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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고전'을 읽는다고 해도 18~19세기 작품들만 읽고 이렇게 오래된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기원전 800년의 작품이 왜 아직도 읽혀야 하는가? 그런 질문을 던지면서 읽기 시작했다.
아래에는 감상을 세 가지 테마로 나눠서 정리했다.
1. 신들은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
그리스 로마 신화라고 해서 나는 신들이 직접 싸우는 모습을 기대했다.
그런 장면은 20~21권에서 신들의 전투를 묘사하면서 등장할 뿐,
신들은 전령이나 동료 장수 등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대화 등의 방법으로 간접적으로 유도하기만 한다.
호메로스는 '인간들의 운동'을 매끄럽게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 신들을 이용할 뿐, 언제나 이야기의 중심은 인간이다.
신은 단지 준비된 인간의 등을 떠밀어 줄 뿐이다.
2. 헥토르
헥토르는 트로이아 진영의 가장 강력한 장수로 묘사된다.
특히 아카이오이족*의 함선들이 눈앞에서 유린당할 때도 전투에 참가하지 않는 아킬레우스와 달리
*당시는 헬라스라는 말이 없었고 아카이오이족이나 다나오스 백성들이란 말로 그리스 본토 사람들을 칭했다.
아버지에게, 아내에게, 트로이아인들에게, 심지어 헬레네와 파리스에게도 언제나 도시의 수호자이자 가장이었다.
그에 못지 않게 헥토르에게는 인간적인 면모도 많다.
아이아스와의 일대일 대결에서 고전하고, 돌에 맞고 의식을 잃어서 죽을 고비를 넘기며,
아킬레우스와의 맞대결에서 공포를 느끼고는 트로이아 성곽을 따라서 도주한다.
원초적이고 어린 아이 같은 분노를 지닌, 그렇지만 겁을 모르는 신의 아들 아킬레우스보다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성품을 가진 인간의 아들 헥토르가 우리들의 모습과 더 가까운 것 같다.
그렇다면 왜 아킬레우스가 이기고 헥토르는 죽었는가?
헥토르야 말로 살아남아 인간들을 다스려야 할 인물이 아니었을까?
3. 인간 그리고 신
일리오스를 도우러 온 원군 중 하나인 리퀴아의 지휘관 사르페돈은 이런 말을 한다
친구여! 만일 우리가 이 싸움을 피함으로써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않을 운명이라면
나 자신도 선두 대열에서 싸우지 않을 것이며,
또 남자의 영광을 높여주는 싸움터로 그대를 등 떠밀지도 않을 것이오
하나 인간으로서는 면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숱한 죽음의 운명이
여전히 우리를 위협하고 있으니 자, 나갑시다! 우리가 적에게
명성을 주든 아니면 적이 우리에게 명성을 주든
(일리아스 12권 322-328행)
실제로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않는 신들은 싸울 이유가 없다.
상대방을 죽이지도 못할 뿐더러 그들 간의 불화를 영원토록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폴론은 포세이돈과의 대결을 헤르메스는 레토와의 대결을 회피한다.
대지를 흔드는 이여! 내가 가련한 인간들 때문에 그대와
싸운다면 그대는 나를 신중하다고 생각지 않을 것이오.
인간들은 마치 나뭇잎과 같아서 때로는
대지의 열매를 먹고 불꽃처럼 타올랐다가
때로는 생명을 잃고 시들어지지요. 그러니 자, 우리는
어서 싸움을 그만두고 저희들끼리 싸우도록 내버려둡시다!
(일리아스 21권 462-467행)
그렇다면 왜 인간들은 남자의 명예를 높여주는 싸움터로 나가야 하는가?
그것은 인간이 필멸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영원 불멸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용기는 의미를 가지고,
목숨을 걸고 쟁취한 명예는 영원토록 다른 이들의 입을 통해 전승된다.
죽을 운명을 타고난 아킬레우스와 헥토르는 전쟁에서 혁혁한 공적을 세워 신과 같은 영원함을 얻게 되었다.
그들은 인간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죽어서 신이 되었다.
일리아스는 왜 아직도 읽히는가?
그것은 필멸의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영원에 대한 갈망을 다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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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서 죽기전에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드네... 그런 명예만이 나의 분신이 아닐까 하고...
트로이 영화도 재밌더라. 뮈르미돈한테 아킬레스가 연설하는 부분이 인상깊었는데... Do you know what's there, waiting beyond those walls? Immortality! Take It! It's Yours
연설하는 부분은 파트로클로스 보내는 장면밖에 못찾겠는데 일단 원작에는 그런 대사가 없었던거 같음...
ㅇㅇ 원작에는 없고 2004년 영화에만 있음
오늘날 법칙이 된 서구의 정신, 그 뿌리가 된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읽지 않을 이유는 없지. 누군가 그 이유를 묻는다면 그 속의 인간이 바로 순수한 인간이기 때문에 라는 말 밖에 못해주겠다
사용하는 표현도 반복적이고 한정적이고, 한 1/5은 누가 누구를 어떻게 죽였다 그런 내용인데 말이지... 아킬레우스의 분노라는 주제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그런 인간 본연의 감정을 건드리는게 아닐까
그 맥을 상통하는 오뒷세이아 감상문도 기대하겠습니다 ㅎㅎ
하와와 노문학으로 단련된 독붕쟝에게 600페이지는 넘모 짧은 거시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