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비문학 부문

 

뉴 노멀이 진행되는 상황 속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부동은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차별을 가속화한다. 경기가 어려우면 대중은 비난의 대상을 찾는다. 아프리카는 가난하고 유럽은 부유하다. 가난하면 열등하고 부유하면 우등하다. 아프리카는 흑인이 살고 유럽은 백인이 산다. 흑인은 열등하고 백인은 우등하다. 단순화를 통한 명제 성립은 명확하고 명쾌한 듯 보인다. 그렇다면 각 나라의 빈부는 어디서 기인하는 것인가. 우리 독붕이들은 오직 이 책만의 시각에 의존해 국가의 흥망성쇠를 판단하기 보다는 하나의 설득력 있는 가능성으로 염두에 두고 읽길 바란다.

 

최근 프리미어리그를 보면 경기 시작 전 'Black lives matter' 운동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뿌리 깊은 인종 차별 철폐를 위한 일종의 사회적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대적인 인식의 기저를 바꾸지 않는 이상 표면적인 운동은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백인으로 이루어진 초기 유럽 국가들이 유색인으로 이루어진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에 자행한 식민지 정책과 그로 인한 지속적인 정치·경제적 폐단을 포함하여 서유럽과 동유럽의 경제 성장이 차이가 나기 시작한 분기점과 남한과 북한 그리고 미국 남부와 북부의 제도적 차이, 중국 경제성장의 한계점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 유명한 구절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골자이다. 수많은 학자들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차이를 규명하기 위해 가지각색의 가설을 내놓았다.

첫 번째 가설은 지리적 위치 가설이다. <총균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온난한 지역이 열대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질병 노출에 불리하며 농업 생산성이 뛰어나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경제 성장에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에 대해서 오히려 유럽 국가들보다 번영했던 앙코르, 악숨 왕조, 아즈텍, 잉카 제국 등을 예로 들며 해당 가설에 대해 전면 반박하며 불공정한 기술의 분배와 순응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한다.

두 번째 가설은 문화적 요인 가설이다.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적 윤리가 서유럽에서 근대 산업사회가 부상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고 설파한다. 이와 반대로 아프리카인의 노동 윤리 부족, 미신·주술로 인한 신기술 거부를 비롯해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의 낭비벽과 게으름이 지금의 불평등을 낳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와 같은 성향은 기존에 구축된 제도와 사회적 분위기에 의한 인센티브 차이이므로 원인이 아닌 결과라고 반박한다.

마지막으로 무지 가설이 있다. 무지 가설이란 그 나라의 국민이나 통치자가 가난을 극복하고 부패해지는 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러 차례 시행된 해외 원조와 개입이 있었음에도 지지부진하게 끝난 많은 사례들은 경제적 성장에 필요한 제도적 절차들이 기존 엘리트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없었음을 시사한다. 요약하자면 가난한 나라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 빈곤을 조장하는 선택을 하였기 때문에 의도적인 행위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가난한 나라와 부유한 나라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포용적 정치·경제 제도이다. 하지만 포용적 정치·경제 제도의 탄생은 체제 전복적이거나 우발적으로 일어난다. 그리고 그 과정에 있어서 복수의 세력이 존재하는 다원적인 구조가 성립될 때 비로소 과두제의 철칙을 피할 공산을 다질 수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착취적 정치·경제 체제를 취하고도 성장을 이룩한 국가들이 더러 있음에도 포용적인 정치·경제 체제가 선호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 고대 국가를 비롯해 러시아, 북한 그리고 일부 동유럽이 착취적 정치·경제 제도를 택했음에도 단기적인 경제 성장을 이룩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계획경제체제에서의 효율적 생산 분배 방식이 일시적으로 기대를 충족시킬 수도 있으나 사유재산의 부재와 창의적 혁신이 생산되지 않을 인프라에서 잠재적으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창조적 파괴는 소득, , 정치권력을 재분배하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독재 정권 체제에서 기술 혁신은 이중 경제를 와해시킬 요소로써 엘리트층에게 상당한 위협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공교육 신장, 교통 시설 확충, 개인 소유의 재산 허용은 엘리트층에게 구미가 당기는 일이 아닌 것이다. 일례로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의 빈곤은 식민지 해방 후에도 괴뢰 정권이 종주국을 통해 답습해왔던 찬탈적 행위를 지속함으로써 영위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흑사병이 창궐한 후 서유럽이 농노제를 폐기하고 봉건사회를 한층 더 포용적인 사회로 탈바꿈한 것과 반대로 동유럽이 기존의 틀을 고수했다는 차이는 훗날 괄목할 만한 차이를 가져왔다.

권위주위적이고 착취적인 정치 제도하의 성장은 지속적·장기적 성장으로 연결되기 어렵다. 또한 혹여나 경제 성장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악의 순환 고리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점진적인 민주주의 체제나 포용적 정치 제도는 도래하기 힘들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미국에 뒤이은 경제대국인 중국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마오쩌둥의 실패작인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을 끝으로 덩샤오핑이 한층 포용적인 사회 체제를 일구었으나 중국의 경제 성장은 잠정적으로 정체될 위험이 도사린다. 여전히 언론 탄압이 난무하며 개인의 인센티브 제공에 박약하다. 중국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충성스러운 인민군이 아닌 이윤을 창출할 인재에게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검은 고양이든 하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단 그 고양이가 잡은 쥐를 뺏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