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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줄 요약
1. 설겆이론은 페미니즘과 메커니즘이 거의 동일하다. 문제의 핵심은 특정 성별이 아니다.
2. 문제의 핵심은 ⒧ 과도하게 물화된 인간상과 ⑵ 그런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권력에 있다.
3. 인간이란 무엇인가, 일견 젠더 갈등과 아무 관계 없어보이는 이 질문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제시돼야 갈등은 해소될 것이다.
그 설겆이론은 틀렸다 - 소립자로 바라보는 설겆이론 비판
- 최근 ‘설겆이론’이 유행하고 있다. “연애경험이 없거나 적은 사람이 아무것도 모른 채, 젊은 시절 성적으로 문란하게 놀았던 상대방과 결혼해서 같이 사는 것을 마치 음식은 남이 먹고 자신은 그저 다 먹고 더러워진 그릇을 설겆이만 한다는 것에 비유하여 낮잡아 이르는 담론”. 글쎄,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이 이야길 들었을 때 느낀 감정은 ‘페미니즘’ 담론을 처음 들었을 때 느낀 그것과 굉장히 비슷했다. 특정 성별을 그룹화해 마치 자신이 피해자고 상대역이 가해자인 양 이분법적으로 판단하는 그 기제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마치 자신이 진리고 정답이라는 듯 우기는 그 웃기는 태도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난 글을 읽으며 어떤 고약한 악취를 맡았다. 꼭 설겆이를 할 때면 나는 주방세제의 비린내 같은.
- 난 일전에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 글로 ‘여성혐오를 혐오하다’란 책을 분석한 적이 있다. “우에노 지즈코의 페미니즘은 여성 혐오 개념을 통해 남성 혐오를 수행한다.” 즉, 페미니즘은 여성 혐오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다른 혐오를 양산한다. 이 글에서 난 혐오는 어떤 성별이 다른 성별에게 일방적으로 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과정은 쌍방향적으로 일어나기에 지즈코처럼 남성만을 비난할 수 없다, 라고 주장했다. 단, 이 때 혐오는 일반적 용례로써의 혐오가 아니라, 상대를 인간이 아닌 사물로 파악하는 것 - 사르트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자가 아닌 즉자로 바라보는 ‘타자화’에 해당한다.
- ‘설겆이론’은 놀랄 정도로 지즈코의 페미니즘과 닮아있다. 1. 여성 일반이 남성 배우자를 인간이 아닌 물건(지갑)으로 바라본다. 2. 남성은 피해자고, 여성은 가해자다. 성별만 바뀌었지 주장은 대동소이하다. 난 이 주장 자체를 반박할 생각은 없다. “여성 역시 혐오를 수행한다”, 이미 이전에 한 이야기니까. 내가 궁금한 건, 하나의 사회를 두고 같은 방식으로 분석을 했는데도 전혀 다른 두 개의 담론, 여성이 가해자다, 혹은 남성이 가해자다 하는 담론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냐는 부분이다. 두 분석 모두 핵심부분을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 건 바로 그 엇갈림 탓이었다.
- 미셸 우엘벡의 『소립자』는 1960-70년대 프랑스의 젠더 갈등을 소재로 다룬 소설이다. 출간된 즉시 프랑스 문단에 파장을 일으켰고, 우엘벡을 일약 스타로 만들어줬다. 한국이 현재 앓고 있는 병증을, 프랑스는 이미 40년 전에 경험했다. 문학 텍스트는 사회의 반영이고, 담론을 파악하기 위해 꼭 필요한 언표이다. 문학 텍스트 속엔 현재 사회의 그림자가 담겨있다.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병증은 무엇인가, 이 글에선 『소립자』에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 핵심은 여성/남성이 아니다. 핵심은 과도하게 인간이 물질화 됐다는 점에 있다. 이 ‘물질화’는 투쟁 영역의 확장, 즉 권력이 인간 관계 깊숙이 침투했기에 일어난다. 소설을 살펴보며 자세히 논해보자.
