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일뽕에 빠져서 도서관에서 책 찾다가 읽게 됐음ㅇㅇ
감상 적기에는 내 식견이 초등학생 수준이라 어려워서 그냥 인상 깊었던 문장들만 적어봄.
먼저 저자는 메이지 유신을 서구에 의해서 일어났다는 관점으로 보는게 아닌, 일본 내부에서의 개혁으로 일어났다는 관점으로 보고있음.
이 점이 다른 메이지 유신에 대해서 말하는 학자들이랑 차이점인 것으로 생각됨. 사실 다른 메이지 유신에 관한 책은 안 읽어 봤음ㅈㅅ.
다시 말하지만 그냥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문장들 뿐임
1. 막부는 1790년대 들어 유학을 중시하는 정책을 잇달아 내놓는다. 먼저 막부는 하랴시 가문의 사숙을 막부의 공식적인 관학으로 확대 및 개편하고 명칭을 쇼헤자카 학문소로 하였
다. 지금 도쿄 유시마에 남아 있는 건물이 바로 이것이다. 이는 조선의 성균관과 청의 국자감과 유사한 형태이다. (물론 규모나 중요도는 한참 떨어진다.)"
→ 이 부분은 일본의 유학에 의한, 사무라이들의 사(士)화를 설명한 내용인데 그냥 재밌었음
2. 이들은 자유 민권 운동의 주축 세력이 되어 활약했고, 근대적인 정당으로 탈바꿈해 1890년대에 의회가 개설되자 의회를 장악하여 메이지 정부와 혈투를 벌였다. 지금까지의 연구에서는 이런 흐름을 주로 서양 정치제도와 정치사상의 영향으로만 설명해 왔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대로 일본에서는 1830~1850년대부터 '정치 붐'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수많은 정치 결사체가 탄생하여 많은 사람들을 정치의 소용돌이에 끌어들였다. 메이지 이후의 정당사는 이런 전사를 빼놓고는 설명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 서양에 빗대어 설명하는게 아닌 일본 내부의 사례를 들어서 설명하고자 하는 저자가 재밌었음
3. 비판자들은 정당이 공익과는 관계없이 사적 이익만을 추구한다고 생각했고, 이것이 결국 공적 이익을 해친다고 보았다. 그리고 정당 간의 투쟁은 사회적 낭비이며, 나아가 사회를 동요시키는 불안 요소로 파악했다. 이런 관점은 현재 한국이나 일본의 시민이 정당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동아시아의 정당들은 100여 년 동안 이런 자신들에 대한 혐의를 불식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고있다. 이런 관점은 군과 민 사이에 정당이 끼어들지 않는 일군만민적인 정치체제를 지향하든가, 정당을 인정하는 경우라도 유일 정당만이 군과 민을 이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 여기는 일본의 근대와 현재를 비교해서 시민들이 생각하는 인식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점을 말해주고, 또 사족을 덧붙여준게 재밌었음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고 궁금한게 생겨서 물어볼게
저자는 유학이 도쿠가와 막부 말기에 성행한 이유를 확실하게 적어놓지 않아서 헷갈림.
저자같은 경우에는 "도쿠가와 사회의 장기적 평화 → 사무라이의 정치 참여 (조선과 청에서의 유학 전파로 인해 일본내 유학자들이 많아지고 유학파들이 인기를 얻게됨) → 유학의 발달 및 확산" 이라고 설명했는데 일본내에 유학말고 다른 학문도 많았을텐데 (특히 네덜란드의 영향으로 다양한 서양의 학문이 보급되었을텐데) 왜 그중에 유학이 확산되었는지가 궁금함. 혹시 아는 분 대답좀 해주셈.
모처럼 재미있게 읽었음
이상 ㅂ2
이책 위시리스트중 하난데 계속 미뤄만지네
교양서인데 내용도 좋고 가독성도 좋음 추천함 - dc App
그 서울대 강의 그건가? 박훈 교수였나 재밋겟노 근데 나도 궁금한건데 네덜란드 난학이 사상사적인 측면에서도 유입되었는지 이 부분을 확인하는게 좋을거 같음, 내가 알기론 난학은 의학이나 기초적인 자연과학 분야에 집중되서 들어간걸로 아는데 천주교 같은 종교가 탄압되었던 걸로 미루어볼때 당시 날고기는 정치사상쪽으로는 수입이 안되지 않았을까 그런고로 거시적인 사회 제도적인 측면과 미시적인 심성사까지 아우르는 '동양'의 철학인 유교가 우세할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다 걍 내 뇌피셜
ㄴ난학 수용의 첫 번째 계보는 외과의학에서 비롯되어 제과의학,본초학,박물학계통. 두 번째 계보는 세계지리와 서양사정의 연구. 세 번째 계보는 막부가 해외사정을 파악하기 위해 서양지리서를 수용하고 해양,선박,천문등을 연구하는 관주도의 양학. 난학 수용에 정치사상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