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해치는 일련의 행위에 대해서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자기변호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말이 너무도 유명하지. 그런데 우리에겐 정말 그런 권리가 있을까.
<멋진 신세계>에서는 그러한 상상으로서의 자기파괴적인 감정마저도 막기 위해 소마라는 약이 있는데, 먹으면 최고의 행복을 느낀다던가? 그런 식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통제 가능하게 하는 게 모든 사회의 디스토피아적인 목표겠지(유토피아적으로는 모두가 그냥 행복해지는 건데 그런 사회가 구축되었던 적은 정말 거의 없으므로).
그런데 <1984>에서 지적한 사회에 의한 인간 검열은 이제는 가장 디스토피아적인 세계의 대명사로 취급되고 있고, 그 수준에까지 사람을 통제하는 건 거의 불가능해졌지. 물론 위에서 말한 디스토피아적 목표의 성취를 위해 그보다는 간접적인 장치들로 어리석은 민중을 만들려는 노력이 없지는 않겠지만.
이런 상황에서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자기파괴인 자살을 유무형의 방식으로 검열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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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하고 있잖아? '극단적 선택' - dc App
완전한 검열은 아니지. 그것을 사회는 이미 알아서 번역을 하는데 진짜 검열은 그러한 추정의 여지마저 지우는 거지. - dc App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극단적선택 특공대 이렇게 바뀜? - dc App
사이드 스쿼드가 되겠지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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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인식이 불가능해지면 되는 거지 "그걸 뭐라고 하지?" - dc App
죽음조차 자유로이 하지 못하는 세상...극한의 디스토피아인가
적어도 사회라는 것이 죽음의 자유를 함부로 용납하진 않을 거임 넓게 보면 안락사도 세계적으로 미뤄지거나 미뤄졌던 이유가 죽음을 쉽게 허용할 수 없다는 '윤리적' 반발이었지. 그 윤리를 만든 건 사회고. 그러나 죽음의 과도한 미화도 대해서도 니체가 지적한 바와 같이 불가능이지. 죽음을 미화하는 자는 결국 죽음으로 그걸 증명해야 하니까.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