- 『소립자』는 미셸 제르진스키와 브뤼노 클레망, 두 이부 형제에 관한 소설이다. 브뤼노는 어릴 적 성적 소외를 경험한 인물이다. 그는 이성에게 인정받은 적이 없다. 그렇기에 더욱 성을 갈망한다. 그는 주기적으로 성매매를 한다. 섹스하기 위해 중년의 나이까지 헬스를 한다. 그가 경험하는 1970년대 프랑스 사람들은 삶의 이유를 잃었다. 종교나 철학은 이제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한다. 종교의 위치는 섹스가 대신한다. ‘성의 해방’, ‘성적 쾌락을 즐기지 못하는 인간은 도태된 인간이다’, 사회엔 그런 인식이 팽배하다. 브뤼노는 그런 사회에 철저히 순응한다. 그는 늙어 죽을 때까지 여자를 사귀고 섹스를 한다. 그러나 육체가 노쇠할수록 여자를 접할 기회는 줄고, 콤플렉스에 빠지게 된다. 그는 끝내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 미셸은 물리학자로서 한 발짝 떨어져 사회를 관망한다. 소립자는 다른 입자와의 상호작용이 없으면 그 위치가 확정되지 않는다. 모든 입자는 외부의 중력장, 전기장에 영향을 받고 그 때 비로소 하나의 입자로 확정된다. 그런 장場의 작용이 없으면 소립자는 하나의 입자로 결정되지 못한다. 미셸은 그런 소립자의 미시 운동을 인간 사회에 겹쳐 바라본다. 인간은 다른 입자와의 상호작용 속에서만 인간으로 확정될 수 있다. 사회의 호명이 없으면 인간은 주체로 확정되지 못한다. 그렇기에 인간은 사회가 규정하는 방식으로만 존재할 수 있다. 그의 시선에서 1970년대 프랑스는 ‘자유’라는 허구적인 개념으로 오히려 개인의 삶을 억압한다. ‘네가 원하는 만큼 성적 쾌락을 즐길 수 있다’는 명제는 ‘성적 쾌락을 즐기기 위해 네 자신의 성기를, 외모를 갈고 닦아라’는 명제로, ‘타인보다 네 성기가 크다는 사실을 증명해라’는 명제로 바뀐다. 인간은 외부 사회의 권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 재밌는 부분은, 그런 미셸 제르진스키의 목소리가 작가 미셸 우엘벡에게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우엘벡은 하나의 인물을 할아버지, 할머니 때부터 계보를 파악하는 통시적 방식으로 묘사한다. 한편 작중 인물이 사건을 겪을 때면 과도할 정도로 주변 인물을 설명한다. 하나의 인물을 설정하기 위해 그와 상호작용하는 주변 인물을 포석하는 방식, 우엘벡은 그런 방식으로 소설 세계를 구성한다. 잠시 우엘벡의 다른 소설을 살펴보자. 우엘벡은 『소립자』를 출판하기 이전에 『투쟁 영역의 확장』이란 소설을 내놓았다. 그가 파악하는 사회는 오로지 투쟁의 세계다. 19세기까지 경제, 정치 같은 공적인 영역에서만 이루어졌던 투쟁은 이제 성과 사랑 등 개인적인 영역까지 그 범위를 넓혔다. 권력은 개인의 영역까지 깊게 침투했다. 경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 성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 모두 도태된 인간, 사회에 필요 없는 낙오자로 취급당한다. 그의 인식은 『소립자』에도 이어진다. 브뤼노는 ‘그의 성기가 작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성기 성형이 유행하기 시작하며, 자신의 성기 크기가 새로운 콤플렉스가 된다. “매체가 욕망하는 것만 욕망한다”는 보드리야르의 통찰을 기억하자. 소설 속 인물들은, 잡지, TV, 전단에 등장하는 광고를 바라보며 원래는 없었던 성적 욕망을 본능으로 생각하게 된다. 19세기까진 온건했던 사회가 20세기 매체의 발달과 함께 끊임없는 투쟁의 장으로 변한다.
