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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소설가적으로 완성된 작가는 아님. 프로파간다에 가까운 초기작들을 내버려둔다 쳐도 그 이후도 마찬가지.

무엇이 소설적으로 완성도가 높냐고 묻는다면 난 하나의 이야기와 가상의 인물들을 통해 삶의 장면들을 탐구해나가는 걸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효석은 그런 탐구가 부족함. 단순히 관념적으로 빈약하다, 난해한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런게 아니라 소설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서사나 인물이 피상적임

메밀꽃 필 무렵 생각해보면 대부분 소설들이 그거보다 못하다고 보면 된다 서사적인 측면에서. 기승까지 써놓고 끝나는 소설들도 많고

대화문이나 발화문들도 생기없는 설명문에 가깝고 하여튼 소설보단 그냥 글을 쓰는 느낌이 강함

초기작의 프로파간다성에서만 벗어났지 결국 사회주의에서 서정성으로 대상이 옮겨갔을 뿐 고뇌없는 동경이라는 재미없는 글을 쓰는 것도 여전함



다만 이런 치명적인 단점을 생각하더라도 이효석을 읽게 만드는 강점이 세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동시대 최고라고도 볼 수 있는 문장력, 다른 하나는 작품을 넘어가며 보이는 작가의 의식 변화,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기에 언급한 단점을 다른 시각으로 봤을 때 드러나는 장점임



문장으로 따진다면, 이 시기를 수식하는 시는 지용, 소설은 태준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이효석은 잘쓴다. 요즘 겉절이 작가들은 물론이고 감수성의 혁명이라 일컷는 김승옥까지도 비벼볼 만하다고 생각함. 문장으로 어떤 소설에 감탄하게 된 건 이효석이 첨인 듯.

메밀꽃 같은 시골 자연 정경의 아름다운 묘사, 어떤 대상의 상실감을 느끼는 허무적인 감정, 20세기 초의 각종 시대적 풍경들 등 이런 감성에 관심있다면 굳이 이효석을 냅두고 다른 작가를 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함. 문장 하나로 모든 걸 잡아낸다.



다음으로, 이효석의 소설에서 보이는 약점은 앞서 언급했듯이 대상에 대한 의심없는 동경임. 무엇이 좋다 생각하면 그저 좋다만 연발하고 무엇이 아름답다 생각하면 아름답다만 연발하고. 난 이런 건 항상 질문을 던져야 할 소설가의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효석의 작품들을 그 안에서 보지말고 여러 작품들을 묶어 바라보게 되면 대상에 대한 작가의 관념이 지속적으로 변함을 알 수 있음.

특정 사상에의 맹목적인 찬양을 하다 허무감을 느끼고 서정적인 자연으로의 귀의, 여기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자연과 현실의 화해를 이루려고 노력해보는 모습, 자연에서 벗어나 서구 문물과 사상에 대한 동경으로 나아가다 다시 허무감을 느끼고 이번에는 인간의 감정에 매달려보기도 하는 등 소설을 연달아 읽을 때 느껴지는 재미가 상당함.

작품을 읽을 땐 몰라도 작품집을 읽을 땐 확실하게 강점으로 느껴지더라. 어쩌면 소설가가 아닌 그 시대를 살아간 지식인의 내면을 엿본다는 생각으로 읽는다면 더 재밌게 읽을지도 모름.



마지막으로 앞서 언급한 작품들의 본질적인 단점, 그 단점이 장점으로도 바뀔 수 있다는 점임. 여기서 단점이라하면 기승까지만 있는 서사의 애매모호함을 얘기함.

사실 이런 이유 때문에 대다수 작품들이 중간에 끊긴 느낌이 강하게 듦. 예를 들어 "친구가 금광을 찾을 --> 잘됐으면 하고 바래다줌 --> 끝" 이 꼬라지를 보인다거나 "과거가 좀 지저분한 여자와 결혼까지 감 ---> 주변에선 거세게 반대 ---> 그래도 마음을 굳히고 결혼을 결심 ---> 여자는 짐 챙기러 동경으로 감 ---> 끝" 이 꼬라지라던가. 아니 씨발 그 뒤는 어쩌라고!

하지만 오히려 이런 잘라먹은 듯한 결말 탓에 그 허무함과 무상함이 배가되는 작품들도 충분히 있는게 사실임. 오히려 단편이 많은 서사를 집어넣기 힘들다는 점 탓에 이렇게 한 단면을 거칠게 잡아떼어 보여주는 모습이 매력적이기도 함.

중간중간 서사가 뒤로 밀리는 모습과 많은 묘사에서 플로베르가 연상되기도 했는데, 단-장편의 비교에 이효석이 플로베르 정도로 소설을 잘 쓰는 건 아니라 일대일 비교는 불가하지만, 어떤 사건적인게 아닌 사변적인 일상과 정경의 자취를 소설에 담아내려는 모습에서 둘의 유사상이 느껴졌음. 물론 플로베르는 서사도 균형있게 움직이고 이효석은 약한 서사를 묘사로 덮으려는 모양새가 있지만...



암튼 여기까지 얘기했으니 추천작 몇 가지 골라보자면(메밀꽃은 모르면 간첩이니 제외)

석류: 과거를 그리워하는 애상감과 이를 미화했다 깨어지며 실망하는 심리적 양상을 탁월한 묘사로 그려냈다. 양도 짧으니 읽어보셈

개살구: 내용은 별 거 없지만 결말을 내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시끌벅적한 사건들과 날뛰는 감정들이 일상에 녹아들어가는 플로베르적 정취가 묻어나는 소설.

장미 병들다: 이효석의 몇 안 되는 서사가 갖춰진 소설. 이상에 대한 동경이 깨어지고 심적으로 추수르는 과정에서 다시한번 이상의 허무함이 강타하는 소설. 후일담 문학이면서 넋두리로 끝나지 않고 그 속의 삶을 잘 표현했다는 점에서 수작이라 생각함.

여수, 하얼빈: 뭐 그렇게 엄청 좋다고는 못하겠는데 시대상과 맞물린 만주 지역의 정취와 이국적인 색채, 유럽에 대한 동경에서 오는 공감 등등이 좋았어서 추천함.

산협: 쉽게 말해 플로베르 느낌이 나는 조선판 백년의 고독. 차이점이라면 백년의 고독이 풀 수 없는 가족의 굴레를 그려냈다면 이 소설은 방향성이 완전히 반대라는 점. 억지로 붙들려해도 피할 수 없는 가족 파괴의 시대상? 후반부에 은유로 남겼으면 더 좋았을텐데 너무 직설적으로 뱉은게 아쉬운 것도 있지만(여기도 묘하게 백년고독 느낌임) 하여튼 장미 병들다와 더불어 제일 만족한 소설.




그래 뭐 이효석이 여러모로 부족한 소설가이긴 함. 읽다가 욕 나올 때도 여러번이고 그러면서 책은 또 문지 시리즈 중에 두꺼워서 짜증나고. 하지만 읽고나서 나름 애정이 생긴 작가 중 하나라는 점은 또 묘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효석은 소설보단 작가가 더 애정이 가는 특이한 케이스라는 생각도 듦. 소설가가 소설보다 앞에 나와있다니, 작품으로 말하라는 정언에는 어긋나는 거지만 그만큼 또 관심이 생기는지라... 마치 자신의 비대한 자아상을 자랑하던 돌아간 이상의 서정적 모습과도 같달까. 전집 지를까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