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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머시 스나이더, <피에젖은땅>


<남산의 부장들>과 함께 20일 넘게 끌어오던 책을 방금 막 끝냈다. 

두 책 모두 어렵거나 딱딱한 책들은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 아주 선호하는 장르가 아닌 역사관련 벽돌서적 두권을 함께 읽는 건 역시 힘겨웠다.

당분간 좀 말랑거리는 책을 읽어야겠다. 


1.

히틀러나 스탈린이나 각자 내건 간판만 달랐을 뿐, 본질은 파시스트, 제국주의자였다. 

그리고 이 두명의 학살자 사이에 낀 지금의 폴란드-우크라이나-벨로루시 지역이 바로 피에 젖은 땅 - BLOODLANDS 다.

12년 동안 이 지역에서 1,400만명이 직접적으로, 계획적으로,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학살당했다. 

(제일 유명한 아우슈비츠 등 수용소에서 죽은 유대인을 포함하는 숫자지만, 아우슈비츠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당시 유대인이 가장 많이 죽은 민족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유대인만이 유일한 피해자는 아니었다.)


2.

이 책은 그 학살의 과정을 온전하게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왜냐면 우리가 다시 그런 과오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선, 

스탈린이 히틀러가 그리고 소련과 독일의 국민들이 왜, 무엇때문에 그런 일을 저지르게 되었는지를

이해하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들을 인간이 아닌 악마로 치부해버리는 건,

결국 히틀러가 유대인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본 것과 똑같은 구조에 불과하기 때문에

언젠간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면 또 다시 똑같은 결론에 도달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3.

저자의 글빨이 워낙 좋기 때문에 분량에 비해 잘 읽히는 책이다.

하지만 책 전체가 참혹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난 한번에 많이 읽지는 못하겠더라.

그래도 결론 부분은 레알 훌륭하다. 다만 역자도 지쳤는지 유독 결론 부분에서 비문이 눈에 띄더라. 


4.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독일이 소련과의 동맹을 깨뜨리지 않았다면,

혹은 일본을 설득하여 태평양이 아닌 대륙으로 눈을 돌리게 했더라면,

우리는 어쩌면 전혀 다른 세상 속에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끔찍해졌다.

미치광이 외곬수의 멍청한 오판이 지금의 세상을 만들 것일 수도 있다. 


5.

곁가지로, 다 읽으니 포스트모더니즘이 더 이해가 갔다. 

당시 칸트-헤겔-니체-맑스 보유국인 독일, 

그리고 무려 사회과학이라는 분야를 창시한 것으로 평가받는 맑스의 이론으로 무장한 소련이 행한 짓거리를 보면 

인간의 이성이란 건 무력하다기보단 어쩌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환상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6. 

이 쪽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면, 윌리엄 스타이런이 쓴 <소피의 선택>이라는 소설도 추천한다.

폴란드인 입장에서 다룬 홀로코스트에 대한 소설이자, 소설을 쓰는 소설가에 대한 소설이기도 하다. 

(글고보니 이 책도 꽤나 긴 책이다. 하긴 길 수 밖에 없는 이야기이긴 하다.)


7. 

당장 떠오르는 생각들은 이쯤에서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