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322463
념글에서 잘 다루어주었지만,
문학 번역에서 러시아어 вы(당신)과 ты(너)는 사실 번역하기 어렵다.
вы를 존댓말로, ты를 반말로 옮기기에는 러시아와 한국의 존비어 문화가 확연히 다르고,
ты를 "너"로 일괄 번역하게 되면 아버지나 할아버지까지도 "너"라고 부르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념글에 인용된 논문이 말하듯, 러시아어의 вы와 ты는 대체로는 친한 사이면 ты(너) 안 친한 사이면 вы(당신)의 격식에 따른 구분이므로
단순한 ты-너 вы-당신 번역으로 한국어의 존비어에 내포된 매우 복잡한 상하관계의 감각을 전달하기는 불가능하다.
"원문에 그렇게 씌어 있지 않느냐"는 식으로 최대한 일괄적으로 번역한다고 해서 그게 직역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것이
원어에서 미발달된 감각적 요소들이 번역어에서는 매우 발달되고 일상적으로 어감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러시아 문학을 프랑스어로 번역한다고 쳐보자. 러시아어에는 시제가 과거, 현재, 미래 3개뿐인데,
이를 상대적으로 매우 복잡한 시제를 가진 프랑스어로 옮길 때 누구도 기계적으로 시제를 과거, 현재, 미래로만 옮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테면 러시아어는 구어체와 문어체 사이의 구분이 대단히 적은 편인데, 이는 여타 유럽어와 다른 점이며,
특히 구어체와 문어체가 확연히 구분되는 한국어와는 매우 큰 차이점을 가진 셈이다.
그럼 러시아어 원문의 뉘앙스를 존중하려면, 번역문의 한국어 대화를 모두 과도한 문어체로 바꾸거나, 서술에 과감하게 구어체를 도입해야 하겠나?
(특히 고골이나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작가들에게서는 서술의 구어체 억양이 크게 두드러진다)
그러한 방식의 번역은 매우 복잡한 번역 원칙 대신에 지극히 단순한 번역 원칙으로의 후퇴를 의미할 뿐일 것이다.
문제는 한국어의 구어체가 꾸준히 문학적 표현력을 상실해 왔다는 데도 있다.
현대 한국어의 일상적 구어체는 이제 과거에 가졌던 고전적인 품위를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억양이 전체적으로 놀라울 정도로 단순화되었고, 어조가 무게감을 상당히 잃어버렸다.
문학어로서 한국어의 극치는 극도로 정교한 한자어와 고유어의 조합인데,
한자 문화로부터의 고전적 유산을 상실하고, 농촌 문화와 결부된 토착적인 어휘들의 원천을 상실하면서,
일제 시대 작가들에 비해 현대 작가들은 억양과 어조를 거의 다루지 못하는 수준에 다다랐다.
그리고 현대 구어체의 퇴화는 문어체의 퇴화와 직결되어 있다.
- "오늘날의 작가들의 문체에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무게감이 없다." 이것은 맞는 말이다. 한국어 자체가 그런 방향으로 변화한 것이다.)
대다수의 현대어는 근대어에 비해서도 파격적으로 단순화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소리의 구분이 사라지고 억양이 단순화되며, 심지어 알파벳이 몇 개 사라지기도 했다(러시아어도 마찬가지)
오늘날의 러시아에서는 아무도 19세기 귀족들이 대화하듯 대화하지 않을 것이다. 귀족들의 문화는 이제 과거의 찬란했던 것, "고전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번역에 있어 너, 당신, 반말, 존댓말의 1차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19세기 귀족들의 대화를 현대 한국어의 일상적 구어체로 번역하는 것이 정확한 번역이라고 할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할 것이다.
50-60년대에 본격적으로 서구 문학을 직역하기 시작했던 사람들은 주로 20년대생이었다.
그들은 이미 현실 속의 한국어와는 괴리감을 갖게 된 회고적인 우아한 고전적 문체로 서구 문학을 번역했고, 이후 그들의 번역체는 하나의 표준이 되었다.
그러나 이후 세대의 번역자들은 1세대 번역자들만큼 고전적 어투를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는 없었다.
1세대 번역자들의 번역체가 목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면, 이후 세대의 번역체는 대체로 점차 속이 비어 있고 서툰 것이 되었다.
그러나 이후 세대의 번역자들은 자연스러운 "일상적 한국어"로 고전을 번역한다는 시도는 거의 할 수 없었는데,
한국어 자체가 놀라운 속도로 전근대적인 고전적 품격을 상실해 갔기 때문이다.
고전을 위대하게 번역하기 위해서는 고도로 발달된 고전주의적 문체가 필요하다.
