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살다 이런 소설은 처음 접함.

아무런 드라마도 없이 극적 전개도 전무하고

그렇다고 수기형식의 문학처럼 내면의 점진적인 고양에도 전혀 관심없으며

오로지 제목 그대로 인간과 세상에 대해 썩은 비소와 늪 같은 암울로 아무 미사여구 하나 없이 건조하게 일관하는

작가의 단순한 편년체적 개인 여정을 아무 의미도 없이 반복해갈 뿐인데

근데 이게 너무나 가슴을 찔러...


읽기가 참 어려운 게 말이 어렵거나 재미가 없어 그렇다기 보다

이 소설은 애초에 독자에게 이걸 읽어야할 아무런 이유를 제시를 안 해. 관심도 없고.

읽으라고 읽히라고 쓴 글이 아니란 소리..

아무 캐릭터도 없이 순전히 자기 자신만을 통해 세상과의 부조리로 어그러지고 불의에 물들어버린 비관적 세계관과 염세적 자조를

마치 사건 진실을 쫓는 자의 고독한 정의감 마냥 투철하게 낯낯이 밝혀내려 함.


민희식 교수의 번역으로 읽었는데, 거의 빙의가 아닌가싶을 정도로 굉장한 수준의 메소드 번역을 보여준다. 

이형식의 번역은 너무나 뻔하게 도식적이고 사전적이기만 한데다 불어 특유의 유려한 문장미도 전혀 살지 않아 개비추.

'밤의 끝까지 여행' 뒤에 바로 이어서 집필한 작품인 '외상 죽음'이 이형식 번역 뿐이라는 게 너무 비극임...


한 범 쯤 꼭 읽어볼 만한 소설임엔 분명함.

왜 이 소설이 그 많고 많은 세계문학 전집에 한 번도 끼이지 않아왔는지 너무나 의아할 정도임.

문학 문학 그래서 꼭 어디 거창한 이념이나 이상이 심어져 있어야만 걸작 대우를 받는 탓인지..

이런 우수한 작품을 아는 사람만 아는 듯해 안타까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