구적 가치다'까지 끌고가는건 조금 비약이라고봄. 폭풍의언덕이나 모비딕 혹은 월든 같은 사례를보면 후대의 규정으로 고전의 반열에 오르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고전은 등장과 동시에 지금껏 인류가 경험 못한 새로운 가치와 이상향을 제시하고 그로부터 변화를 이끌어내는경우도 분명 존재함. 돈키호테나, 반지의제왕 혹은 피카소나 베토벤처럼. 우연히 후대에 필요한 가치를 품고있다가 그것이 재발견 된 고전 vs 당대에 필요한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는 통찰이 담긴 고전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하니.
"한국 문학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선 한층 뻔뻔하게, 고전의 가치를 부정하고 현대에 부합하는 새로운 가상을 들이밀어야 한다는 게 내 주장임." 이문장의 아래문단에도 대체로 동의하지만, 이런 과감한 표현은 오히려 한국문학이 나아갈 방향성을 너무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일방향으로 한정짓는 것은 아닌지? 고전을 잘 계승하고 한차원 발전시킨다거나, 고전과 현대를 조화하여 쓴 작품도 좋은 작품이 많으니. 세계에서 가장인기있는 작가인 하루키나 쿤데라는 적극적으로 고전을 부정하나 하면 그렇지도 않잖슴? 최근 한국문학은 오히려 너무 이미 다른매체에서 충분히 다루는 현대적 가치(이를테면 페미니즘 같은)만을 일방적으로 내세우며 반복 재생하기 때문에 독자로써 느끼는 피로감이 크다는게 개인적 의견임.
한국영화나 드라마 음악이 세계적으로 퍼져나간 혹은 일본만화가 세계로 퍼질 수 있었던 경로를 참고해봤을때 한국문학이 세계 주류 문학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기존 세계문학의 담론안에서의 주제라면 작품성이 무척이나 뛰어나야 될것이고, 그렇지않다면 세계문학이 지금껏 고찰하지 않은 주제 혹은 한국적 특수성을 다뤄야 경쟁력이 생길것임. 물론 한국문학의 현상황을 보면 전망이 그리 밝지는 않은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