- 생활 내부에 권력이 침투했다. 미셸 푸코는 『성의 역사』에서 ‘생명정치권력’ 개념을 주창한다. 이제 가장 내밀한 부분마저도 관리되고, 싸우고, 쟁취해야하는 대상이 됐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 존재한다. 다시 설겆이론으로 돌아오자. 설겆이론의 핵심은 ‘여성 일반이 남성을 애정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개인 관계에서 인정의 부재. 이 지점에서 남성은 자신의 정체성이 무시당했다고 느낀다. 그렇기에 설겆이론은 인정을 쟁취하기 위한 ‘인정 투쟁’으로 봐야한다. 그러나, 애시당초 인정이란 무엇인가. ‘인정’이란 개인의 한 부분이 아니라, 그 전체를 포옹하는 ‘인간적인’ 개념이 아니었던가. 개인의 성격을 해체하고, 관리하고, 끊임없이 계발해야하는 현대 사회에서 ‘인정’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 성욕과 사회적 안정을 제외한 ‘사랑’을 얘기하는 건 ‘인간은 생산 수단에 불과하다’는 자본주의의 핵심 명제를 부정하는 꼴이다.
- 이런 이중적인 태도가 설겆이론의 핵심에 '처녀'가 존재하는 이유다. 현재 설겆이론에서 남성이 원하는 건 단순히 섹스가 아니다. 그보단 개인적인 '인정', 인간적인 사랑에 가깝다. 그렇기에 창녀보단 돈으로 살 수 없는 성녀, 물질적인 것 이상의 사랑을 주는 처녀를 요구한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신봉자들은 '인정'이란 비물질적 관계를 시인할 순 없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자꾸 '처녀'를 논하는 건 '내가 원하는 건 처녀지 인정이 아니야' 하는 식의 실제 욕구를 외면하는 행위에 가깝다.
- 우습게도 설겆이론은 ‘여성’에게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면서도 ‘여성’에게 무언갈 요구하지 않는다. 철저히 경제적인 여성의 선택을 비난하는 건 자본주의와 경쟁 제도 자체를 비난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옹호하고 싶고, 결혼 제도는 비판하고 싶고... 그 끝에 있는 건 자조 섞인 ‘비혼주의’다. “설겆이론에 부들대는 집단은 딱 2종류다. 짜장면 그릇과 퐁1퐁1단. 처녀와 찐따는 부들댈 필요가 없다”는 얼핏 ‘쿨’해보이는 반응엔, ‘나도 너도 다 병신이다. 노력은 의미가 없다. 진짜 숭배해야하는 대상은 선천적으로 외모가 잘생기게 태어나 아무하고나 섹스하고 다니는 인싸들이다. 최소한 이 사실을 아는 나는 너보단 덜 병신이다’ 하는 식의 중2병스러운 태도가 숨겨져 있다. 꼭 재벌을 옹호하는 기본소득자들처럼 말이다. 그 기저엔 철저한 열등감, 배금주의와 육체 숭배, 그 밖에 다른 삶엔 아무 의미가 없다는 현대적 허무주의가 깔려있다.
- 그럼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할까. 우엘벡은 『소립자』 말미에 유전자 조작을 통해 인간의 성별을 없애버린다. 그래놓고는 ‘이것이 새로운 유토피아다’, 는 식의 결말을 낸다. 이 결말을 실제로 생물학적으로 인간이 변화할 거란 통찰로 봐선 안 된다. 오히려 유전자를 조작하는 정도로 환골탈태하지 않고선 인간은 영원히 이 모양 이 꼴일 것이다, 그런 지독한 반어에 가깝다.
- 나도, 고질적인 젠더 갈등에 이렇다 할 해답은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확실한 건 시대의 흐름이 변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대두되며 인간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급속도로 번져나가고 있다. 앞서 말한 자본주의 사회의 토대 - ‘인간은 생산 수단에 불과하다’가 기계의 등장으로 흔들리고 있다. 인간 관계가 새로이 정립될 때 젠더 갈등 역시 자연스레 해결될 것이다. 그러니 우스꽝스러운 페미니즘이나 설겆이론에 동조하지 말라는 이야길 전하고 싶다.
사실상 전통적 혼인관계는 종말을 고했다고 봄. 여자는 남자의 친자를 보장하고, 남자는 여자와 아이를 부양하는 게 선사시대 난혼에서 벗어난 혼인관계의 본질이었고, 원래부터 결혼과 사랑이 큰 관련이 없었는데 이 사실이 그냥 적나라하게 표출된 것일 뿐... - dc App
혼인 제도는 이제 거의 끝으로 가고 있지. 하지만, 최근 갈등의 본질은 혼인 관계만 문제가 아니라 인간 관계 자체를 다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봄. 인간 자체를 물질로 보니까 그 이상을 요구하는 전통적 혼인 제도와 갈등을 겪는 거라고 봄.
