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리 핑크의 <재난, 그 이후>를 읽고

- 시스템이 붕괴된 사회에서 삶과 죽음의 책임을 따지는 문제에 관하여 -

 

나는 이 책을 제1416 독후감 대회에 응모하기 위해 읽었는데 분량이 각주 제외하고도 600페이지에 육박하여 결국 기한 내에 맞추지 못하였다. 굳이 세월호를 언급하지 않아도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와 같은 인재(人災)가 아닌 허리케인이란 천재지변(天災地變)에 대체 무슨 시스템의 붕괴에 따른 삶과 죽음의 책임을 묻는다는 말인가? 끝까지 읽은 다음에야 전혀 관심도 없던 지구 반대편에서 있었던 사건을 다룬 책을 대상 도서로 선정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방금 이야기 한 것처럼, 우리는 일단 가만히 대기하도록하겠습니다. 당신이나 댈러스 본사의 누군가가 환자 대피 지원필요성에 관해 연락을 줄 때까지 말입니다.”(p.114) 라는 당시 급박한 상황에서 보낸 것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느긋한 이메일 내용이나 병원 직원들은 군용 헬리콥터로 손쉽게 대피할 수 있도록 환자복을 걸치고, 환자 분류 기호인 ‘C’라는 글자를 자기네 몸에 적어 넣었다. 일부는 서로 사진까지 찍어주었는데, 이들은 수술복 위에 환자복을 대강 걸친 다음, 가슴과 손과 이마에 새빨간색의 환자 분류 기호를 적은 채 씩 웃고 있었다.”(p.496) 같은 서술을 접할 때 특히 그러했다.

 

이 책은 <1부 치명적인 선택Deadly Choices><2부 응보Reckoning>로 구성된 탐사 르포취재물이다. 탐사 취재하는 기자 역시 사람인지라 중립적인 서술을 한다 해도 주관적인 해석이 들어갈 수밖에는 없고, 나는 그런 저자의 관점에 많이 공감하며 읽었다. 1부는 역대 최대 규모의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덮친 5일 동안 메모리얼 병원의 의료 종사자, 환자뿐만 아니라 구조대와 병원 전문경영인, 정부 재난대비 정책결정권자 같은 여러 등장인물들의 배경뿐만 아니라 행적을 여러 증언과 증거자료들을 토대로 흡사 재난 영화처럼 세세하게 시간대별로 추적하여 재구성했다. 그리하여 그들이 대체 어떤 치명적인 선택을 어떻게, 그리고 도대체 왜 내리게 되었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이어지는 2부는 우리가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미국식 법정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피고는 철저하게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며 진실을 숨기고, 사건을 자신의 보신에 이용하려는 사법부 높으신 분들과 자기 지역의 치부를 감추려는 검시관과 책임을 회피하려는 병원의 높으신 분들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키면서 얄밉도록 노련한 법꾸라지 변호사들은 마치 박살난 거울의 파편을 최대한 도로 맞춘 다음, 거기에 원래 어떤 영상이 떠올랐을지 추론해보는조사관들의 노력들을 유유히 수포로 만들어 결국 진실은 덮어지고 정의의 응보 따위는 구현되지 않는다.

