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이유 알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비가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좋아한 이유.
생각해보면 나보코프는 삶과 동떨어진 관념 그자체에 대한 관념을 싫어하고 삶과 거기서 나오는 경험을 찬양함.
롤리타에서 나온 경험이 없는 글은 의미가 없다(Words without experience are meaningless)라는 말은 그의 글의 모토를 알려줌.
조이스 역시 그의 작품 율리시스에서 일상과 삶 속 경험들을 최대한 아름답게 묘사함. 율리시스가 읽기에 적절하지 않다면, 인생은 살기에 적절하지 않은 겁니다(If Ulysses is not fit to read, life isn't fit to live).
그들이 다루는 서사의 주제는 삶 속에서의 예술(조이스는 율리시스, 젊예초 한정, 아무래도 나비가 피네간을 깐 이유가 너무 알레고리, 상징에만 집중해서 그런 듯).
또한 이 둘의 다른 공통점이 존재하는데 여기가 중요함. 그들은 앞서 말한 삶과 경험뿐만이 아닌 언어 그 자체에 미친 집착을 보였다는 것.
알다시피 나보코프는 '당신 안의 모든 것이 젊어서, 당신은 내가 당신을 위해 지은 오래된 시를 인용해 새롭게 만든다.'라는 글로 언어의 다양성을 창불에서 표현한 바있음.
조이스는 율리시스에서 '이 무거운 모래는 언어의 조수이고 바람은 여기서 잠잠해졌다.'라고 표현한 바있는데 이는 자신이 알맞게 디자인하며 조율한 글 그 속에 숨겨진 완전히 새롭고 다면체적인 아름다움을 독자가 발견하길 원하는 뜻.
즉 간단히 말하자면 그들에게는 서사에 앞서 언어와 어휘를 배우는 것, 글을 다듬는 행위 그 자체가 멜로디가 너무나 아름다운 연주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악기를 튜닝 해야한다는 개념과 닮아있다는 것. 고착화된 단어와 언어는 아무 소리가 안나거나 끔찍한 소리가 나기에 각종 변주와 변형, 변신을 시키며 독자들에게 다채로운 언어적 경험을 시켜주는 것.
삶 속 감각과 감수성의 새롭고 다양한 의미를 파생시키는 것에 있어서 언어의 질감과 문장의 중요성은 그야말로 막대하며 지대하다.
그래서 나비가 서사보다는 문장을 중요시 여긴 것 같음.
그래서 조이스의 율리시스가 문학 사상 가장 어려운 책이라고 평가받는 것 같음.
......
아님 말고.
+나비가 단순한 유미주의와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 드는 것은 우리 삶의 기억, 감각 그리고 경험 속에 내제되어 있는 구체화된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함. 지극히 허구적이면서 현실적인 나비 작품의 특징이 여기서 나오는 것 같음. 롤리타 속 미국은 미국이란 이름을 가진 환상의 나라이고, 율리시스의 더블린은 지구의 더블린과 하등 상관이 없다.
나보코프는 율리시스 뺀 나머지 조이스 작품 싫어한다고 들었는데 그럼 젊예초도 안 좋아했으려나
젊예초도 싫어했음
평가도 있던데 젊예초
개추
그렇다면 번역된 문학을 보는건 이미 튜닝에서 부터 잘못된 음악을 듣는거나 다름 없네 아무리 번역을 잘해도 작가가 고심한 단어를 고착화된 단어로 대체 하는거니까 시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