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자기 위로를 행하는 것은 미친 행위이다.
우선 잘못하다간 날카로운 종이 끝에 국부 끝을 베일 수도 있고, 설령 그러지 않더라도 책이라는 물건이 평균적으로 얼마나 두꺼운지를 생각해본다면 상처를 입을지는 보지 않아도 뻔한 바이다.
이는 남성이라도 다를 바가 없다. 애시당초 책을 어떻게 써먹을지가 문제다. 특정 기관을 자극한다는 목적성에 위반되는 행위이기에 뒷쪽을 사용하는건 논외다. (그 기관을 자극하기에 책은 쓸데없이 양 옆으로 넓다.) 그럼 앞쪽을 위해 사용해야만 하는데, 이게 또 참 번거로운 바이다. 책을 돌돌 말아 사용하자니 인쇄 방법의 한계상 구멍이 너무 커지기 마련이고, 그렇다고 페이지 사이에 끼자니 압력과 종이라는 재질에 대한 한계에 부딪치고 만다.
이처럼 책으로 자기위로를 행한다는 것은 광기어린 행위이나, 이 따위 방법론들은 아기 장난으로 만드는 책-자기 위로 방법론이 있다.
바로 정신적 자기 위로법이다.
이에 순전히 책을 읽음으로써 실로 감동을 느끼고,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지식을 얻고, 무언가에 대해 사색하고, 공감하는 것으로써 위안을 가지는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
책을 통해 정신적 자기 위로를 하는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분류로 나뉜다. 키덜트-더닝크루거 중독자와 나르시즘-인스타그램 중독자가 그 두 분류이다.
키덜트-더닝크루거 중독자는 주로 10대 청소년 내지 20대 초반인 소설 주인공이, 중독자가 가진 어떠한 유년기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거나 그 트라우마가 간섭할 여지 없는 대체 현실을 관음하는 것으로 정신적 오르가즘을 얻는 일종의 관음병자이다. 이들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정말로 대단한 문학의 일부라 착각하여 자주 자신이 좋아하는 매체에 대한 논평을 시도하곤 하지만, 대개 그들이 좋아하는 매체 이외의 지식이 없기 때문에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한 결과를 얻는 경우가 많다. (허나 이들은 자신의 실패를 인지조차 하지 못하기에, 자신의 옮음을 의심하지 않고 정신승리를 반복하다 끝엔 오르가즘을 느끼기 마련이다.)
이들은 대개 유년기 시절, 혹은 청소년기에 변변치 못한 교우관계를 가져 이에 대해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이들은 복잡한 사건관계와 고난을 거부하기 일쑤이며, 제대로 된 이성관계를 가진 적이 없기에 성적인 욕망에 굶주려있다. 이러한 성적 경험의 결핍이 왜곡된 성적 성향을 만들어내고, 결국 이는 책을 통한 현실도피로서 정신적 오르가즘에 이른다는 자기 파멸을 이끌어 낸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언제나 키덜트에 멈춰 서있다. 학교의 퀴퀴한 먼지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빠져 나오질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학교에서 자기 위로를 하고있는 셈이다. 오징어 냄새나는 교실에서 혼자 묵묵히 공상에 빠진채 허리를 흔들고 있다.
나르시즘-인스타그램 중독자가 오르가즘을 느끼는 방식은 키덜트-더닝크루거 중독자와 정반대이다. 키덜트-더닝크루거 중독자가 트라우마, 패배주의 등으로 가득한 현실세계를 포기함으로서 쾌락을 탐미한다면, 나르시즘-인스타그램 중독자는 현실세계의 한없이 밝은 면만을 탐미하면서 올바르고 당당한 자신에 취한다. 그리고 오르가즘을 느낀다.
이들을 보다보면, 이들이 대개 부자일거라는 착각을 가지기 쉽다. 또 이들이 진정으로 위로받고 치료받아야 하는 상태일거라는 착각또한 가지기 쉽다. 하지만 이 중 올바른 부분이라곤 이들이 치료 받아야 한다는 점 뿐이다.
