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뫼르쇠를 위한 변명 (문학 6번)


이 감상문은 어머니는 사실 뫼르소를 사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 근거는 개연성이 결핍되어 있으며, 소설 전체로 보았을 때 모순되는 지점이 많다그밖에도 여러 주장들을 강하게 하고 있으나 근거가 빈약하다말 한마디 한마디를 신중하게 한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해석은 독자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단 그 해석이 충분한 근거와 논리성을 갖췄을 경우에만. 작품에서 뭘 느끼든 그건 자유지만 오독하는 건 독후감으로써 비판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읽었을 때 문제라고 생각하는 부분들을 인용하고 그 근거나 의문점을 적었다. 나와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꼭 댓글 남겨주길 바란다. 내가 잘못 이해한 거라면 나도 고치고 싶으니까.


참고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랍인을 살해한 뫼르소에게 분노하지 않는다프랑스와 알제리의 관계를 언급하며 말했는데그런 관점으로 이방인을 다시 본 <뫼르소살인사건>이 있으니 참고해보면 되겠다.

 

그의 어머니에 대한 정보는 사망 장소가 양로원이라는 것과 양로원에 들어가 자주 울었다는 것뿐이다. 우리는 개를 잃어버리고 우는 살라마노로부터 엄마 생각을 하는 뫼르소를 통해, 그녀가 양로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처절함을 어렵지 않게 그려볼 수 있다. 양로원에 부모를 버리는 자식들이란 우리의 일상 속 흔한 광경이기 때문이다.

->먼저 어머니가 양로원에 들어가 자주 울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습관 탓이라고, 양로원에서 데라고 나오겠다고 했어도 울었을 것이라고 뫼르소는 말하고 있다. (앞에서 습관에 대해 그렇게 늘어놓고서 왜 이걸 반대로 봤는지 이해가 안 된다.) 그러므로 어머니가 양로원에서 처절하게 죽음을 기다렸다고는 보기 어렵다. 심지어 원장은 어머니가 양로원에서 동년배들과 행복하게 지냈다며 말한다. 게다가 어머니는 약혼자 같은 관계를 만들어 지내기까지 했다. 이렇게 보면 뫼르소가 어머니를 양로원에 버렸다고만 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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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랑했다사랑할 수밖에 없었다에 불과하다. 사랑은 타인을 향한 애정이 아닌 고독에 대한 두려움이기 때문이다

-> ‘사랑했다는 왜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인가? 뫼르소가 어머니를 어쩔 수 없이 사랑했던가? 그 근거가 작품 속에 있는가? 고독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어머니를 사랑했다면, 뫼르소가 고독한지부터 증명해야 한다. 뫼르소는 고독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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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습관을 사랑했듯이 그의 어머니 또한 습관을 사랑했고, 이로써 그녀의 울음에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면, 그녀가 아들을 사랑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 그녀의 울음이 의미가 없을 경우, 그녀가 아들을 사랑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 충분한 개연성을 갖추고 있는가? 게다가 뫼르소는 마지막에 다른 사람의 죽음, 어머니의 사랑,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하고 외친다. 어머니의 사랑이 자신에게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인데, 그걸 가지고 어머니가 아들을 사랑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어머니의 사랑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것과 어머니의 사랑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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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독백이 자아내는 낯섦이란 그가 사랑받고 자랐다는 확신이며, 이 확신이야말로 끊임없이 해명해야 하는 부조리의 감정인 것이다.

->어떤 독백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뫼르소는 이 소설을 통틀어 자신이 어머니에게 사랑받았는지 의심한 적이 없다. 마리와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오히려 사랑 같은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사랑받았는지 확신이 없어 부조리의 감정을 느낀다고 해석하는 것이 정말 뫼르소를 위한변호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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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의 공통점은 이익에 근거하여 생각한다는 데 있다.