뉴올리언스의 저지대에 위치한 메모리얼 병원은 허리케인으로 인한 수해(水害)가 빈번한 지역이었다. 정부와 병원의 재난대비 계획 수립 책임자는 진작부터 대비를 위한 예산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경고를 수차례 이상 했던 곳이었다. 물론, 당연하게도 시간과 예산은 언제나 충분하지 않기에, 지하에 있는 비상용 발전기를 지상의 높은 층으로 옮기는 문제는 무계획적으로 증축되어 혈관계처럼 뻗어있는 전기 배선들의 막대한 정리 비용 때문에. 자본주의적인 비용-효용의 논리에 따라,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주로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재난의 대비와 대처 같은 기술적이고 기술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재난이란 극한의 상황에서 내려진 문제의 치명적인 결정과 그 책임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역대 최대의 허리케인이 뉴올리언스에 상륙하자 발생한 폭우로 인근의 폰차트레인 호수의 둑이 무너져 도시는 물바다가 되었고 도시 곳곳에서는 전력이 두절되었다. 저지대에 위치해있던 메모리얼 병원은 비상용 발전기조차 침수되어 동작을 멈추고, 환자에게 공급해야할 산소조차 고갈되어가는 절망적인 재난 상황에 처한다. 점차 상황이 악화되자 메모리얼 병원의 의료종사자들은 살아남을 가능성에 따라 환자들을 분류했다. 그리고 몇몇 의사는 살아남을 가능성이 현저하게 낮다고 판단한 환자에게 호흡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모르핀을 주사하는 선택을 한다. 그들은 그 주사를 놓는 행위가 환자에게 어떤 효과가 발생할지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살아남을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분류한 환자들은 이송 도중 사망이 유력할 것으로 예상되는 환자들과 이송이 어려울 170kg의 비만환자뿐만 아니라 소생금지 의사(DNR:Do Not Resuscitate)를 표시한 환자들이었다. 재난 초기부터 침수된 메모리얼 병원에서는 헬기를 이용한 환자의 탈출 기회가 종종 있었으나 가장 위급한 환자들의 탈출 우선순위는 무슨 이유에선지(아마도 이송 중 사망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을까?) 가장 나중으로 결정되고 말았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의료진들이 병원에서 탈출해야 하는 순간이 오자 살아 있는 환자는 아무도 남겨두지 않는다.”, 마치 초토화 작전이 연상되는 행동강령에 따라 가장 위급했던 환자들에게 당신의 기분을 나아지게 하는 것을 제가 드릴 거에요.”라는 말을 전하며 안락사 조치가 신속하게 실행되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놀라운 점은, “직원들이 절망적으로 기다리던 상황이 아니라, 오히려 대피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문제의 계획이 실행되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의사와 간호사들은 당시 메모리얼에 있던 환자 가족 가운데 어느 누구와도 (그 결정에 대해) 상의하려는 노력조차 없어 보였다”(p.538)는 서술은 닥터 애너 포와 닥터 존 틸 그리고 그들과 공범인 두 명의 간호사에게 정말로 분노를 넘는 혐오감을 느끼게 했다. 나와 내 어머니 역시 주변의 기나긴 연명치료를 버티기 힘들어하는 환자와 그 가족들을 보면서 안타깝다 못해 안락사가 빨리 합법화되어 우리도 스위스나 네덜란드처럼 알약 하나 먹으면 편안하고 깔끔하게 떠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평소에 공유하기도 한다. 막상 그 때가 왔을 때에는 내가 보내드릴 준비가 되어있을지, 그 분의 의사 역시 흔들림 없이 확고할지 알 수는 없지만,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침해되어서는 안 되는 영역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삶과 본인의 선택, 그리고 그 양자 모두에 대한 존중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특히 문제의 결정을 주도적으로 내리고 시행한 인물인 닥터 애너 포란 인물에 대해서 그녀의 가족 관계를 비롯한 배경과 재난 전후뿐만 아니라 재난 동안에 환자들에게 얼마나 헌신적이었는지를 상당히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세세하게 서술한다. 재난 동안 환자를 돌보기 위해 병원으로 돌아온 그녀는 전기가 두절되고 고립된 열악한 상황에서 막대한 업무 부하 때문에 수면조차 제대로 취하지 못하면서도 헌신적으로 환자들을 돌보았다. 그러나 위기 상황에서는 분별을 잃기도 무척 쉬웠는데 이는 밤새 자지 않음으로써 정신이 혼란스러웠던 까닭이었을까, “결국 일단 환자의 우선순위가 (한번) 정해지고 나면, 그 때 이후로 각 환자에 대한 재판단의 중요성이 쉽게 망각되었기 때문일까. 지속적으로 헬기를 통해 산소통과 환자들을 탈출 시키거나 도울 수 있는 자원들이 이용이 가능해졌음에도 (비록 산소통을 열기 위한 렌치가 없어서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결국 닥터 애너 포는 모르핀 혼합물을 가장 위중한 환자들에게 주입하기로 결정한다. 어떤 흑인 환자는 모르핀 내성이 너무 강하여 여러 번 주사해도 효과를 보지 못하자 애너 포를 돕던 닥터 존 틸은 그 환자의 얼굴에 수건을 대고 질식사를 시키기까지 한다. 과연 이것이 안락사로 분류될 수 있는 묘사이기는 한지 상식이 뒤바뀌는 느낌에 충격이 상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