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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르치스, 자네는 도대체 어떻게 죽을 텐가? 자넨 어머니도 없잖아? 어머니 없이는 사랑도 할 수 없어. 어머니 없이는 죽을 수도 없다고.”

   


생물학적인 어머니가 없이는 탄생할 수 없고, 탄생이 없다면, 탄생으로부터 성장해가며 그 존재가 스러질 때까지 맛보는 모든 기쁨과 슬픔, 희망과 쾌락, 분노와 절망을 느낄 수 없다. 과연 생물학적 어머니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이것은 명백히 불가능한 사실이며, 그렇다면 이 대사의 어머니라는 것은 분명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어머니는 도대체 무엇인가?

 

 




어머니를 찾아서


 

1 자유와 해방

 


인간은 무엇이 되어야만 하는가? 무엇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무엇은 나에게 있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 그것이 되기로, 그리고 그것을 하기로 스스로 선택한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 믿었지만 사실은 강요당한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그것은 불완전한 선택이 아닌가? 어떤 길로 가야만 하는지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닌 이상 도저히 알 수 없다. 다만, 당위의 문제로 올바른 선택을 위해 전제되는 단 한 가지 사실은 자명하다. 그것은 자유로운 상태에서 스스로 선택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에는 두 가지의 서로 다른 길을 가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있다. 아버지의 억압된 교육 밑에서 어머니의 존재를 숨기고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골드문트에게 나르치스는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던 어머니의 존재를 부상시키고 억압되어 있던 골드문트의 모든 것을 해방시킨다. 골드문트의 아버지는 억압자인 반면, 어머니는 자연스런 욕망들을 분출하는 자유인이였다. 골드문트는 억압하는 아버지로부터, 억압된 수도원으로부터 자유를 찾아, 어머니를 찾아 여정을 떠난다. 이 시기의 나르치스는 골드문트의 지도자였다.

 


 

2 세계의 특성

 


누구든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살 바에는 계속 살기보다는 차라리 죽었으면 싶다가도 또 어떤 죽음의 공포가 스멀스멀 다가오는 것을, 또는 일순간에 죽음이 번뜩이는 것을 느끼고는 죽지 않았으면, 또는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누리면서 나는 죽음이라는 것과 전혀 관계가 없는 영원한 존재였으면 생각하는 순간도 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의 변화를 일례로 들었지만 이렇듯 인간의 생각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이 변화는 분명 자연스러운 것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그리고 내일의 나가 가지고 있는 생각은 분명 다르며, 그 생각들로 구성되는 나라는 존재 역시 달라진다. 누군가가 나를 인식한다고 했을 때 어느 시기에 나를 보느냐에 따라 분명 나라는 사람의 존재에 명백한 차이가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나를 어떤 사람으로 인식했느냐와 상관없이 그 모든게 나인 것이며 이 모든 것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죽음 때문에 겪는 인생의 무상함에도 불구하고, 그 자연스러운 생성과 변화, 소멸의 흐름으로 인해 개개인의 인생은 더욱 풍요롭고 다채로우며 생생하게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고, 이런 자연스러운 변화를 무시하고 하나의 것, 고정된 것, 나는 어떤 것이야만 하며, 죽음에 무관한 영원한 존재여야만 한다라는 고정된 사고를 가지는 것은 결국 자연스러운 인간 내면에 반하며 객관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사실인 죽음에 대해서도 반하는 것이여서 고통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의 감정 상태 역시 끊임없이 변화함은 물론 동시에 모순된 모든 것이 동시에 존재한다. 두려움과 황홀함이 혼재되어 있는 상태, 사랑과 분노가 동시에 존재하는 그 순간의 상태, 그리고 쾌락으로 인한 절정의 순간과 극심한 고통의 순간은 비슷하다는 점에서 다시금 인간의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은 자연스러운 본성과 이런 모순과 대립이 혼재한 세계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받아들인 순간, 예술은 언어를 통해 사고하고 인식의 길에 이르는 것과 달리 언어와는 무관하게 상상하고 형상화하는 것을 통해 자신이 꿈꾸던 아름다움을 그린다는 점에서 차이가 존재하지만, 세계를 인식할 수단을 찾았다는 점에서 골드문트는 나르치스와 서로 다른 길을 걷는 동등한 친구가 되었다.

 

 

 


어머니를 찾았어요

 


결국 어머니란 세계에 존재하는 탄생과 사망, 기쁨과 슬픔, 절망과 희망 등과 같은 모든 모순과 대립들이 공존하는 상태를, 그리고 끊임없이 생성, 변화, 소멸하는 세계를 의심하지 않으며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자비롭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품어주는, 그리고 방긋 웃어주는 그런 말로는 표현이 어렵지만 상상할 수는 있는 어떤 가상의 존재이다. 이런 점은 세계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포용하고자 했던 노자의 도와도 닮아 있다.

 

하지만 나르치스, 자네는 도대체 어떻게 죽을 텐가? 자넨 어머니도 없잖아? 어머니 없이는 사랑도 할 수 없어. 어머니 없이는 죽을 수도 없다고.”

 

골드문트의 마지막 말은 나르치스의 가슴속에서 불꽃처럼 타올랐다.

 

나르치스의 마음 속에서는 분명 불이 일었을 수 밖에 없다. 그것도 자그마한 불꽃이 아니라 장작을 들이부어 활활 타는 형상이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순간 나르치스는 분명히 그 명석한 인식능력을 통해 분명 깨달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식하는 수단인 언어와 사고 이에 관한 능력은 골드문트에 우위일지 모르나, 그런 능력 따위들은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의 자연스러움을 직접 느끼는 방식과는 전혀 무관한 것들이며, 수도사의 길을 걸으며 세계의 자연스러운 욕망과 같은 일부 요소들은 자신의 의지로 거부되었으며 억눌려있었다.

 

반면, 골드문트는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자연스러운 것들을 몸소 느꼈다. 자연스럽게 불쑥 튀어나오는 인간의 욕망을 느꼈고 그로 인한 쾌락을 맛보았으며, 그 반동으로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인간의 유한함과 좌절 그리고 절망, 그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하기 위한 영원성의 추구와 그 영원을 빚기 위한 수단인 자유로운 예술혼의 발산, 그리고 또 다시 솟아오르는 더 큰 욕망과 좌절. 이러한 변화의 반복으로 세계의 모든 것들을 거부하지 않고, 아낌없이 사랑했을때 그는 어떠한 후회도 없었을 것이며 죽음의 심연까지도 모두 포용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잃어버렸던 내면의 어머니를 되찾은 것이 아닐까?

 

반면, 자신은 세계의 모든 것을 거부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느끼고 살아간 골드문트를, 그리고 골드문트를 억압에서 해방시켰지만 도리어 세계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억압하고 있는 자신의 아이러니한 모습을, 그리고 일부가 거세된 자신의 부자연스러움을, 자신의 결핍된 지점에서 도리어 그 충만함을 누렸던 골드문트에 대한 신성함을 느꼈음에 틀림없다.

 

무한한 세계 속에 직접 뛰어 들어 어린아이처럼 순진무구하게 유희를 즐기며 그 아름다움을 맛보는 자와 멀리 떨어져 꿰뚫어 보기만 하는 자의 차이를, 그런 인식에 이른 순간 나르치스는 골드문트가 보다 높은 존재였음을 확신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