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앞서 말했듯 선비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로부터는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그른 줄을 아는 바에는 첨부터 공장에 들어오지 말 것이지 왜 서울서 그만두고 이리로 오고서는 하루도 지나기 전에 이런 불평을 토하는가?[7]에서 잘 알 수 있다. 선비와 간난이가 공장에 온 이유는 당연히 돈을 벌기 위해서이다. 선비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직접적으로 봉사하는 자본주의 지배체제에 대한 착취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간난이는 이런 선비에게 그것이 착취라는 인식을 심어주려 한다. 그러나, 선비는 이를 완벽히 인식하지 못한다. 작중 선비가 간난이를 따라 운동을 시도하는 모습은 다소 애매해보인다. 자신의 손에 쥐어주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기에 무언가라고 표현을 한다. 심지어는 선비는 그의 말을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고[8]라는 표현이 나오기도 한다. 즉, 선비는 스스로 그것을 깨우치지 못하고 주변의 도움간난이나 효애의 도움을 통해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해방시키려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선비의 죽음은 간난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본주의 지배체제에 완전히 착취당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선비가 죽기 직전까지 일을 한 것이 바로 그 사실이다. 로이스 타이슨의 비평이론의 모든 것』에서 마르크스의 말을 인용한 것처럼 억압적 이데올로기를 비억압적인 이데올로기로 바꾸는 방법은 그 자신도 하나의 이데올로기임을 인정하는 점이다. 필자는 이쯤에서 선비를 예를 들어 스스로 인정, 스스로 이데올로기를 인식해야만 비억압적인 이데올로기로의 전환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1.   결론

 

 인간문제』에 등장하는 선비의 억압적 이데올로기와 그것이 어떠한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로 활용되고 또 그것이 어떤 지배체제에 봉사하고 있는 지 확인했다. 즉, 선비가 가지고 있는 자본주의, 교육 이데올로기라는 억압적 이데올로기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로 작용해서 자본주의 지배체제, 신분제 지배체제, 식민주의 지배체제에 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살펴봤다. 그리고 그것이 어떠한 방식으로 비억압적 이데올로기로 변환하고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지 확인 할 수 있었다. 이러한 분석 방식을 통해 인간문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분석 끝에 얻어낸 결론은 인간문제란 짧게 말하면 지배계급의 착취, 길게 말하면 그러한 지배계급의 착취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모순을 보여줌에 있다. 선비의 시체, 즉 자본주의 지배체제 착취의 결정체로부터 얻어내는 신철의 마지막 통찰은 이를 잘 설명한다. 

[7] 강경애, 인간문제』(문학과 지성사, 2006), p. 318

[8] 강경애, 인간문제』(문학과 지성사, 2006), p. 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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