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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크게 다섯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1. 계급이 대령쯤으로 되는 군인 아버지를 둔 딸의 이야기. 

   오빠는 활주로에서 마요네즈와 케첩을 나르다가 추락한 비행기에 깔려 죽었다.


2. 군사학교 시절 대령에게 군사학을 배웠던 중위가 들려주는 할머니의 이야기.

   중위의 할머니는 어린 시절 적국의 공습에 살아남은 북해도시의 몇 안되는 생존자였다.

   공습을 피해 달아나던 중, 할머니는 적국의 군인에게 쫓기게 되는데, 어쩌다 북해로 통하는 배수구에 갇히게 된다.


3. 중위의 할머니를 죽이려고 하는 적국의 군인의 이야기.

   배수로에 갇혔을 때, 군인은 어린 시절 어떤 게릴라 여성의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들려준다.


4. 게릴라 여자의 이야기.

   숲 속 마을에 살고 있었던 여자는 결혼을 하여 아이까지 낳았지만, 이런 저런 정세와 전염병으로 인해 아이와 남편을 잃는다.


5. 북해의 왕 이야기.

   게릴라 여자의 아이가 죽기 전에 게릴라 여자에게 들려주는 우화 형식의 이야기.

   북해 심연에 있던 북해의 왕은 어느 날 누군가의 숨을 타고 지상으로 올라온다.

   북해의 왕은 천 년이라는 세월 동안 세상을 떠돌아 다니며 이 인간 저 인간에게 들러붙는다.


다섯 가지의 층위의 이야기는 1>2>3>4>5 순서대로 이어졌다가, 다시 5>4>3>2>1 순으로 회귀한다.


각 층위의 이야기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데, 그렇다고 해서 막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거나 하진 않는다.


이는 작중 서술을 통해서도 직접적으로 언급된다.


중위의 할머니는 수로에서의 기억을 평생토록 혼자 간직하다가 죽음이 임박한 순간에 어린 손자에게 들려주었다고 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며 손자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정확히 모르는 채로 그런 이야기를 남겼다.(p.152)


중위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군인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다 들은 인물들과 독자들은 여전히 그가 군인이 된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뭔가 영향을 끼치긴 했는데, 그 뭔가가 뭔지 정확히 모른다는 얘기다.


이는 소설의 전반적인 서술 방식을 축소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각 챕터가 앞선 챕터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긴 하는데, 그 영향이 정확히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그 챕터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사람들뿐이다.


이 이야기의 종착지에는 대놓고 이런 서술이 나온다.


모두가 중위의 이야기를 듣고 자기 나름대로의 기억들을 떠올리고 있었지만 그 기억과 이 모든 이야기가 무슨 상관인지,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그 기억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p.150)



이제 북해의 왕 챕터 마지막 부분을 살펴보자.


웅장한 탑이었다가 성당이었다가, 지금은 폐허가 된 곳에서 북해의 왕은 어떤 노인과 마주한다.


북해의 왕은 노인을 알아본다. 오래 전 성당에서 벽돌을 옮기다가 떨어져 불구가 된 아이였다.


노인이 가엾던 북해의 왕은 그의 마음에 깃들었다. 


북해의 왕이 마음에 깃든 노인은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수십 년 동안 헤맸고, 지금은 한 발자국 움직일 기력도 없지만 노인은 사랑을 알게 됐고, 신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눈을 감는다.


천 년 동안 헤맨 북해의 왕은 탑을 세우며, 벽을 세우며, 성당을 세우며, 군대를 이끌며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했지만,


그 긴 세월 동안 자신이 유일하게 구원한 사람이 노인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마침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어딘지 깨닫게 된 북해의 왕은


게릴라 여자의 자식으로 태어나게 된다.


자식은 죽기 직전 게릴라 여자에게 자신이 북해의 왕이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죽는다.


자식의 이야기를 들은 게릴라 여자는 군인에게 오래 전에 죽은 자식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군인은 방금 전까지 죽이려고 했던 적국의 소녀에게 자신이 어린 시절 만났던 게릴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할머니가 된 소녀는 자신의 손자에게 방금 전까지 자신을 죽이려고 한 군인의 이야기를 손자에게 들려준다.


손자는 이제 대령과 그의 가족들에게 자신의 할머니가 죽기 전에 들려줬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보면 알겠지만, 이 이야기들은 전부 '죽음'과 연관이 되어 있다.


이렇게 북해에서 시작되는 죽는 이야기들은 오빠의 죽음으로 인해 삶의 알 수 없음과 그 무의미함에 대해 궁리하고 있는 여동생에게까지 도달하게 된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집을 나가는 중위에게 모자를 전달하려고 하지만, 알고 보니 그 모자가 중위의 것이 아니었고,


문 앞에 서서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는 중위와 여동생의 모습을 보여주며 끝이 난다.


모자는 직접적으로 '의미가 없어진'(153쪽) 물건이라고 친절하게 서술된다.


요약하자면, 이 소설은 무의미하게 보이는 이야기(죽음)들은 통해 어떤 식으로든 우리에게 의미(삶)를 불러 일으키는 구조의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