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다림은 승리를 부른다

기다림의 칼

 

일본 전국시대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세 명이다. 이들 성격을 빗대 만약 새를 울리려고 한다면, 노부나가는 울지 않는 새를 베어버리고, 히데요시는 꾀로 울게 하며, 이에야스는 울 때까지 기다린다고 한다.

 

노부나가의 불 같은 성미와 히데요시의 꾀 많음에 일본인들은 주목했다. 이에야스는 기다림의 화신이었는데, 천하 쟁패를 놓고 다투는 전투에서도 기다리고 또 기다려, 최후의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어느 하급장교가 바라본 일본제국의 육군』 『공기의 연구』 『일본인이란 무엇인가등으로 한국 독자에게 잘 알려진 작가 야마모토 시치헤이도 이에야스에 주목했다. 시치헤이가 쓴 기다림의 칼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면밀히 탐구한 책이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책의 제목인데, 원제는 그냥 도쿠가와 이에야스. 한국 출판사가 기다림의 칼이라는 절묘한 제목을 붙였다. 한국 출판시장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출간될 경우 팔릴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하고 고심 끝에 붙인 듯하다.

 

시치헤이에 따르면 이에야스는 인기가 없는 인물이었다고. 명성은 높아도 인기가 없을 수 있다고 말한다. 히데요시는 화려함을 즐기고 자랑했으며, 연극 같은 것도 자주 했으나 이에야스는 그런 것에 일체 관심을 두지 않고 검소했다. 한 마디로 재미없는인물이었다.

 

책은 이에야스의 생애 초반부터 최후의 승리까지 다룬다. 내용은 천천히 전개되며, 이에야스의 선택 하나하나를 되짚는다. 어릴 적 그는 다른 세력에게 인질로 잡혀있었다. 하지만 그 인질 생활은 현대인이 생각하는, 수시로 목숨을 위협받는 인질 생활이 아니었다. 인질의 의미는 친선관계를 돈독하게 해준다고 보면 되었다. 이에야스는 그 인질 생활 동안 귀족의 양식을 습득했다. 부유한 생활이었다. 바닥에서부터 입신양명한 히데요시와는 성장배경이 달랐다.

 

이에야스는 언제나 대세를 추종했다. 오다 노부나가가 일본 열도를 통일할 기세로 떠오를 때는 노부나가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패자에 가까워질 때면 히데요시에 순종했다. 히데요시가 이에야스에게 자신의 영지를 버리고, 에도로 가라고 할 때 이에야스는 군말없이 이동했다. 명령을 받자마자 이에야스는 에도로 옮겨갔는데, 히데요시도 그 신속함에 놀랄 정도였다.

 

에도라고 하면 나중에 막부를 열었던 곳이니까, 좋은 곳이잖아?’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에도는 민가조차 별로 없는 궁벽한 어촌이었다. 좋게 말하면 개발 잠재력이 높은 땅이고, 나쁘게 말하면 쓸모없는 땅이어서 모두가 피하는 곳이었다. 히데요시는 이에야스의 영향력을 축소하려고 에도로 이동하라 명을 한 것이고, 이에야스는 두말 않고 근거지를 옮겨 대세를 따랐다. 에도로 간 이에야스는 토목건설에 재능 있는 부하 덕분에 에도를 개척한다. 이에야스가 공들여 개발한 에도 땅이 현재까지도 일본의 수도로 자리매김 하고 있는 도쿄다. 일본의 밑그림은 이에야스가 그린 셈이다. 현대 일본의 기초를 건설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이에야스는 일본에서 큰 인기가 없었다. 기다리고, 또 기다려서 마침내 인내로 천하를 손에 집어넣는 인물, 그런 인물이 어떻게 인기가 있겠는가.

 

일본인들이 영웅으로 여기는 인물은 메이지유신 삼걸(三傑) 중 하나인 사이고 다카모리다. 사무라이답게 권력과 투쟁하다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자 자결해 사내답게죽은 남자. 그 남자가 맞대결을 펼친 막부가 에도 막부’, 즉 도쿠가와의 막부다. 그러니 도쿠가와 막부는 메이지유신이라는 시대정신에 걸맞지 않은 반개혁 세력이었다. 도쿠가와 막부의 원조는 이에야스였으니, 현대에 들어와서도 노부나가나 히데요시만큼의 주목을 받기 어려웠다.

