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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아니라 일대기, 전기를 읽는 느낌이 들었음… 분명히 판타지 설화적 요소가 작품의 절반 가까이에 녹아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신화적이고 비현실적인 내용들이 어떤 괴리감도 없이 자연스레 내 인지에 스며들었음. 비현실적인 요소가 강해서 오히려 현실적으로 느껴진걸까? 

작품 초장 부분에 등장한 어린 아이가 성장하며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며 늙어가고 다시 자연의 일부가 되고… 이런 모습을 보며 정말 몰입했고 모든 등장인물들에게 깊은 애정을 지니게 됨. 근데 이 몰입감이 아이에 대한 부모적, 인류적 애정을 근간으로 하는게 아니라 전지적 시점에서 내가 창조한 피조물을 관찰하고 바라보며 피어나는 감정을 기반으로 하는 그런 몰입감이었음. 또 작중 모든 인물들이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는데 따라서 서로 가족관계가 되고 이들이 대를 이으며 형성되는 자연스러운 연결고리가 이 작품의 몰입감을 높이는 데에 큰 공헌을 한 것 같음. 정말 한 가족의 역사를 볼 수 없는 무형의 존재가 되어 그들 주변에서 관찰하는 느낌이었음. 어린 미시아가 그라인더를 보면서 세상과 무생물의 관념을 탐구하고 이 그라인더는 미시아를 이루는 소중한 것들의 일부가 되고, 미시아가 늙고 세상을 떠난 후 미시아의 보물이었던 이 그라인더를 딸이 자의지로 계승해 받는 이런 인간들간의 자연스러운 연결고리가 뭔가 고양감을 줬음… 

작품을 관철하는 주제가 인간 그 자체이기 때문에 사회를 이루고 전쟁을 일으키고 서로를 죽이고 서로를 사랑하는 인간의 모든 일면을 전부 다뤘음. 양각과 음각을 모두 표현한 입체적인 묘사를 통해 인류애를 유도하려고 한 느낌? 근데 진짜 완독하고 인간 찬가하게 됨… 그냥 인간들이 모여 살고 상호작용하고 아이를 낳아 대를 이어 무언가를 전승하는 것도 전부 아름답고 신비스러워 보임… 그리고 추상적이거나 무형, 무생물, 관념적 존재에 대한 작가의 깊은 사유가 곳곳이 엿보여서 인상 깊었다.
태고는 분명 허구의 장소이지만 폴란드를 방문해보면 배경이 된 비슷한 장소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꼭 방문해보고싶다. 지금은 내 머리 속에서 태고의 들판을 상상만 할 뿐…

아무튼 이거 읽고 인간이 좋아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