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풀니스’를 읽고
한스 로슬링, 올라 로슬링, 안나 로슬링 뢴룬드,『팩트풀니스』, 이창신 역, 2019, 김영사
응모분야: 비문학
‘팩트풀니스’의 저자 한스 로슬링은 전 세계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 ‘현재 전 세계의 빈곤층 비율’, ‘전 세계의 아동들 중에서 예방접종을 받은 비율’과 같은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 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사람들이 내놓은 답을 들은 그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주어진 선지가 세 개뿐이기 때문에 임의로 선택해도 정답률이 33%는 나와야 하지만 그에 턱없이 모자란 정답률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1960년대의 세계관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세계 한편에는 극소수의 부유한 국가들이 있고 나머지 한편에는 그런 부유한 국가들과 극명히 대조되는 가난한 개발도상국들이 있다는 이분법적 세계관 말입니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세계관을 비판하면서 저자는 이 세계를 네 단계 소득수준에 따라 분류하자고 제안합니다. 그가 제안한 분류법의 각 단계마다 물을 구하는 방법, 이동수단, 요리 기술의 수준, 음식의 수준이 확연히 달라집니다. 현재 10억명이 1단계 수준의 극히 빈곤한 삶, 즉, 진흙 구덩이에서 물을 길어오고, 맨발로 몇 시간씩을 이동하며, 땔감을 구하러 다니고, 토양이 메마를 경우에는 굶주리며 살고 있습니다. 30억명은 2단계 수준의 삶, 20억명은 3단계 수준의 삶을 살고 있는데 이들 50억명은 기초적인 수준이나마 전기를 이용할 수 있고, 교육과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나머지 10억명은 4단계 수준의 삶, 즉, 우리와 같이 부유한 국가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을 받은 점은 우리가 기부를 독려하는 TV프로그램에서 흔히 접하는 제3세계의 기아로 고통 받는 그러한 극단적인 빈곤층의 수가 생각보다 훨씬 적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일생동안 세계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변화가 지난 20년간 극단적인 빈곤층의 비율이 절반으로 준 것이라고 말합니다. 제 세계관도 196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빈곤층이 지난 20년간 그처럼 줄어들었다는 이야기에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이 이분법적 세계관을 형성하게 되었는지 가만히 돌이켜봤습니다.
중학교 때 읽은 한 책의 영향이 컸습니다. 바로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이라는 제목의 책이었습니다. 알록달록 아기자기한 그림들이 가득한 책이었지만, 그 내용은 너무나 끔찍했습니다. 거기에는 냉장고에 먹을 것이 있고 몸에 옷을 걸쳤고 머리 위로는 지붕이 있어 잠잘 곳이 있는 사람이라면 상위 25%에 드는 부유층이다, 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럼 도대체 나머지 75%나 되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간다는 것일까? 이 세상에는 운이 좋아서 우리 같이 사는 소수의 사람들과 운이 그리 좋지 못해서 끔찍하게 가난한 대다수의 사람들, 이렇게 두 부류가 있구나, 라고 생각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세상은 어느새 놀랍도록 크게 바뀌었습니다. 이 시대에 맞춰서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이 개정된다면 내용을 크게 수정해야 할 것입니다.
‘팩트풀니스’의 저자는 이 이분법적인 세계관이 매우 극적인 세계관이고 인간은 그러한 극적인 세계관, 이분법적인 세계관에 끌리는 본능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렇게 이분법적인 세계관을 갖게 된 저는 이 이분법적 구도는 천지가 개벽할만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은 한 두 세기만에 절대 바뀔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이 이분법적 구도는 저를 염세주의와 허무주의로 몰고 갔습니다. ‘어찌 할 도리 없이 극단적인 빈곤에 빠진 나라들이 수없이 많고 한 개인으로서 이러한 사태에는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으니 우리는 수수방관밖에 할 게 없다.’ 그동안은 이러한 허무주의에 맞서 저를 지탱한 것은 G. A. 코헨의 다음과 같은 말뿐이었습니다.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에 실망한다는 것은 자신을 너무나 과대평가한 소치다. 애초에 네가 대양 위의 한 방울의 물 이상이 될 수 있다고 기대하지 마라! 묵묵히 네 할 일을 해라!’ 그래, 애초에 세상이 바뀔 수 없다는 것에 실망하지 말자, 라고 저를 다독였습니다. 그런데 ‘팩트풀니스’에서는 최근 20년간 세상에 어마어마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근거를 들어 보여주고 있습니다.