그러한 문체 없이는 고전적 문화 자체를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고전주의가 결여된 문화 속에서는 그 어떤 것도 망각을 거슬러 보존되지 못하고,
가치 있는 것들이 가치 없는 것들과 구분되지 않으며,
영원한 것이 유행과 구분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국의 고전주의적 작가들을 발견하기를 열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단순한 1:1대응의 번역어보다는 고도로 발달된 규범을 가진 번역어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개추 - dc App
옛날 고전적 어투가 궁금하네 - dc App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322463
참조!
완전 감사 근데 당장은 다 못읽을듯 - dc App
그래도 고전적 번역, 현대에 잘 읽히는 번역 둘 다 좋다고 생각함. 난 후자 편이고 그래서 김연경 센세를 좋아함
물론 둘 다 필요한 스타일이겠지. 그러므로 투트랙으로!
구자운 시인의 러시아 문학 번역, 박순녀 작가의 빨강머리 앤 번역, 송영택 시인의 헤세 번역 등을 너무나도 좋아했는데, 한국어 구사가 뛰어다나는 것 때문이었음. 구자운 시인 1926년생, 박순녀 작가 1928년생, 송영택 시인 1933년생... 위 글의 논리에 따르면 그 시대의 번역자들은 자연스러운 한국어 구사가 한참 살아있던 시대에 성장하였던 지식인이었고 그 때문에 좋은 번역이 가능했다는 것인데, 얼마간 동의함
박순녀 작가의 빨강머리 앤과 송영택 시인의 헤세 번역은 저도 한번 찾아봐야겠군요. 그런데 구자운 시인의 러시아 문학 번역본들은 대부분 구자운 시인 사후 이름만 빌려서 낸 표절본들로 생각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322121
를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매우 좋은 글 잘 읽었다. 고전주의적 작가가 한국에도 나오면 좋겠네
아마 곧 나타나겠지. 해뜨기 전이 어두운 법이니!.....
그러니 우리 모두 임꺽정 읽기를 생활화하여야 한다
한국 작가들에게 의무적으로 읽혀야 함
근데 한편으로는 저런 계층별 다양성의 결여로 표현되는 독특함이 있지도 않을까...? 난 항상 국문학의 결핍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그 결핍이 창작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도 있거든. 오히려 그러한 부분을 찌르며 들어간다면 새로운 한국어만의 세계를 탄생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문학이란게 한쪽이 막히면 다른 쪽으로 뚫으며 발전하니
적절한 예시인 줄은 모르겠지만 카프카 같은 경우는 외국어로 창작하느라 문법적으로 정석적인 문장만 구사했는데 소설사에 남긴 족적은 뛰어넘을 수가 없으니
맨주먹으로 뭔가를 해서 대가가 되기는 불가능에 가깝고, 그런 불리한 길을 택하기에는 한국어 텍스트가 지금까지 충분히 풍요롭게 쌓여 왔다고 봄. 국문학이 빈궁하다면, 작가들이 그 빈궁한 유산이나마 기본적으로 마스터해서 나오면 되는 건데, 요즘 그런 역사와의 대결 의식을 가진 작가가 1명이라도 있는지.....? 그리고 카프카는 체코의 독일계 유대인 가정에서 자란 독일어 원어민이었고, 세르반테스-클라이스트로 이어지는 고전 문학의 넘치도록 풍부한 양분을 빨아먹으며 성장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듯. 카프카는 독문학사에서 "클라이스트의 위대한 아들"이라고 불리고, 절대 맨주먹으로 시작한 체코인이 아님.
하긴 빈궁한 배경의 가능성이 대해 아무리 떠들어도 결국 결과로 보여주는게 중요하니까 지금까진 그런 결과가 없고.
사실 한국어 텍스트 자체는 대가를 낳기에 이미 충분히 쌓여 있다고 보이고, 밑바닥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 문장 한 문장 쌓아올린 그런 자산이야말로 정말로 위대한 것이라고 생각. 한국어 코르네유와 라신 전집이 "거의" 완역되어 있는 것만 봐도 놀랍고......
묵은지 시절 문호들만 봐도 지금 더 발전하지 못하기엔 그 자산이 없진 않지. 근데 코르네유랑 라신 전집 번역이 있었나? 난 선집만 봤는데
코르네유는 선집을 한 권씩 쌓아서 거의 전집에 근접했고, 라신은 원래 작품이 열 몇 편뿐이라 몇 편 제외하고 거의 완역됨
ㅇㅎ 걍 프랑스 고전극 시리즈만 볼랬는데 이레저래 다 구해봐야겠네 거진 전집급이라면야
울산대학교출판부 "코르네이유 희곡선"이 14권까지 나와 있네. 번역도 대체로 훌륭했음! 라신 선집은 "라신 희곡선", "라신 희곡선집" 2권에 거의 전작품 수록!
Ah... 거진 12권이구만 일단은 이화여대 프랑스 고전극 시리즈 모으는 거로 만족해야긋다...
