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서 듄 리뷰 읽고 있는데 글쓴이가 영시 각운 살려서 해놓은 번역본이 없다고 자기가 직접 한거 읽었음
그런데 각운 살리니까 오히려 내용 전달이 잘 안되는 느낌이다. 그리고 어차피 운율(미터)까지 살려서 번역하는건 불가능한데 굳이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다.
어떻게 생각함?
그런데 각운 살리니까 오히려 내용 전달이 잘 안되는 느낌이다. 그리고 어차피 운율(미터)까지 살려서 번역하는건 불가능한데 굳이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다.
어떻게 생각함?
우선 번역으로 전체적인 뜻 이해하고 그 다음에 원어로 찾아서 운율감 느껴봐
번역은 내용 전달이 더 중요하다는거지?
사실 시 라는 거 자체가 운율감 느끼는게 참 중요한데. 단순히 운율감만 중요한게 아니라 운율감에다가 내용까지 딱 맞아 떨어졌을 때 감탄하는 거라서... 근데 일단 원어민이 아니기때문에 내용 파악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함
아님 그냥 원어로 도전해봐. 파파고 같은거 돌려가면서
한국어는 각운이 거의 없어서 래퍼들도 거의 포기했다고 들었는데. 그레서 보통 내재율 정도만 맞출 걸
내재율 살리면서 번역하기가 더 어려울것 같은데 진짜 대단하다;
그건 그 말을 한 사람이 완전히 잘못 알고 있는 거임. 90년대에 힙합 음악이 한국에 처음 들어오고 그걸 접한 여러 아마추어들이 한국어 랩을 연구하고 시도하다가, 00년대가 시작되며 피타입, 버벌진트 등이 소속됐던 SNP라는 집단이 제대로 된 한국어 랩 라임, 즉 압운법을 구현해냄. 90년대에 그랬듯이 어설프게 같은 글자나 같은 단어 반복해서 하는 게 아니
고 정말 영어 랩처럼 라임이 자연스럽게 리듬을 형성하도록. 그 이후 모든 래퍼가 그 압운법대로 라임을 넣고 가사를 씀. 세월이 지나며 유행에 따르거나 점점 더 세련되어졌을지언정 큰 틀은 바뀌지 않음. SNP의 반대파로 한국어로 라임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펼쳤던 래퍼들도 있었지만, 현재는 다 사라졌음. 물론 그 라임 퀄리티는 그 래퍼 역량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사실 영시는 운율이 상당히 중요함. 거의 없는 시를 찾아보는게 힘들 정도. 근데 번역은 일단 내용 파악이 더 중요하지. 운율 맞춰도 뭔 말인지 모르면 말짱도루묵이니
시라는게 소설에 비해 그런 운율에서 오는 감각적 쾌감이 내용만큼 엄청 중요한것 같은데 참 애매한 지점인듯... 위에서 얘기한것 처럼 그냥 대충 의미만 이해하고 원어로 도전하는게 맞나 싶음
영어는 진짜 단어 자체가 리드미컬함... 시가 아니라도 운율감이 많이 나타나는 언어인데. 영시는....
사실 시 자체가 그 나라의 언어로 할 수 있는 진짜 극한의 극한까지 가는 일종의 실험이기 때문에 그 나라의 문화, 언어를 완벽하게 마스터하지 않으면 진짜 읽기가 너무너무 힘듦. 그래도 일단 내용 파악을 정확히 하고 운율을 건드리는게 좋은 방식이라고 봄
각운 살리는 거 아무 쓸데없음. 밀턴도 실낙원 서문에서 각운을 고대 시에는 없었던 "야만인들의 풍속"으로 비판하며 무운시로 실낙원 집필.
각운을 살리려고 할 수록 한국어 리듬이 부자연스러워질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