인간관계의 물화도 결국 인간의 본성과 관계된 문제라 완전히 없앨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긴 해 - dc App
인간의 본성이 존재하는가, 사실 그 문제부터 시작해야함. 최근 연구 결과는 인간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쪽을 더 많이 보여주고 있고, 근래의 허무주의는 인간 본성보단 사회적 구조의 문제로 봐야한다 봄.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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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 얘는 개웃긴데 어디까지가 컨셉이고 어디까지가 진짠질 알 수가 없네 ㅋㅋㅋㅋㅋㅋㅋ - dc App
솔직히 사랑 없는 결혼과 그 관계 내에서 자유가 박탈당한 채 묶인 남성의 처지를 꼬집었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의가 있지 않나 싶음. 근데 점점 처녀충론으로 몰고 가려는 움직임 보여서 답답. 이거 보면 페미니즘이랑 똑같긴 하네 ㅋㅋㅋ
"사랑 없는 결혼" 이 문제를 여성 일반의 문제로 보냐, 아님 사회 구조적 문제로 보냐의 차이라 봄. 그리고 놀랍게도 이 주제는 페미니즘에서 똑같이 했던 소리고. - dc App
사실 결혼에 사랑이 있었던 적이 인류 역사상 얼마나 있었느냐 부터가 문제라 ㅋㅋㅋㅋ 선사 시대에는 생존을 위해 결혼이 강제됐고 중세 땐 가문 간의 이권 다툼을 위해 결혼이 존재했고 근대 들어서서도 재산이니 자존심이니 사랑은 부차적인 문제였을 뿐이니. 어쩌면 결혼은 애초부터 사랑과 거리가 먼 제도 였을지도.
크루세이더 킹즈 하는 사람들의 우스꽝스런 반응이 어쩌면 결혼이 '제도'일 뿐이라는 본질을 잘 드러내주고 있는 게 아닌가도 싶음. 한데 나는 설겆이론의 네이밍에서부터, 이 담론이 이렇게 순식간에 커다란 파장을 몰고온 거는 근본적으로 '처녀'에 대한 남성의 본능적인 욕망을 건드리기 때문이라고 봐서, 처녀충 얘기가 나오는 건 불가피하다고 봐. 물론 이걸로 환원하기에는 훨씬 복잡한 담론이지만..
'처녀'가 논쟁적으로 떠오른 건 본성보단 자본주의와 연관이 있다고 봄. 현재 설겆이론에서 남성이 원하는 건 단순히 섹스가 아님. 글에서도 논했지만, 그보단 개인적인 '인정', 인간적인 사랑에 가까움. 그렇기에 창녀보단 돈으로 살 수 없는 성녀, 물질적인 것 이상의 사랑을 주는 처녀를 요구하는 거라고 봄. 이것 역시 페미니즘 담론이랑 연결되지. 뒤집어서 여성도 마찬가지고. 돈을 주는 남성 따로, 날 사랑해주는 남성 따로. 결국 똑같은 문제임. 그런데 문제는 과연 그런 '인정'이 존재하는가, 하는 부분임. 사회가 자본화되면서 '인정'이란 비물질적 관계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음. 그렇기에 사람들이 자꾸 '처녀'를 논하는 건 '내가 원하는 건 처녀지 인정이 아니야' 하는 식의 실제 욕구를 외면하는 행위에 가깝다
나는 님 주장에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건 아닌데, 사랑의 기본적인 속성은 소유욕이고, 특히 남성의 경우 사고 기제 자체가 이러한 측면이 더 강화된 방식으로 진화해왔다고 봄. 물론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 아무튼 '설겆이론' '중국집 먹고 남은 그릇' 이런 식의 표현으로 작금의 현실이 표상되는 건, 분명 처녀성에 대한 욕구와도 연관이 없지는 않다고 나는 이해했음. 덧붙여서 이게 담론 지형에서 논쟁을 일으키는 지점은, 경제적, 사회적 안정을 갈구하는 결혼 적령기 여성의 욕망은 긍정적으로, 최소한 자연스러운 것으로 통용되고-실제로도 자연스러운 동물적 경향이긴 함-반대로 남성의 자연적 욕망은 갈수록 거세되어야만 하는 흐름과 연결된다고 생각함.