우선 이들은, 오히려 부자가 아닌 경우가 많다. 이들과 부자들의 공통점이라곤 사회적 약자에게 별 흥미가 없다는 점 뿐이다. 애시당초 잘 생각해보자. 부자들은 대개 적이 많고,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보기에 재수가 없는 법이다. 부자들이 만약 현실세계의 한없이 밝은 면만을 바라보고 있다면, 아마 약자들이 지금쯤 그들의 시체를 강남거리에 만연한 교회 십자가에 줄줄이 비엔나처럼 걸어놨을게 뻔하다.
또한 부자들은 물질적으로 풍부한 삶을 살고 있기에, 자신의 욕망을 해소할 방법론에 굳이 구차한 현실 도피를 껴놓을 이유가 없다. 만약 그런 선택지를 선택한다면, 그건 정말 멍청하거나 구시대적인 것 일지어라.
아무튼, 이들이 책으로 오르가즘을 얻는 방법론 자체는 키덜트-더닝크루거 중독자들과는 동떨어져 있지만, 사실 현실세계에서 도피하고 싶다는 기본적 욕구 자체는 같다. 단지 전자는 그 욕구를 현실 밖에서 해결하고, 후자는 현실을 왜곡함으로서 해결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들은 주로 키덜트-더닝크루거 중독자들이 지닌 불행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도벽이 있다. 이들의 공감능력이 충만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불행을 소유함으로서 자신이 더욱 공감받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불행을 겪는것은 바라지 않는다. 이들은 정말로 힘든걸 바라는게 아니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드라마이다.
별로 보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책에 공감한 척 하고, 얇팍한 에세이를 치켜세우고, 별로 관심도 없는 소수자 문제에 공감한 척하고서 그런 멋진 자신에 취하는 것이 이들의 주 레파토리이다. 이들에게 현실이란, 멋진 자신을 위해 움직여야만 하는 대상이다. 이들은 모든 논리의 꼭대기 위에 자신이 서있길 바라지만, 동시에 부조리에 희생된 비극 속 주인공으로서 가엾게 취급받길 바란다. 그러나 이 세상은 자신과는 전혀 무관하게 그저 돌아갈 뿐이며, 행복도 부조리도 그저 존재할 뿐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이 세상을 지극히 왜곡된 시선으로 받아들이길 택했다. 현실세계의 한없이 밝다고 판단되는 점과 옮아보이는 점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복잡한 논리와 나빠보이는 것들을 무조건적으로 배제한다. 이들에게 그림자는 빛과 공존하는 대상이 아니다. 무조건적 악인 그림자는 빛을 오염시키는 더럽고 추한 대상이며, 멋진 빛을 치켜세우기 위해 존재하는 대상이다. 그러한 키치에 취하고 있으려면 성기에서 오징어 냄새가 풍기기 시작한다. 그렇게 절정한다.
이 두 부류는 서로를 혐오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도 서로 닮아있다. 그러므로 이 둘은 이딴 방식으로 자기 위로를 하기보다, 정신병원에 통원하며 이 부조리한 현실과 맞서길 바란다. 그렇게 서서히 서로를 관용하려는 자세를 보이며, 결과적으로 사랑을 통한 교미를 행하길 권장하는 바이다. (물론 성기가 과도한 파멸적 자기 위로로 인하여 망가지기 않았다면 말이다!)
결론 :
이와 같은 사유로 인하여 책은 자기 위로 수단으로 부적합하다는 사실을 밝힌다.
그리고 사실 이건 술 마시면서 쿤데라 소설 읽다가 쓴거다
내일은 모옌이나 읽을 생각이다
이 글 보고 자위하는 건 괜찮나요?
이 글을 적었다는 사실 자체가 무지와 오만한 자기애에서 비롯된 자위 행위를 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이걸 보고 자위를 하는 건 타인의 자위를 보면서 자위를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타인의 자위를 보면서 자위를 하는걸 누가 막겠는가?
그러니까 쥬1지를 책 사이에 끼우는게 잘못된거라는 거지?
ㅅㅂ ㅋㅋ
자위자위법
이걸 이렇게 길게 썼다니..
그래서 키덜트가 읽기에 좋은 책 추천은?
글을 쓰며 자위하는 것 같다..
그럼 뭘로 위로 해야되냐
광기 ㄷㄷ
쿤데라 참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