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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주의에 대한 책을 읽다가 현대 소설 중 이 이름이 나와서 궁금하여 읽어보았는데, 사실 생각보다 식인에 대한 소설은 아니었던 것 같다. 굳이 따지자면 식인의 폭력성만큼이나 폭력적이었던 아르헨티나의 역사에 대한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재밌게 읽힌 소설이다. 알마센이라는 레스토랑이 세워지고 주인이 계속 바뀌는 과정을 시간대를 비틀어가며 이야기하는데, 그 과정이 아르헨티나의 힘든 역사와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보여주고 그 과정 속에서 이 요리사 가문의 최후의 후계자인 세사르 롬브로소가 어떻게 식인에 도달하는지 보고 있자니 참 흥미진진하다.



기실, 식인이라는 소재는 제목의 자극성과는 달리 소설 속에서 거의 나오지 않는다. 세사르가 아기 때 본능적으로 식인 본능에 홀렸던 것과는 달리 그의 인간 요리는 미식 추구와는 거리가 먼, 도구로서의 식인에 더 가깝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일반적인 재료들을 활용한 화려한 요리들을 다룰 뿐이다. 그래서 기대와는 조금 딴판이라고 말하는 게 나을 테다. 대신, 이 요리들이 워낙 다양하게 나오는데다 묘사가 워낙 가득해서 읽고 있으면 저절로 배가 고파지는 수준이다. 곧바로 저자 이력을 책날개에서 확인했는데, 의외로 요리에 대한 언급이 없는 걸 보면 이 모든 게 그저 글을 쓰기 위한 참고 자료에서 나왔던 것일까? 참 신기한 일이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고 있으면 다른 소설 하나가 문득 떠오른다. <백년의 고독>이다. 물론, 이 지겨운 이름을 중남미 문학 이야기를 할 때면 매번 듣느라 신물이 났을 사람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실제로도 신물이 날 정도로 지겹게 언급되기도 하고.) 다만, <식인종의 요리책>은 실제로 <백년의 고독>을 연상시키는 점들이 꽤나 많다. 알마센이라는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계속해서 계승되는 뛰어난 요리사의 혈통이라든가, 이 가문이 어떻게 잔혹한 아르헨티나의 현대사 속에서 몇 번이고 꺾이고 쇠퇴하다가 기어이 끝을 맞이했느냐라든가, 하는 식으로.



개중 가장 이런 느낌이 강했던 것은 소설의 결말로, 이 알마센의 마지막 주인이 된 세사르가 식인에 손을 대고 스스로 최후의 요리가 되어 쥐떼들에게 뜯어먹히는 식으로 자결했으리라는 추측으로 글이 끝나는데, <백년의 고독>에서 최후의 후손이 개미떼들에게 뜯어먹혀 죽는 결말을 처음부터 오마쥬하려 했던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연상이 강하게 되었다. 아니면 중남미 문화권에선 이 최후의 자식이 동물들에게 물어 뜯겨 죽는다는 표현이 원래부터 있었던 것일까? (콜롬비아와 아르헨티나 사이의 머나먼 거리를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아닐 것 같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