빈곤층의 비율이 이렇게 극적으로 감소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하게 여겨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분명히 이 책은 의미가 있고 사람들이 현재의 세계에 대한 바른 인식을 하도록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편으로 저는 이 책이 세계가 더 나아지고 있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들만 취사선택해 제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환경 문제라든가 또는 빈부격차 문제는 더 심화되고 있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나 싶어서 책을 읽으며 갸우뚱한 적이 많습니다. 그래서 다른 자료들을 찾아보았고 이 책이 몇 가지 문제들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찾은 이 책의 몇 가지 문제들을 써보겠습니다.
우선 이 책은 과거에 가난했던 국가들이 현재 얼마나 크게 성장하였는지를 보여주는 그래프는 제시하지만, 한 국가 내에서의 부의 불평등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에 관한 자료는 제시하지 않습니다. 부의 불평등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많은 자료가 있습니다. 일례로 WID에 따르면, 1980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상위 1%의 부자들이 가져가는 소득과 부는 크게 늘어난 반면 하위 50%의 몫은 사실상 정체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부의 불평등은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단순히 한 국가 내의 최하층이 영양이 결핍되고 기본적인 교육, 의료 등의 혜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극심한 부의 불평등 자체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삶에 크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과학적인 근거가 있습니다. 리처드 윌킨슨의 <평등해야 건강하다>라는 책에서는 한 사회 내의 소득 격차가 심화되면 사회 구성원들 간의 폭력이 늘어나고, 심혈관계 질환이 늘어나고,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인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도 높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사회정의라는 측면에서 보면, 한 사회 내의 부의 분배가 심각하게 불평등하다는 것 그 자체가 복지의 차원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책에서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환경 문제에 관한 것입니다. 스웨덴 린셰핑 대학교 산업경영학과 교수 Christian Berggren은 ‘팩트풀니스’를 비판하는 한 글에서 이 책은 세계가 나빠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부정적인 그래프는 누락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팩트풀니스’에서는 유조선의 기름유출량이 크게 줄었다는 그래프는 제시하지만 현재 많은 과학자들이 심각한 문제로 보고 있는 미세 플라스틱 입자가 해양에 축적되는 문제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팩트풀니스’에서는 1인당 이산화황 배출량이 크게 줄었다는 그래프는 보여주지만 아시아 신흥공업국들의 대기 오염 수준이 날이 갈수록 심각해진다는 것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팩트풀니스’에서는 1996년에 멸종위기종이었던 호랑이와 대왕판다, 검은 코뿔소가 현재 모두 개체 수가 늘었다는 걸 보여주는 그래프는 제시했으나 현재 전 세계적으로 생물다양성이 급격히 감소하는 추세라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에 실린 한 논문에서 매트 데이비스 박사는 현재의 이 급속한 멸종 추세를 두고 ‘6번째 대멸종’이라고 칭했습니다. 이렇게 환경오염이 갈수록 심각해진다는 많은 증거들이 있는데 이에 관해서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책’이 아니라, ‘책들’ 속에 길이 있을 것입니다. 한 권의 책을 맹신하지 않고 비판적으로 대하고 그와 관련된 많은 문헌을 찾아볼 때 비로소 이 책이 독자에게 유익할 것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비판적으로 읽기 + 독후감 쓰기에 대해 많이 배우게 되네요. 정말 잘 쓰신듯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