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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도 한동안 그의 악은 한 허무적 탐미주의자, 혹은 한 탐미적 허무주의자의 탈 속에서 번성하였다. 그가 탈 속에서 화려하게 부르짖으면 그 주위에서 떠들썩하게 갈채하는 예술하는 천민들이 아직은 약간 남아 있었고, 더 많은 시장의 천민들은 별로 위태로울 것도 신기할 것도 없는 그 관념의 유희를 굉장한 곡예처럼 황홀하게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러난 사이 10.26이 나고 다시 12.12를 거쳐 5.18이 터지면서 ‘80년대 민중의 날들’이 왔다. 아직도 그 의제(擬制)가 우리 사회 곳곳에 상처로 남아 있는 그 민중의 날들은 곧 그의 날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그는 저항시인에다 민중시인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날들의 끄트머리에는 민족시인이란 칭호가 다시 덧붙여지게 된다.

악도 성숙하고 지혜로워지면 권위를 가진다. 권위는 정신적인 권력이고 그 권력은 당시의 불안정하던 내 정신에도 영향을 주었다. 솔직히 나는 80년대가 반 이상 지나가도록 그가 가지고 있는 저항시인 민중시인 민족시인이란 칭호가 실은 하나의 탈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했다.




그의 악이 번성하는 한 파렴치한 엽색(獵色)의 식단도 풍성했다. 자랑스레 휘젓고 다니는 색주가는 기본이었고 손쉽고 뒷말 없는 유부녀는 속되게 표현해 간식이었다. 더욱 악의 섞어 말하자면 신선한 후식도 그 무렵의 그에게는 흔했다. 시인의 허명에 조급했다가 화대(花代)도 없이 몇 달 침실봉사만 한 신출내기 여류시인이 있는가 하면 뜻도 모르고 관중의 갈채에만 홀려 있다가 느닷없이 그의 침실로 끌려가 눈물과 후회 속의 아침을 맞는 얼치기 문학소녀가 있었고, 그 자신이 과장하는 시인이란 호칭에 눈부셔 옷 벗기는 줄도 모르다가 살이 살을 비집고 들어서야 놀라 때늦은 비명을 지르는 철없는 여대생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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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글쟁이가 할 수있는 최고의 디스라고 봄 나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