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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10년전) 영화를 강렬하게 봐서 그런지 시작부터 글이 표현하는 이미지가 잘 연상이 되었다.







읽어 갈수록 책은 내가 기억하는 영화보다 더 많은 이미지를 연상시켰고

냄새 천재의 고뇌와 능력을 점진적으로 세밀하게 묘사해서 더욱 재밌었다.

진드기 같은 생존력 또한 흥미진진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생존력은 강하지만 자신의 목숨에 대해 별 관심이 없어보인다는 것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냄새에 관한 모든 것이다.







소설은 보통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를 간접 경험하게 하는데

대게는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더라도 등장인물들의 세계관이 내가 경험한 것과 어느 정도 비슷하거나

비슷하지 않더라도 내가 살면서 봐온 인물들이나 다른 컨텐츠에서 봐온 익숙한 세계관일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르누이의 세계관은 나와 비슷한 구석이 전혀 없을 뿐더러

다른 컨텐츠속 캐릭터나 세상 어떤 인간의 기준으로도 본적이 없었다.



예전에 인터넷을 하다 박쥐가 보는 세상에 관한 글을 봤다.

박쥐는 세상을 초음파로 본다고 한다.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듣고보니 모든 동물은 저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다를 것이다.


그르누이는 후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냄새다.



그의 예민한 코가 냄새를 맡는 것에서 성장해 냄새를 만드는 부분부터는

창의성에 관한 생각을 했다.


그르누이는 온갖 착취를 당하면서도 냄새를 만들고자 한다.

처음에 그르누이는 일반인의 기준에서 좋은 냄새 나쁜 냄새 상관없이

냄새를 만들 수 있다는 것 그 자체에 완전히 매료된다.


냄새의 세계가 전부인 그르누이에게 직접 새로운 냄새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희열이기 때문이다.


그르누이를 제자로 거둔 발디니는 세속적인 명예와 돈을 위해 향수를 만들고자 한다.

그가 히트쳤던 상품은 자신이 만든 것도 아니었다. 발디니는 관심을 끌고 돈을 벌어다줄

향수를 만들기 위해 온갖 재료와 향수를 모으지만 정작 창의성은 발휘되지 않는다.

그의 후각은 자신이 모은 온갖 냄새들로 마비되었으며 냄새를 창조하는 것 자체가 아닌

명예나 돈에 정신이 팔려있기 때문에 창조성이 발휘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저열한 발디니에게서도 후각 천재 그르누이는 향수 제조법을 배운다.

그르누이는 도구를 사용해 냄새를 얻어내는 방법은 모르기 때문에

도구 사용법을 발디니에게서 전수받는다.

그르누이가 자신의 작품들을 편취당하고 노동을 착취당해도 진드기처럼

묵묵히 견딜 수 있는 이유는 냄새를 만들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좋았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앙투안 펠리시에라는 발디니의 라이벌이자 젊은 향수제조인이 간접적으로 나오는데

펠리시에는 출신과 제조법에서 전통성을 따르지 않는 것으로 나온다.


쉽게 나누자면

발디니는 전통적이고 펠리시에는 현대적이다.


그르누이는 전통적이든 현대적이든 어떤 것도 고집하지 않고 모든 것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 냄새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의 관점에서 그르누이는 평생 고된 노동과 혹독한 환경속에서 살아왔지만

그의 내면을 들어다보면 엄청난 창조성과 희열이 있다.


그르누이는 냄새의 기억으로 파리 시내를 그릴 수 있다.

나중에는 온갖 냄새를 기억해

더 크고 아름다운 세상도 내면에서 창조하게 된다.


그는 더 이상 현실이 필요없지만

그가 냄새로 내면 속에서 세상을 창조할 수 있는 이유는

현실에서 냄새를 얻었기 때문이다.


창조는 기존의 것들을 조합해서 만들어진다.

창의성은 작품을 만들려는 그 자체의 희열에서 나온다.


그르누이의 징글징글한 집착과 희열을 보면서

호모루덴스가 생각났다.






그르누이의 고된 노동과 혹독한 환경은 냄새를 탐구하기 위한 수단이자 목적이다.

진드기 같은 생존력 또한 마찬가지다.


현실이 수단이자 목적이 되자 그르누이는 놀이처럼 냄새를 즐겼다.


그는 냄새로 사람의 성격 뿐만 아니라 위치와 심리와 관계까지도 알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작 본인의 몸에는 냄새가 없다는 설정은 그르누이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과

후각이 발달하게 된 그럴듯한 근거가 될 수도 있지지만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르누이가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냄새를 창조하는 욕망이 결국 신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그토록 혐오하던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한다는 자신의 아픈 속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궁극의 향수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향수이다.


하지만 그것은 수면제를 이용해 잠을 잔 것이 진짜 숙면이 아니듯

진짜 사랑이 아니란 것을 깨닫는다.


어떠한 세계를 정복한 신조차도 진짜 사랑은 창조할 수 없다.


이 소설은 냉정하고 기발한 방식으로 사랑의 위엄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