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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페미니즘 공부도 안 하고 페미를 비판한다는 게 어불성설인 것 같아서, 페미니즘 책을 읽기로 함.


2. 처음 읽은 책은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을 풀어 쓴 '젠더는 패러디다'임.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충격적이었어.


3. 버틀러 주장의 핵심은 섹스나 젠더는 구분되지 않고, 둘 다 변한다는 거야. 우리는 흔히 육체적 성인 섹스와 사회적 성인 젠더를 구분하고 전자는 선천적이고 고정적인 걸로, 후자는 후천적이고 유동적인 개념으로 생각해. 하지만 주디스 버틀러는 섹스조차 제도 담론의 이차적 구성물이라는 면에서 젠더와 다를 바 없다고 봐.


4. 그런 의미에서 보부아르의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On ne naît pas homme, on le devient)"라는 주장도 비판해. 이 말 자체가 태어나는 성(섹스)과 만들어지는 성(젠더)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거지.


5. 프로이드는 근친애 금기로 인한 카섹시스(cathexis)의 상실을 이야기해. 이로 인해 우울증(대상이 에고가 되고 대상애가 동일시가 되는 걸 의미해)이 생기지. 버틀러는 여기에 동성애 금기를 추가해. 딸이 아빠만 좋아했던 게 아니라 실은 엄마도 좋아했다는 거야. 근원적 양성애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가 은연 중 이를 부인했다고 비판해.


6. 버틀러는 에고를 형성하는 대상애의 방식을 통해 젠더화된 정체성이 만들어진다고 재해석해. 남자아이가 근친애 금기 때문에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포기할 때, 그 대상을 내면화해서 에고 안에 보유한다는 거야. 그 남자아이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갖게 되는 거지. 즉, 완전히 이성애적이거나 완전히 동성애적인 게 불가능해지는 거야.


7. 버틀러는 섹스(젠더)는 어떤 존재가 아니라 행위이며,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주장해. 섹스는 고정되어 있다는 관념을 정치성과 연결된 패러디적 웃음으로 전복시키려 하지. 정체성 정치를 넘어, 탈정체성의 정치성을 향한 비평적 출발점을 젠더의 계보학적 탐색에서 발견하려고 해.


8. 처음 읽을 때 '개소리를 정성스럽게도 썼네'라고 생각했는데 버틀러에게 가스라이팅 당했는지, 읽다 보니 납득하고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어. 하지만 섹스가 변할 수 있는지 여전히 의문이야. 간성(intersex)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 우리는 대부분 남자 또는 여자의 성기 중 하나를 갖고 태어나고, 이를 근거로 성별을 구분하잖아. 그럼 이 과정에서 사회문화적 요소가 개입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우리가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름을 붙여 호명한다는 사실 자체가 사회문화적 개입이라면 할 말은 없지만, 그것이 섹스의 근원성을 부정하는 논리로 연결되는 건 논리의 비약이라는 생각도 들어. 하지만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관념을 전복시키려는 시도, 이를 목도하는 경험 자체로서 충분히 재밌는 책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