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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베를 뒤적이던 중, 문학동네 신인상에 수록된 작품(이라기보다는 종이 쓰레기에 가까운) 김지연의 <사랑하는 일>에 대해 이슈가 되었던 걸 보았다.


사실 필자는 이런 논란을 보면서 이 이슈가 지금 터진 게 더 놀라웠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신인 작가를 뽑는 곳에서 PC를 추구하면서 정작 수상자들은  남성 작가를 단 한 명도 뽑지 않고 전부 여자로만 구성을 했었기 때문에 이에 관해서 문제가 터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역시나(PC 주의를 지향하며 누구보다 불평등한) 문학계답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었다.


먼저, 대도시의 사랑법도 그렇고 이번에 논란이 터진 사랑하는 일도 그렇고 요새 문학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성적 소수자가 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실제로 2021년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 7개 중 4개가 퀴어작품(...)이다.

그렇지만 필자가 단순히 퀴어 작품을 싫어해서 라고 말하기엔 수상집에 같이 수록된 김멜라: <나뭇잎이 마르고>같은 경우 작품성이 꽤 뛰어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단순히 퀴어가 싫다고 무책임하게 평가하기보다 왜 다른 퀴어작품들보다 이 작품에 대한 필자의 평가가 낮은지 조금 생각해보기로 했다.


<사랑하는 일>에는 한^남같은 비하적인 용어를 사용했다는 문제점도 있겠으나 필자가 생각하기에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내로남불에 있다.


일단 이 소설은 여타 다른 페미니스트 소설처럼 가부장적인 가정에 대한 클리셰를 팍팍 집어넣으며 시작한다.

"정말 결혼은 안할 거야?"

"그래도 평생 혼자 사는 건 너무 외로운 일이야. 마음 맞는 친구라도 찾아서 같이 살아."

뭐 여기까진 충분히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까 나는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극이 전개되며 문제가 발생한다.

레즈비언이자 페미니스트인 주인공은 당당하게 대학까지 아무런 문제없이 잘 키워 준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이상한 사상에 심취해 지적을 하는 아버지를 두고 자신을 되돌아보기는 커녕 한^남이라고 일축하며 집안을 뛰쳐나간다.


이런 당당한 행보와 대조되게 주인공은 시간이 지나 근로소득만으로는 서울에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다시 부모한테 빌붙어보려고 시도해보지만 역시나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사상은 바꿀 조금의 여지도 주지 않는다.


자신의 레즈비언 파트너조차 그런 그녀를 "너... 진짜 패륜아 같았어."라고 표현하지만, 주인공은 반성은커녕 아버지를 더 싫어하려고 건수를 잡고 소설이 다 끝날 때까지 반성의 조짐 없이 끝이 난다.


웃긴 건, 결국 이 악물고 자신을 반대하는 부모님의 유산을 받아냈다는 것이다. 부모의 말은 듣기 싫고 자신이 그토록 무시하는 부모의 멍청한 신념이 일궈낸 유산만큼은 얻어가고 싶다는 것이 대체 어느 나라 페미니스트 논리인지 필자는 글을 읽으면서 내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떤 누군가는 이런 생각에 대해 '이것이 소설에 불과하므로 작가가 비판하고 싶어 하는 대상을 나타낸 것 아니냐?`라는 지적을 할 수 있겠지만 필자는 작가가 남긴 후기 마지막 문단으로 반박하고 싶다.


"

이 소설의 밑바탕에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는 법이 필요하다는 마음이 있었다. 동성혼이 법제화되고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날을 기다린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개소리는 집어치우고 밀린 일들을 해치워나가야만 한다 이 소설의 많은 장면이 어서 빨리 철 지난 이야기가 되길 바란다.

"


결국 이는, 작가가 비판하고 싶어하는 대상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루쉰의 아Q정전처럼 독자들이 주인공에 이입하며 자신과 비슷한 모습을 어떤 조언없이 교정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여타 다른 PC주의자의 부정적인 모습처럼 "똑똑한 내가 맞아. 그니까 내 사상을 따라와. 이 멍청한 것들아"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오늘의 양평식

사랑하는 일

세상은 다름이 아닌 틀린 것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