요컨대 인간으로서의 인정에 대해서 말할 때, 설겆이론이 결혼과 관련된 인정의 문제라면, 성적인 사랑과도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지 않을 수 없고, 그러하다면 사회를 고려 대상으로 삼는 동시에 자연,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자연을 우리가 사회화하는 방식 또한 자연스레 문제가 된다고 나는 생각함. 인간을 물화하는 사회(자본주의)만을 문제 삼을 수는 없다는 거지.
독갤 고로시 '2페이즈' - dc App
항상 양질의 글 올려줘서 잘 읽고 있음. 사실 설겆이론을 페미니즘 담론이 발흥한 뒤로 으레 있어왔던 도태남들의 주기적인 발악 정도로 취급하고 여느 때처럼 사그라들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종종 보이는데, 본질을 한참 벗어난 진단이지 싶음. 내 생각에 쉽게 잠잠해질 담론이 아님. 글 마무리가 다소 급전개된다는 감이 있는데... 아무래도 문제 자체가 복잡하니만큼 이 글에선 이게 최선이지 싶네.
내 짧은 식견으로는 인류의 거시사에 영향을 끼치는 가장 큰 요소는 인구 문제인 것 같음. 이런 담론이 확산되면서, 아니 사실은 이미 출산율이 바닥을 찍고도 더 뚫고 들어가려는 듯한 추세이기는 했지만, 아무튼 앞으로 사회재생산과 관련한 문제는 점점 수치가 아닌 실질적인 문제가 될 테고, 이게 격화될수록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도 제기될 거라고 봄. 내가 걱정인 건 과연 이러한 인간의 물화를 되돌릴 수 있느냐 하는 문제... 적어도 지금 세대에는 별다른 희망이 보이질 않는 거 같음. 과한 우려였으면 좋겠지만
덧붙이자면 설겆이론이든 페미니즘이든, 이러한 젠더 담론, 나아가 우엘벡이 예리하게 묘파하였듯 젠더에 의한 사회 권력의 분배 문제가 공론장에서 유통될 때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문제점은, 다른 댓글에서 보이는 것처럼 인간을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으로 이해하느냐 혹은 자연적으로 타고나는 것으로 이해하느냐의 지점에서 도무지 합의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음. 나는 항상 인간이 사회적 존재인 동시에 물질로 구성된 기계라는 점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이러한 관점을 지닌다 해도 실제의 사건에 적용할 때에는 또 사람마다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기도 하고.
내가 해결책을 제시할 정도로 잘 알고있는 게 아니라 좀 급마무리 된 감이 있을지도 모르겠음. 진지하게 읽어줘서 고맙네. 내 의견이랑 거의 유사한듯.
아무튼 우엘벡은 소립자만 읽고 말려고 했는데 요즘 돌아가는 꼴 보니까 투쟁영역의 확장도 읽어봐야겠다 싶음. 다른 건 몰라도 우엘벡이 현대 작가 중에 가장 예리하면서도 중요한 통찰을 보여준 건 사실인 듯. 섹스의 자유는 21세기의 권력이다. 게다가 기존의 경제적 질서, 계급 담론보다도 인간성의 심층을 건드린다. 요컨대 설겆이론도 결국 알파메일이 다수의 여성을 독점하는 자연계의 유구한 질서와 관련 있는 거고 말이지. 나도 대체로 글쓴이랑 비슷한 의견인 것 같은데 다만 나는 이게 자연적으로 해결될 문제인가, 인위적으로도 마땅한 방안이 있는가에는 당장은 회의적임... 길이 안 보여...