 

이에야스는 나서지 않고 참고 또 참으며, 지신이 전투에서 대패해 똥을 지린 모습까지 그림으로 남길 정도로 자기 객관화와 반성이 철저한 인물이었다. 그는 권력과 맞서지 않고, 권력이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밑으로 들어올 때까지 참았다. 자신이 내면화한 대세 추종의 원칙에 따라 히데요시가 떠오를 때는 두말 않고 따랐으며, 자신이 천하의 패자가 되었을 때는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에게 자신에 따르라고 요구했다. 히데요리는 버텼고, 이에야스는 이 점을 이해하지 못 했다. 자신의 대세 추종원칙에 어긋났으니까. 그는 히데요리를 토벌함으로써 대세 추종을 완성했다.

 

기다림의 칼은 임진왜란 당시 왜국에 포로로 잡혀간 조선인 강항이 남긴 기록(간양록)까지 활용하며 이에야스의 그림자를 좇는다. 저자는 강항의 기록에 대해 ‘100% 정확하지는 않을지라도 당시 사람들의 풍문이나 일반적인 인식 수준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한다.

 

기다림의 칼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에야스가 모범으로 삼았던 인물이다. 그 인물은 바로 모리 모토나리. 일본 전국시대에 수많은 인물이 실력을 다퉜지만, 그 중에서도 모리 모토나리는 독보적인 실력을 보여줬다. 모토나리는 21살에 처음으로 전쟁에 출전해 75세까지 55년 간 현역으로 활동했다. 226번의 전투에 나가 백전백승(!) 했다.

 

손자병법에서 손자는 지피지기 백전불태를 얘기했지, 백전백승을 얘기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모토나리는 병법을 뛰어넘은 사람이었다. 그는 심리전, 암살, 군사적 기만을 자유자재로 구사했으며, 근성으로 지구전을 펼치는 것에도 능했다. 헤아릴 수 없는 전투에 승리해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 모토나리는 그러나 늘 인과응보를 두려워했다. ‘인명 살상의 업보를 자신의 대에서 다 갚을 수 있다면 정말 다행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수많은 무장의 명멸을 지켜보며 난세에 홀로 살아남은 사실을 나 자신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바라고 겸손하게 몸을 낮췄다. 그는 결코 기세등등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천하의 대세를 결정지은 세키가하라 전투가 끝난 후, 이에야스의 가신은 기뻐하며 개선가를 울리자고 제안했다. 모토나리를 본받은 이에야스의 답변은 무엇이었을까.

 

참으로 지당한 말씀이다. 그러나 그대들을 비롯해 무장들의 처자가 오사카에 인질로 붙잡혀 있지 않은가. 그 심중을 헤아리니 나 또한 심히 가슴이 아프다. 내가 3일 안에 오사카를 공격해서 무장들에게 처자를 인도하고 안심시킨 후에 비로소 승리를 고할 것이다.”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는 신중함이다. 이 말로 이에야스는 자칫 풀어질 수 있는 장수와 병사들의 기강을 잡음과 동시에 그들에게 마음을 쓰고 있다는 배려심까지 보여주었다.

 

이에야스는 언제나 모토나리를 그대로 빼다 박은 듯 따라했고, 17세에 첫 전투에 출전해 74세까지 58년간 현역으로 활동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적이 나가떨어질 때까지 기다려, 모토나리를 뛰어넘은 이에야스는 전국시대 최후의 패자(霸者)가 되었다.

 

기다림의 칼은 인내와 불굴의 화신 이에야스를 현대에 주목할 만한 영웅으로 재조명한 책이다. 안타깝게도 이 책의 한국어판은 현재 절판됐다. 중고로 구하려 해도 가격이 부담스럽다. 그래도 가까운 도서관에서 찾을 수 있으니 한번쯤 읽어보며 이에야스의 지혜를 배워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