프랑스어 tu vous랑 비슷한 느낌인가?
프랑스어를 다 잊어버려서 확언할 순 없지만, 대충은 비슷한 것인 듯.....?
정확하겐 기억 안나서 좀 조심스러운데 누가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에 대해서 평하길 인물이 귀족적 어투를 구사하는게 아니라 귀족적 어투를 따라하려고한 어투를 구사한다고 평한게 생각나네
다자이 오사무를 거의 읽어보지 않아서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일본어 역시 고전 문학 번역을 거치면서 극도로 인공적으로 천지개벽 수준의 변화를 맞이했는데, 사실 귀족들이 실제로 어떤 언어를 썼는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인 듯. 예술적 모방은 모방 자체적인 가치를 갖고, 랑송이 발자크의 귀부인들을 "그가 그린 귀부인들은 시골 극장에서 공작 부인의 구실을 하는 엉터리 배우 같은 인상을 준다."고 평했는데, 사실 프랑스 귀부인들이 실제로 어떻게 말했는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고, 발자크의 귀부인들이 생명력으로 끓어넘친다는 점만이 중요한 것과 같은 이치.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냐?
독자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수준이 낮아지니깐 현대어를 사용해서 번역하지 않으면 고전에 더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는 이유로 오늘날의 번역같은게 나오는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글쓴이는 홍신? 죄와 벌 판본을 여러근거를 들어 추천하지만 내가 만약 도끼 입문시에 그판본으로 읽었으면 예전 고전 번역체 때문에 많이 어려워했을거같음. 오히려 현대적인 번역 덕분에 내가 도끼라는 작가에 다가가는데에 도움이 된것같달까. 나름의 장단점이 있는듯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펴보면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번역이 필요하다 뭐이런뉘양스의 글귀가 새겨져있는것같던데. 틀린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글쓴이가 말하는 최고의 죄와 벌 번역본인 홍신꺼가 아직 판매중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죄와벌 번역본들이 나오는 이유는 바로 그때문이지
피상적으로 봐도 원문은 하나인데 번역본이 여러개 나온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이해가능하기도 하고. 본문에 따르면 훌륭한 1세대 번역자들의 번역본이 있다면 그외의 것들은 손댈필요도 가치도 없는거임
원인이 무엇일까? - 본문에서도 다루었듯이 우선 한국어의 중요한 두 원천, 즉 한학과 농촌 문화가 상실되면서 한국어의 부원 자체가 빈약해졌음. 그리고 원래 격변의 와중에는 현상의 본질을 파악하기 어렵고, 현상의 의미는 격변이 끝났을 때 차후적으로 고찰되기 마련. 일제 시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어가 급변하는 상활 속에서는 그 변화의 결과를 고찰할 수 없었고, 그 변화의 결과가 대략 고전주의의 죽음으로 나타난 지금에 와서야 고전주의의 필요성을 강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고 봄.
그리고 1세대 번역가들 중에 가장 위대한 번역가들이 많이 속해 있긴 하지만, 홍신문화사판 죄와 벌의 채수동 선생님은 2세대 번역자(40년대생)임. 1세대 번역자들이 번역의 절대지존들이라는 말이 아니고, 옛 번역은 얼마든지 능가될 수 있음. 1세대 번역자들 중에서도 대가급에 이른 사람은 몇 없기도 하고.
그렇구나. 내가 낮에 말은 저렇게 했는데 속으로는 최신 번역본들이 가면 갈수록 '희석' 되어간다는 사실에 내심 아쉬움
많이 배우고 간다. 한국어의 역사성이 부족하다, 이 문제성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글인듯. - dc App
고 김학수 옹 번역은 어떤가요? - dc App
Ss급 요절 번역가......!
호평하신 구체적인 이유가 궁금해요 제가 그 분이 번역하신 카라마조프를 갖고 있거든요 어디선가 그 분 번역이 좋다는 얘길 들어서 - dc App
https://m.dcinside.com/board/reading/323895
이 글을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선생님 숄로호프의 위대한 돈강은 읽으셨는지? 지금 동서판하고 백석(그 백석 맞음) 번역하고 고민 중인데 뭐가 좋을까요? 동서는 중역인데 가장 깔끔하게 잘했다고 하는 반면 유일한 러시아어 완역은 백석 역이라고 해서 고르려니까(백석언어도 정말 좋아해서) 또 전부 끝까지 번역한게 아니라 중간에 갈아타야하고 필요없는 몇부분은 번연자체를 안했다고 해서 고민되네요
고요한 돈은 전반부를 백석 역으로 읽고 후반부를 동서로 읽는 게 답입니다!.....
백석 번역이 압축적이긴 한데 숄로호프 원문보다 나은 것 같습니다.
원문 보다 낫다라니...과감하면서도 당연한 평일까요 그저 백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