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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과 조금 동떨어져 있는 것 같은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더 동떨어져있는 것 같은 분야가 철학 인 것 같았다.
서양철학사, 동양철학사를 보면 이름부터 외우기 힘든 사람들이
어려운 용어를 써가며 자신의 의견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것처럼 장황하게 (내가 듣기에) 말한다.
지식인들의 반응과 사람들이 추켜세우는 것을 보면
그들의 의견들이 인류사의 곳곳마다
지대한 도움이 되었으리라는 것은 알겠지만
실생활과는 아득히 멀리서 벌어지는 일 같은 느낌이다.
고대 서양 철학사에 플라톤은
모든 물질이 물,불,공기 흙이라는 기본 원소들로 이루어졌다는데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그러한 생각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아는 것에 재미를 느끼면 되는 건가?
철학이 고루하게 느껴질 때는 그것이 당장 실용적이지 않다는
지극히 속물적인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책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철저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철학을 실생활에 유용하게 써먹도록 한다.
서양철학, 동양철학 시대순, 나라별로 묶지 않고
오로지 한 개인에게 유용한 사상가들의 지혜가 담긴 정보를
시간(철학자가 살았던 시기)과 공간(서양,동양)을 여기저기 넘나들며 전한다.
그렇다고 중구난방식으로 전하는 것이 아니다.
3개의 카테고리를 따라 분류되었는데
나에 대한 철학(자아)과 나와 상대에 관한 철학(관계)
그리고 나와 세계에 관한 철학(관점)들을 각 분류별로 모았다.
읽으면서 정말 여러 사상가들의 유용한 생각들을 짧게나마 전해들을 수 있었다.
철학은 어떤 명문대 교수의 서재 같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생활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고 쓰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대부분이 노동과 소비로 세상을 움직일 때 사상가들은
대신해서 어떠한 사안을 심사숙고한다. 그리고 보편적 생각의 허점을 찌른다.
그 허점은 촌철살인 같기 때문에 지혜롭다.
지혜로운 생각은 여러가지 오해를 풀어주는 것 같다.
나와 타자와 세계에 대한 오해는 깊이 생각하지 않아서 생기는 것 같다.
그러한 오해가 쌓일 수록 나와 타자와 세상을 좁게 보고 아둔해지는 것 같다.
철학(philosophy)의 어원은 philos(지혜)와 sophia(사랑)의 합성어이다.
‘지혜를 사랑한다’는 의미이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따로 있지 않고 항상 필요한 것 같다.
어떤 사상가의 생각을 맹목적으로 따를 필요는 없지만
내가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 항상 있다는 것을 염두하고 살아가야겠다.
+
좋았던 챕터 3개 부분 발췌
언어 너머의 맥락
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
어떤 낱말이 어떻게 기능하느냐는 추측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낱말의 적용을 중시하고, 그로부터 배워야한다.
-철학적 탐구 中
동일한 언어라도 사용되는 맥락이 천차만별이라는 것, 그래서
한 가지 의미만을 고집한다면 우리 삶에는
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
우리는 자신과 대화하는 사람이 어떤 삶의 문맥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는지 섬세하게 읽어내야 한다.
-강신주
사유의 의무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삶이 되게 한 것은
(결코 어리석음과 동일한 것이 아닌) 순전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였다.
이처럼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과 이러한 무사유가 인간 속에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대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사실상 예루살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中
분업화와 전문화가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우리는 서로에 대해 무관심해지기 마련이다.
...
우리는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도대체
어떤 성격의 일인지 반성할 틈도 별로 없다.
그렇다면 아렌트가 지적했던 것처럼 언제든지
아이히만이 될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아이히만처럼 무사유의 상태에 빠져있다면,
아이히만이 저지른 악, 즉 무사유로 인한 악은
도처에서 생겨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강신주
미꾸라지의 즐거움
왕간 <왕심재전집>
도를 얻으려는 사람이 어느날 우연히 시장을 지나가게 되었다.
생선 가게에서 그는 우연히 드렁허리가 잔뜩 들어 있는 대야를 보았다.
드렁허리들은 서로 얽히고 눌려서 마치 죽은 것처럼 보였다.
바로 그 순간 그는 미꾸라지 한 마리를 보았다.
미꾸라지는 드렁허리들 속에서 나와 아래로 위로, 혹은 좌측으로 우측으로,
혹은 앞으로 뒤로 움직이고 있었다. 쉬지 않고 생생하게 움직이는 것이
마치 신묘한 용과 같았다. 그러자 드렁허리들은 몸을 움직이고 기운이
통해서 '삶의 의지'를 회복하게 되었다.
-왕심재전집 中
미꾸라지가 드렁허리 사이에서 즐겁게 헤엄친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말대로 미꾸라지는 드렁허리들을 동정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드렁허리들로부터
보답을 받으려고 생각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저 미꾸라지는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싶은 자신의 본성에
충실했을 뿐이다.
...
소통과 공감은 동정심이나 혹은 일체의
보답 의식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왕간은 확신한다. 우리가 자연스러운 삶을
가장 즐겁게 영위할 때 소통과 공감은
기대하지 않아도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을 말이다.
-강신주
폰트바꾼거 감성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