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닌 = 설거지남

브론스키 = 상위 5%남

안나 = 신도시 미시녀


현재 한국과 19세기 러시아의 차이점은, 설거지가 결혼 이후에만 한정해서 일어난다 정도임.


내가 설거지론이 후진적이라고 보는 지점이 시대착오적인 혼전 정조의무인데,

이 소설처럼 안나 혼후 정조의무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요즘 트렌드에 맞게 공격을 덜 받게 된다.


사실 가부장제의 희생양인 퐁퐁이형의 고통을 드러내기에 설거지론은 훌륭한 담론을 제시했지만,

괜히 찐따 시절 20대에 감정 이입해서 설거지를 들먹여서 그런거다.


사실은 그 찐따는 ATM 당하는데다 남편 동의 없는 NTR도 실시간으로 당하는데 말이다.

(혼후 정조의무도 없는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말이야)


즉, 퐁퐁남의 비극은 결혼 이후에도 광역버스 타면서 꾸벅꾸벅 조는 동안 낮 시간 내내 여유로운 아내의 외도로 인해 계속된다.


브론스키가 카레닌 집에 드나들듯이 퐁퐁남의 안방을 누군가가 더럽혔을지 모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