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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구절이 있어서 발췌해봄
윌리엄 포크너의 중편소설 <곰>, 한국어 번역판은 현대문학 출판사의 윌리엄 포크너 단편집에 수록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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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늙은 곰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 곰은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 난폭하고 거칠었던 것이 아니라, 해방과 자유에 대한 맹렬한 선망과 긍지로 인해 거칠었다.
그 곰은 자신에 대한 위협을 공포나 경고가 아닌 거의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해방과 자유를 맛보기 위해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고, 그것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 자신의 늙었지만 강한 뼈와 살을 유연하고 민첩하게 유지했다.
그것은 또한 한 노인의 이야기였다.
깜둥이 노예와 인디언 추장 사이의 아들이었던 그는
고통과 인내를 통해 겸손과 자긍심을 배운 종족의 연대기를 한 손에 이어받고,
그 누구보다 그 땅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종족의 연대기를 다른 한 손에 이어받고 태어났다.
하지만 이제는 늙고 자식도 없는 깜둥이 이방인과 불굴의 정신을 가진 늙은 야생 곰이 나누는 고독한 형제애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었다.
나이거 감상문썼었는데 함 읽어줄수있엉?
뭔데?
https://m.dcinside.com/board/reading/283175
글을 잘못쓰긴했는데 저도 곰 엄청 재밌게 읽어서요
팁을 드리자면 거시적인 테마보다는 좀더 디테일한 측면, 가령 문체,어휘, 인물, 배경에 주의를 기울이시면 더 큰 사냥감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곰>을 보면 자주 반복해서 쓰이는 비유가 나오는데 예를 들면 "진실보다 연약한, 적도처럼 만질 수 없는, 공허한 소리와 무익한 분노" 등에서 얻을 수 있는 효과라든지. 잡종견과 누렇게 삭은 명부에 대한 집착적인 묘사라든지.
오 감사합니다.. 글을 써본경험이 별로 없어서요. 언젠가 문학을 읽는 요령, 팁같은 것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어요
구체적으로 물어보면 답변해줄게
제가 궁금한 건 이런것입니다. 그러니까 문학 그 자체를 어떻게 이해할것인가요. 철학(특히 플라톤)은 그 내용을 전개해가는 방식이 변증술이잖습니까. 즉, 토대가 있고,,그것에 대한 반대, 그리고 새로운 토대가 형성되어갑니다. 즉, 누구나 플라톤의 변증술 아래서 플라톤이 하는 말을 처음부터 따라갈수있습니다.
그런데 문학은 작가가 자신의 사유를 하나의 허구의 세계를 형성함으로서 전달합니다. 그리고 독자는 그 세계를 해석함으로서 작가의 사유를 따라가게 되는 것이고요. 철학도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겠지만, 문학이라는 글쓰기의 방식에 독자의 해석이 더 비중있게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토대를 처음부터 쌓아올리지 않는 문학의 경우, 즉, 작가가 시작과 끝을 상정해놓은 세계에 독자가 투입되어야 할때, 저의 경우 문학읽기의 어려움이 발생하는 것 같아요.
예를들어, 문학의 독자인 저는 무인도에 있는 것 같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러다보니 특히 문장을 축약적으로 쓰는 시가 참 어렵고요. 이는 23살이 넘어서야 독서를 시작한 저의 의지, 지식, 집중, 익숙함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문학 그 자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에서 드리는 질문입니다.
쓰다보니 평소에 생각하는 것이 정리없이 말이 나왔네요. 문학 그자체란 무엇이고, 철학 텍스트와 비교해서 문학 텍스트를 어떻게, 어떤 마음, 자세로 읽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전제가 틀립니다. 작가의 사유로 이루어진 허구 세계라는 것은 창작론이 아닌 비평론입니다. 독자가 텍스트를 읽을 때 작가의 사상계를 추적해보는 것이지, 작가가 무슨 수수께끼를 내듯 소설을 설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 이 둘을 반드시 구분해야 하고요. 그러니까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소설을 소설 그 자체로, 즉 문예미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이야기와 인물과 목소리와 이미지와 상상력을 읽어내야 합니다. 말하자면 시를 읽듯 소설을 읽어야 하고, 소설을 읽듯 시를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소설의 텍스트를 머릿속으로 영상화 해보는 겁니다. 화자의 시선은 카메라이며, 서술은 목소리이자 스타일입니다. 문체란 악기의 톤과 같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사유와 비평의 세계에 참여할 수 있어요. 이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앞으로의 문학독서는 괴로울 겁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을 상징하는 알레고리 소설이라고 알려져 있죠. 지금 다시 동물농장을 펼쳐보세요. 그리고 이 소설을 스탈린이 아닌, 그냥 농부와 동물들의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보는 거예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심리 소설, 서스펜스와 리얼리즘의 소설로 생각하고 읽어보는 겁니다.
친절한 설명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금 다시 동물농장을 펼쳐보세요. 그리고 이 소설을 스탈린이 아닌, 그냥 농부와 동물들의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보는 거예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심리 소설, 서스펜스와 리얼리즘의 소설로 생각하고 읽어보는 겁니다." 여기서 '농부와 동물들의 이야기'로 먼저 감상한 후에, '인간과 사회에 대한 심리 소설 ~'
로 생각하는 단계로 넘어가라는 말씀이신지요?
"작가의 사유로 이루어진 허구 세계라는 것은 창작론이 아닌 비평론입니다" 이것에 대한 부연설명이 가능하신지요? 창작론과 비평론에서 전자는 작가, 후자는 독자의 영역이라는 뜻인가요?
작가가 자신의 사유세계를 소설에 넣기 위해 모든 것을 설계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라는 뜻이에요. 작가는 이야기를 통해 상상이나 현실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이지, 무언가 심오한 것을 '설명'하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니까요. 그래서 독자 또한 순수하게 소설을 읽을 필요가 있어요. '해석'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그 말은 성립이 되지 않지요. 비평은 해석이 아니라 재창작의 영역이니까요.
그러니까 마음대로 오독하시고, 상상해보고 다시 써보기도 하고, 다른 작품과 비교도 해가면서 순수한 소설적 재미를 느낄 수 있어야 비평이라는 새로운 '창작예술'을 즐길 수 있는 거예요. 내가 말하는 함정이란 '해석'이라는 함정입니다. 여기서 벗어나면 앞으로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할지는 저절로 나옵니다.
또한 소설을 순수하게, 재미있게 읽으라는 것은 말처럼 쉽게 되지가 않아요. 많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편견이나 통념을 버려야 할 것이고(해석에 대한 주입적인 강박 등), 위대한 문학을 사상적 고급예술 이전에 기술적인 고급예술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하며, 또한 내가 읽은 것을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창작의 욕구를 느낄 수 있고, 기술적인 호기심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시작하는 거지요.
친절한 설명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하이오님이 말씀하셨던 해석에 대한 강박에 빠졌던 것 이제서야 와닿네요. 정진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또 대화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하이오 멋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