-> 갑자기 이 말이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 이익에 근거하여 생각한다는 것은, (글쓴이의 해석에 따르자면) 어머니에게 사랑받지 않았으므로 자신도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아마 이 문장부터 새로운 소주제가 시작되는 거 같은데 구분이 모호하여 이해하기가 어렵다. 소제목을 넣었든지, 둘 사이에 문장을 첨가하여 이어주든지 했어야 한다. 새로운 소주제가 시작되는 게 아니어도, 문장들 사이의 관계를 명확히 해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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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자는 타인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믿는다.

->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자는 타인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믿는다고 했는데, 그 근거가 무엇인가? 그리고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자는 작품의 내용을 고려할 때 뫼르소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들이 타인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던가? ‘타인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믿는사람이 뫼르소라고 가정해보아도, 그는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자인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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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이 본보기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해도, 짐승 같은 놈들을 사회에서 영원히 추방하잖아요?’ 그러나 우리는 무보수로 사형 집행인이 되겠다고 지원하는 수백 명의 사람들을 주목해야 한다. 이들 중 선택받는 집행인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우리는 선택받지 못한 수백 명의 사람들이 무고한 시민으로 돌아가기를 기대할 수 없다. 그들 중 적어도 대여섯 명의 사람들은 사형으로 해소하지 못한 살인 충동을 사적인 방안으로 해결할 궁리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합법적인 살인자로 선택받지 못했다는 회의감, 선택받은 자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굴욕감이 내일의 사형수를 탄생시킨다. 그들의 사적인 방안이 무엇일지는 당신의 상상에 맡기겠다.

-> 사형이 짐승 같은 놈들을 추방한다는 장점이 있다는 말에, 글쓴이는 사형을 집행할 경우 살인 충동을 가진 이들이 사형 집행인에 지원했다가 떨어지게 되어 더 살인충동이 강해지므로, 결과적으로 사형을 진행하지 않는 게 낫다고 답한다. 이는 먼저 짐승 같은 놈들을 추방할 수 있다는 장점에 대한 답이 되기 어렵고, 둘째로 사형을 집행하지 않을 때의 공리가 더 크다는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

무보수로 사형 집행인이 되겠다고 지원하는 수백 명이 정말 있는가? 역사적으로 사형 집행인은 최하층으로 천시되어 왔으며,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려 살아간다. 그리고 사형 집행인에 지원했다가 떨어질 경우 살인 충동이 더 강해진다는 것도 비논리적인 가정에 불과하다. ‘합법적인 살인자로 선택받지 못했다는 회의감이나 선택받은 자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굴욕감이라는 주장은 무엇에 근거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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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실을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그에게 감동한다. 나의 감동은 그가 허구의 인물임을 시인할 뿐이다. 소설 속 인물이란 실존하지 않으며 이는 나에 대해 아무런 의견도 품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 진실을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이에게 감동한다고 해서, 그 대상이 반드시 허구의 인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진실을 위해 죽은 이들은 많았다. 그리고 이는 나에 대해 아무런 의견도 품지 않았음을 의미한다.’고 했는데, 설명이 더 필요하다. ‘나에 대해 의견을 품는 것의 여부소설 속 인물이 실존하는 것의 여부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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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인간이 짊어질 수 있는 최고 형벌이며 죽음은 모든 인간이 부여받는 최초의 구원이다. 그러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뫼르소의 살인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반증이다. 자살할 용기가 없던 그에게 단두대는 유일한 구원이었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단 하나,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 자살할 용기가 없었는데 사형을 당하게 되었으니 그것이 구원이라고 한다. 뫼르소가 이 소설 속에서 단 한 번이라도 자살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던가? 아니면 적어도 자살할 용기가 없다고 말한 적이 있었던가? 시지프 신화의 첫 문장을 인용했는데 제대로 이해하고 쓴 것인지 의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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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점들을 고려한다면, 나는 이 독후감이 정말 '뫼르소를 위한 변명'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