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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손에 슈트케이스를 들고 현관으로 향하는 아버지의 등에는 아무런 경계심도 느껴지지 않는다.

 무거운 발을 끌듯이 뒤따라 걸으면서, 키리츠구는 바지 주머니에서 나탈리아에게 빌린 권총을 살짝 뽑아 들었다.

 32구경. 지근거리에서 침착하게 조준하면 어린아이라도 확실히 맞출 수 있다. 그렇게 검은 코트의 여자는 보증했다. 나머지는 키리츠구의 문제다.

 총구를 무방비한 아버지의 등을 향해 겨누면서 소년은 불타오르는 어촌의 광경을, 변해 버린 샤레이의 최후를 떠올리려고 유념했다. 그런데도 가슴에 솟아나는 것은 10년 넘게 쌓여 온 아버지와의 기억, 그 숨겨진 자상함과 애정을 깨달아 왔던 추억들이었다.

 사랑받고 있었다. 기대받고 있었다. 자신도 역시 사랑했다.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하다못해 눈을 감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마음과는 반대로 키리츠구는 두 눈을 뜬 채 총을 겨누고서 신속하게 방아쇠를 당겼다.

 팡!하는 생각보다 작고 마른 소리.

 뒤에서 목을 꿰뚫린 아버지는 머리를 처박듯 앞으로 고꾸라졌다. 키리츠구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다가가면서, 계속해서 뒤통수에 한 발, 두 발, 그리고 멈춰 서서 등뼈를 향해서 두 발을 더 쏘았다.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의 냉정함에, 다름 아닌 키리츠구 자신이 겁에 질렸다.


-5권. 99-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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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에 젖은 눈이, 그래도 정확하게 거리표시를 읽는다. 1500미터 이내. 명중은 확실하다.

 "당신은... 내, 진짜 가족이야."

 작게, 갈라진 목소리로 그렇게 속삭이면서 키리츠구는 미사일을 사출했다.

 몇 초간의 수동유도. 그 손끝으로 살의의 조준을 나탈리아가 탄 여객기에 맞추는 동안, 그녀와의 추억 전부가 뇌리를 스친다.

 하지만 그 괴로움도 오래는 가지 않는다. 탄두의 시커가 제트기의 방열을 포착하자, 미사일은 키리츠구의 제어를 벗어나서 굶주린 상어처럼 가차 없이 표적을 향해 덮쳐든다.

 날개 아래의 엔진에 직격을 맞아 날개가 뜯겨 나가며 비스듬히 기우는 기체의 모습을, 키리츠구는 그 눈으로 똑똑히 포착했다.

 그 뒤의 붕괴는 바람에 휘날려 사라지는 모래그림 같았다. 공력을 잃은 쇳덩이는 잡아 뜯겨지듯이 뒤틀리며 끊어지고, 산산조각 나서 아침의 바다에 조용히 떨어져 간다. 아침 햇살 속에 반짝반짝 춤추며 떨어지는 그 모습은 마치 퍼레이드의 꽃가루를 연상시켰다.

 수평선 저편에서 서광의 첫 한 줄기가 비쳤다. 끝내 나탈리아가 받지 못했던 오늘이란 날의 빛을 받으며, 에미야 키리츠구는 혼자 소리 죽여 울었다.

 또다시,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을 구했다. 아무도 모르게.

 봤어? 샤레이...

 이번에도 또 죽였어.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죽였어. 너 때와 같은 실수는 하지 않았어. 나는 많은 사람을 구했어... .

 만일 키리츠구의 행위가, 그 의도가 사람들에게 알려진다면 그들은 감사할까? 결과적으로 시식귀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공항 사람들은 키리츠구를 영웅이라고 칭송할까?

 "웃기지 마... . 웃기지 마! 바보 자식!"

 금세 여열이 식기 시작한 미사일 사출통을 움켜쥐고, 키리츠구는 밝아 오기 시작하는 하늘을 향해 외쳤다.

 명예도 감사도 원하지 않았다. 그저 다시 한 번 나탈리아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언젠가 얼굴을 마주하고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는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결말을 바란 것이 아니다. 그래도 올바른 판단이었다. 어찌할 수 없이, 이론의 여지도 없이 키리츠구의 결단은 옳았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자가 말살되고, 죽을 이유가 없는 자들이 구원 받았다. 이것이 '정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먼 옛날을 떠올린다. 눈부시게 비치는 햇살 속에서, '어떤 어른이 되고 싶어?'라고 물어 왔던 사랑스러운 사람의 시선을.

 그때, 키리츠구는 대답했어야 했다. 만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기적이 이 손에 깃든다면, '나는 정의의 사도가 되고 싶어'라고.

 그 무렵에는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정의'라는 이름의 천칭이 무엇을 뺴앗고, 무엇을 이 손에 이루게 하는지를.

 '정의'는 아버지를 뺴앗아 갔다. 어머니나 마찬가지인 사람을 빼앗아 갔다. 그 피의 감촉을 손에 남기고, 그들을 그립게 회상할 권리조차 키리츠구로부터 빼앗아 갔다.

 사랑하는 사람들. 그 목소리도 그 모습도, 이제 결코 마음 편히 회고할 수 없다. 대신에 그들은 영원한 악몽 속에서 키리츠구를 괴롭히게 될 것이다. 비정한 판단으로 그들을 버리고 그 모습을 솎아내 간 키리츠구를,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정의'라는 것의 처사다. 동경하던 이상의 대가다.

 이제 와서 멈출 수 있을 리도 없다. 멈춰 선 그 순간부터, 이제껏 추구했던 것은 사라진다. 지불한 대가도 쌓아 올린 희생도, 전부 무가치하게 무너져 내린다.

 분명히 자신은 앞으로도 가슴에 깃든 이상을 따를 것이다. 그것을 미워하면서, 저주하면서 실수하지 않고 성취해 갈 것이다.

 받아들이자고 마음속으로 맹세한다.

 이 저주를 받아들이자. 이 분노를 받아들이자. 그리고 언젠가 완전히 눈물이 말라 버린 저편에서, 모든 것이 보답받을 날을 기도하자.

 이 손에 짊어진 잔혹성이 인류의 극한에 있다면.

 분명히 지상의 모든 눈물을 긁어모아서 씻어 내는 것도 이룰 수 있을 터.

 그것은 에미야 키리츠구의 소년 시절이 끝난 날.

 위태로운, 꺼림칙한,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길을 정한 아침이었다.


-5권. 116-119쪽.

 






독갤에서 왜 라노벨 이야기하냐 싶을 순 있어도, 솔직히 이 부분 개인적으론 문장 좋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