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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제까지 읽어온 텍스트들 중에서 합리적으로 도출되는 결론이 몇 가지 있는데
  
1. 물질적 것만이 유일한 원인이라는 것. 즉, 물질 a는 다른 물질 b의 직접적 원인도 되면서 동시에 정신 c의 원인도 된다는 것. 반면 정신적인 것은 언제나 물질의 결과라는 것.

2. 그러나 이런 유물론이 환원론에 나아가게 되면 '인간의 죽음을 태양의 흑점이 소멸하는 물리적 현상이나 다름없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아무 가치도 없다는 것. 즉 죽은 것과 산 것이나 차이가 없는 셈.

3. 이때 유물론을 견지하면서 정신을 제대로 설명하는 이론 중에 소개할 만한 것: 마이어의 창발론, 즉, 부분들은 단순히 전체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반대인 분석은 얼마든지 가능할지 몰라도) 그렇다면 부분들이 '정신'이라 불릴만한 복합체로 발전하는 최종 단계에서 우리는 결코 물질적인 것으로 모든 걸 설명하지 못한다는 결론.

이 지점에서 복잡성의 수준 격상 때마다 개입(된다고 여겨지는) 물질적으로 예측 불가한 요인을 어떻게 설명하냐는 문제가 발생.
  
이 지점에서 내 [뇌피셜]을 전개해 보자면,

나는 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어서 여태까지 신의 존재나 영적 존재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이제는 사실 과학과 유물론이 개입하는 순간 종교는 단지 사회문화적 차원에서만 발언할 수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강하게 하고 있음.
  
한데 고등종교가 영향력을 발휘해왔던 건 가치규범의 영역에서 승인할 만한 준칙을, 미신에 비해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제공하는 역량에 있다고 보이는데 사실 이 영역에 있어서도 객관적으로 칸트의 <윤리형이상학 정초> 또는 <실천이성비판>의 언명들만 못한 게 소위 기독교 교부들 또는 인도의 고승들이 창안한 종교규범이라고 봄.

그러면 종교를 폐기해야 하느냐? 여기서 위에 말했던 창발론이 암시하는 '판단중지'를 다시 떠올리게 됨. <논고>는 말하지 못할 것에 대해 침묵하라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초월적인 것에 대한 감각을 본능적으로 지니고 있음. 대상이 경이로운 대자연에서든 아니면 인간의 탁월성이 극한으로 발휘된 사태이든 사람은 자기보다 훨씬 '커다란' 것을 보았을 때 숭고미를 감지함.

이러한 초월에 대한 인식은 내가 볼 때 반드시 복합체의 발전단계에 개입하는 불가해한 요소와 접목돼야 함. 왜냐면 그것이 현재 인류의 최고지성조차 설명할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요소나 영역은 지속적으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그래서 불가사의 앞의 침묵이 시작하는 지점에서 무엇이든 말하게 되면 그것은 빗대어 말하는 것, 초월적인 것, 심지어는 영적인 것이 된다. 그리고 이 발화는 뉴런의 오류라기보다는 숭고를 인식하는 인간의 지극히 정상적인 능력이 근거한 것.
  
물론 여기서 '그러니 우리 모두 예수 믿고 천당갑시다'라거나 '보살행을 실천하여 중생을 구제합시다'라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음. 죽음 이후의 세계보다는 차라리 죽음으로써 완전한 무를 상정하는 게 낫다고 본다. 이건 종교 각자가 각기 다른 지옥을 상정하는 데 그 중 어느 게 맞는지를 따지기 보다는, 그저 사회문화적, 역사적으로 필요에 따라 그런 개념이 생성되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기 때문.
  
내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건 환원론적 세계관은 좀 아니지 않냐는 거. 아니, 나는 무엇이 됐든 완전한 체계를 구축하려는 인간의 시도는 언제나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이 주제에 대해서는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이 꽤 풍성하게 다루고 있음) 그런 점에서 사상의 헤게모니가 과학으로 넘어가서 세계를 좀 더 잘 설명해준다손 치더라도 그들이 모든 언어를 대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신은 죽었을지 몰라도 신의 본질인 초월성과 숭고함 그리고 불가해성을 인식하는 인간의 능력마저 없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 우리가 시간 속에서 어떻게 변해갈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