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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 이익을 종사로 한 성호학파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파로 인식되고 있다. 그들도 성리학자였기에 성리학의 관점에서 주자를 존승하였다. 그러나 서인 노론 계열처럼 주자를 절대화하여 주자의 학설을 조금이라도 의심하면 사문난적으로 몰았다.
노론계는 주자도통, 주자 절대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주자대전차의, 주자언론동이고 등의 저술을 통해 성리학을 진흥시켰다. 그러나 이들의 주자절대주의 사상은 조선의 주류 사상계를 경직시켰다. 이 같은 경직된 사상계의 분위기 속에서, 성호학파는 새로운 학풍을 추구하였다.
성호학파는 노론학파에 비해 수평적인 관계에서 스승과 제자 간에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졌으며, 다양한 성리학 해석이 이루어졌다.
일반적으로 성호학파나 실학자들을 반주자학이나 탈주자학 성향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너무 편향된 해석이었던 것 같다. 성호 이익을 비롯한 성호학파들은 정호 정이와 주자를 존승하였다. 그러나 주자에게 경도되지 않았으며, 주자의 사서 주석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
성호학파에게 있어 주자는 학문 방법론과 주석을 다는 방법에서 본받아야 할 학자엿다. 이는 한원진이 주자를 절대화, 성인화 시킨것과 대비된다.
성호학파는 경전의 뜻을 완벽히 알기 위해 사서뿐 아니라 육경과 서학 서적 등까지 참고하였다. 이러한 넓은 탐구 영역 하에서 천주교와 국학에 대한 연구 등이 진행되었다. 이들의 넓은 관심영역은 주자학과는 다른, 새로운 학문 사조를 발전시켰으며, 경직된 조선후기 주류사상계에 새로운 자극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채제공과 정조이가환의 죽음 이후 성호 학맥은 중앙에서 완전히 영향력을 잃어버렸으며, 정약용 등, 재야학자들의 방대한 저술에만 성호학파의 사상적 지향이 남아 발현되지 않은 가능성이 된 것이다..
물론 성호학파를 포함한 실학자들의 구상이 실제로 이루어졌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미 주자절대주의가 그 효용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후대 사람들에게 성호학파의 사상은 매력적인 대안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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