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왜 그들은 버몬트 숲으로 향했나?
경제가 무너진 1929년과 일련의 사건들을 우리는 대공황이라고 부른다. 자본주의가 약속해온 영화는 쿠키 한 조각 남기지 않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사람들은 이루어 말할 수 없이 깊은 실의에 빠졌다. 그 자리에 스코트 니어링도 있었다.
그는 1차세계대전이 끝난 1917년, 반전(反戰) 논문을 발표했다는 이유로 기소당한 후 무죄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의 미국 사회는 모난 돌을 남겨둘 생각이 없었다. 교수직을 떠나게 된 니어링에게는 간첩혐의까지 따라붙었다.
다시 돌아온 1929년, 스코트 니어링의 눈에는 흔들리는 사회의 현실이 보였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고, 그 곳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희망도 찾을 수 없었다. 대안을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그들은 버몬트 숲으로 향했다.
2. 조화로운 삶
니어링 부부는 버몬트 숲에 자리잡으며 다음과 같은 원칙을 세운다:
+ 우리는 먹고 사는 데 필요한 것을 절반쯤은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이윤추구의 경제에서 할 수 있는 한은 벗어나기를 바란다.
+ 우리는 돈을 벌 생각이 없다. 또한 남이 주는 월급을 받거나 무언가를 팔아 이윤을 남기기를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바람은 필요한 것들을 될 수 있는 대로 손수 생산하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먹고 사는 일을 해결하는 것이 일차 목적이다. 한 해를 살기에 충분할 만큼 노동하고 양식을 모았다면 그 다음 수확기까지 돈 버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 우리는 모든 일에 들어가는 비용을 우리가 가진 돈만으로 치를 것이다 은행에서는 절대로 돈을 빌리지 않을 것이다. 땅이나 집을 담보로 넣어 융자를 얻은 뒤 이자를 갚느라 허덕이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 우리는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수확물로 해마다 봄이면 단풍 시럽을 생산할 것이다. 그리고 될 수만 있다면 다른 사람들과 힘을 합쳐 이 일을 할 것이다.
+ 단풍 시럽과 설탕을 팔아서 번 돈으로 필요한 것을 충분히 살 수 있는 한, 우리 땅에서 아무것도 내다 팔지 않을 것이다. 밭에서 거둔 채소나 곡식이 남는다면 이웃과 친구들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 줄 것이다.
+ 우리는 집짐승을 기르지 않을 것이다(ps. 노예를 두고 있는 사람은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책의 내용을 고스란이 복붙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독후감이 아닌 보고서라고 생각하지만, 이만큼 니어링 부부의 생각을 잘 요약한 부분은 없는 것 같다. 실제로도 니어링 부부는 이 원칙을 지키며 숨을 거둘 때 까지 천수를 누리며 살아갔다. 그렇다면 그들이 살고자 했던 조화로운 삶(Good Life)란 무엇일까?
니어링은 말한다: 이 체제를 그냥 받아들인다면 당신은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고 힘있는 자를 더욱 힘세게 만들기 위해 돌아가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돌아가는 무자비하고 냉혹한 기계의 힘없는 톱니바퀴가 될 것이다. 그보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 대척점에 있는 것이 바로 조화로운 삶(Good Life)이다. 경쟁을 일삼거나 탐욕스럽지 않은 삶. 누군가를 착취해야만이 살아갈 수 있는 체제로부터의 피난처, 현대문명의 대안.
그것을 위해 그들은 ‘할 수 있는 한’ 문명의 이기를 거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려 했다. 이러한 삶의 원칙은 미니멀라이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3. 미니멀라이프
세간에서는 미니멀라이프에 대해 불필요한 오해가 퍼져있는듯하다. 그러니까 세간살림을 젓가락까지 전부 당근에 팔아버리고, 텅비어버린 방을 딸감삼아 밤세 응앙응앙 하는 것이 미니멀라이프라고 말이다.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동물의 삶(Animal Life)에 가깝다.
우리가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은 오직 단방향의 관계가 아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소유할 때, 그것은 우리를 엮어버리는 양방향의 관계이다. 혹자가 담배를 피우는 것은 담배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담배에 엮여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하여 버리는 것이 오히려 사람을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다.
니어링 부부는 자신이 엮여있던 사회가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소유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역류하고 목줄을 쥔 이들을 오히려 집어삼키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을 파멸시킬 불필요한 관계를 청산하기로 마음먹었나보다.
자본주의라는 토대에서 완전히 떠날 수는 없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심지어는 죽은 후 까지도 장례와 상속을 통해 소비의 여정을 함께한다. 하지만 우리를 통해 유지되는 자본주의가 정작 우리같은 소시민들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진 않다.
4. 줄이며
최후통첩게임이라는 것이 있다. 정해진 돈을 제안자가 비율을 정하여 수용자에게 나누어준다. 이때 수용자가 거부하면 두 사람 모두 돈을 받을 수 없다. 합리적으로 보면 제안자가 9:1이라는 말도 안되는 비율을 제시하더라도 수용자는 아예 안 받는 것 보다는 받는 것이 좋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에서 수용자는 불공평한 제안을 거부했다. 이 결과는 명확하다. 사람은 작은 이득보다는 공정을 원하는 것이다. 한국의 N포세대나 중국의 탕평운동의 근본에는 이러한 착취에 대한 거부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대로 갈 것인가, 되돌아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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