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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레르몬토프의 <우리 시대의 영웅> 최고 번역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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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투르게네프 <첫사랑> 중 명장면의 번역 비교


[정보] 도스토옙스키가 문장을 잘 못 쓴다는 통념은(번역 추천)


념글에서 잘 다루어주었지만,



문학 번역에서 러시아어 вы(당신)과 ты(너)는 사실 번역하기 어렵다.



вы를 존댓말로, ты를 반말로 옮기기에는 러시아와 한국의 존비어 문화가 확연히 다르고,



ты를 "너"로 일괄 번역하게 되면 아버지나 할아버지까지도 "너"라고 부르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념글에 인용된 논문이 말하듯, 러시아어의 вы와 ты는 대체로는 친한 사이면 ты(너) 안 친한 사이면 вы(당신)의 격식에 따른 구분이므로



단순한 ты-너 вы-당신 번역으로 한국어의 존비어에 내포된 매우 복잡한 상하관계의 감각을 전달하기는 불가능하다.



"원문에 그렇게 씌어 있지 않느냐"는 식으로 최대한 일괄적으로 번역한다고 해서 그게 직역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것이



원어에서 미발달된 감각적 요소들이 번역어에서는 매우 발달되고 일상적으로 어감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러시아 문학을 프랑스어로 번역한다고 쳐보자. 러시아어에는 시제가 과거, 현재, 미래 3개뿐인데,



이를 상대적으로 매우 복잡한 시제를 가진 프랑스어로 옮길 때 누구도 기계적으로 시제를 과거, 현재, 미래로만 옮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테면 러시아어는 구어체와 문어체 사이의 구분이 대단히 적은 편인데, 이는 여타 유럽어와 다른 점이며,



특히 구어체와 문어체가 확연히 구분되는 한국어와는 매우 큰 차이점을 가진 셈이다.



그럼 러시아어 원문의 뉘앙스를 존중하려면, 번역문의 한국어 대화를 모두 과도한 문어체로 바꾸거나, 서술에 과감하게 구어체를 도입해야 하겠나?



(특히 고골이나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작가들에게서는 서술의 구어체 억양이 크게 두드러진다)



그러한 방식의 번역은 매우 복잡한 번역 원칙 대신에 지극히 단순한 번역 원칙으로의 후퇴를 의미할 뿐일 것이다.



문제는 한국어의 구어체가 꾸준히 문학적 표현력을 상실해 왔다는 데도 있다.



현대 한국어의 일상적 구어체는 이제 과거에 가졌던 고전적인 품위를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억양이 전체적으로 놀라울 정도로 단순화되었고, 어조가 무게감을 상당히 잃어버렸다.



문학어로서 한국어의 극치는 극도로 정교한 한자어와 고유어의 조합인데,



한자 문화로부터의 고전적 유산을 상실하고, 농촌 문화와 결부된 토착적인 어휘들의 원천을 상실하면서,



일제 시대 작가들에 비해 현대 작가들은 억양과 어조를 거의 다루지 못하는 수준에 다다랐다.



그리고 현대 구어체의 퇴화는 문어체의 퇴화와 직결되어 있다.



- "오늘날의 작가들의 문체에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무게감이 없다." 이것은 맞는 말이다. 한국어 자체가 그런 방향으로 변화한 것이다.)



대다수의 현대어는 근대어에 비해서도 파격적으로 단순화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소리의 구분이 사라지고 억양이 단순화되며, 심지어 알파벳이 몇 개 사라지기도 했다(러시아어도 마찬가지)



오늘날의 러시아에서는 아무도 19세기 귀족들이 대화하듯 대화하지 않을 것이다. 귀족들의 문화는 이제 과거의 찬란했던 것, "고전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번역에 있어 너, 당신, 반말, 존댓말의 1차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19세기 귀족들의 대화를 현대 한국어의 일상적 구어체로 번역하는 것이 정확한 번역이라고 할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할 것이다.



50-60년대에 본격적으로 서구 문학을 직역하기 시작했던 사람들은 주로 20년대생이었다.



그들은 이미 현실 속의 한국어와는 괴리감을 갖게 된 회고적인 우아한 고전적 문체로 서구 문학을 번역했고, 이후 그들의 번역체는 하나의 표준이 되었다.



그러나 이후 세대의 번역자들은 1세대 번역자들만큼 고전적 어투를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는 없었다.



1세대 번역자들의 번역체가 목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면, 이후 세대의 번역체는 대체로 점차 속이 비어 있고 서툰 것이 되었다.



그러나 이후 세대의 번역자들은 자연스러운 "일상적 한국어"로 고전을 번역한다는 시도는 거의 할 수 없었는데,



한국어 자체가 놀라운 속도로 전근대적인 고전적 품격을 상실해 갔기 때문이다.



고전을 위대하게 번역하기 위해서는 고도로 발달된 고전주의적 문체가 필요하다.



그러한 문체 없이는 고전적 문화 자체를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고전주의가 결여된 문화 속에서는 그 어떤 것도 망각을 거슬러 보존되지 못하고,



가치 있는 것들이 가치 없는 것들과 구분되지 않으며,



영원한 것이 유행과 구분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국의 고전주의적 작가들을 발견하기를 열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단순한 1:1대응의 번역어보다는 고도로 발달된 규범을 가진 번역어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