대혐오시대에 나는 휩쓸리기 싫다 - dc App
잘 읽었음. 근데 초반에 '사물로 파악'한다고 하면 즉자로 바라보는 게 되어야 하지 않나 싶음
그러네. 즉자 대자를 거꾸로 썼네. ㄱㅅㄱㅅ
이거 최상단에 금지어 때문에 설겆이라고 썼다고 안 박아두면 이따가 실베 가서 조리돌림 당한다 독갤 허세충이 쓸데없이 글 늘려쓰면서 지가 똑똑해보이는 줄 아는데 설2거지 기본 맞춤법도 틀린다 어쩐다 눈에 훤함
그냥 념글 내렸고 오면 잘 설명하겠음
n-포하면서 결혼제도 안에서 이기적유전자가 시키는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고 퍼트리고 싶어도 하기 어려워졋고 설겆이론 찾으면서 더이상 성욕부산물들에게 쏟는 부성애 모성애가 자연스러운 것도 아니게 되어가는 과도기 중이고 설겆이론으로 공격받았다고 느끼는 쪽은 부러워서 그러는거지로 요약되는 말로 메신저를 공격하고 가족모임에서 이제 슬슬 장가가야지 취직은 했니 이런 소리 꺼내는 것은 넌씨눈이고 사상 검증해서 혐오하고,세대를 갈라 혐오하고, 지역을 갈라 혐오하고, 성별을 갈라 혐오하고, 이제는 기혼 미혼으로 서로 혐오하고 이런 혐오의 시대에서 대안을 찾는다? 예수가 다시 태어나서 대속해야한다는 소리로 보임 이젠
글 잘 읽었음. 우엘벡 소설 안 읽어봤는데 소립자 되게 끌리네 읽어봐야겠다 다만 설겆이론은 인셀담론을 바탕으로 안티페미니즘과 과도기적 역차별 논란이 다 섞인 떡밥인데, 후자 부분은 인간의 물화만으로 설명할 수 없고 사회변화에 잇따른 갈등과 정치권력 문제에 더 가깝다고 봄. 고전적인 페미 안티페미 떡밥이 늘 그래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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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결혼 제도는 이제 낡은 게 맞지만, 인간을 물화시켜 보는 그 시점 자체가 상당히 잘못됐는데, 그게 파훼가 안된다? 난 조만간 페미니즘/설겆이 둘 다 사라질 거라 봄. 인공지능 얘길 꺼낸 건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잘랐지만, 핵심은 인간에 대한 시선 자체가 바뀌고 있음. 한국은 세계적 흐름에선 상당히 뒤처져있어서 이제 와 - dc App
저런 논쟁이 나오는 거지. 인간 한 명 한 명이 소중하게 다뤄지는 사회가 왔을 때도, '설겆이' 얘길 할 수 있을까? 글쎄... 아무튼 난 설겆이 이론은 페미니즘만큼이나 낡은 이론이고, 10-20년 안쪽으로 쇠퇴할 거라 봄 - dc App
외모가 못생긴 사람을 이 정도로 혐오한 시대는 없었음. 푸코 성의 역사를 보면 고대 그리스부터 근대 직전까지, 외모에 대한 극단적 차별은 실상 현대에 들어오면서 생겼음. 당장 그리스인 조르바만 보더라도 노인간의 섹스를 다루는데, 이게 역겹게 느껴진다는 이야기가 나온 건 2000년대 들어서임. 그만큼 물질화 된 거지 - dc App
우리가 생물학적이라 생각하는 것의 상당 부분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임. 선천적 매력 우열? 그런 게 과연 존재했을까? 최근 유행하는 여성-중성적 남성에게 느끼는 성적 매력이 고대에도 있었을까? 통시적, 공시적으로 외모 지상주의는 20세기 서구 사회에 절대적으로 국한된 이야기임. - dc App
젊음, 육체에 대한 숭배, 성욕의 과잉, 노인 혐오, 비현실적일 정도로 인간 육체를 물질화하는 인식, 이 모든 건 절대 생물학적으로 해석할 수도, 해석해서도 안되는 담론임. 그런 해석은 나치 정권이 유전학을 이용해서 우생학을 정립한 만큼이나 유치하고 폭력적이라 봄 - dc App
암튼 재밌게 읽어줘서 고마움. 함께 계속 고민해보는 과정이 됐으면 좋겠네 - dc App
념글 내려갔네ㅋㅋㅋ 굿
아 독갤고로시 확실했는데! 비겁하게 념글을 내려버리다니..
잘읽었다
진짜 존나재밌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