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굳이 점수를 매긴다면 후한 점수를 주기가 어렵다. 이야기의 큰 맥락은 하루에 아르바이트를 7개 해서 3억 5천만원의 빚을 갚았다는 것인데, 같은 이야기를 재탕 삼탕한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몇 번 듣다보면 질리기 마련인데, 이 책은 너무 많이 반복한다. 자기계발서처럼 책의 분량 채우기에 급급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저자가 빚을 갚으면서 얻은 교훈인 ‘빚은 무조건 빨리 갚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기도 하나, 금융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맞는 이야기는 아니다. 정신 못차리는 자신에게 극약처방을 내린다며 송곳니를 뽑는 이야기는 얼마나 절실했으면 저럴까? 하기 보다는 굳이 저렇게 자기를 혹사시킬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더 들고 약간 거부감마저 들 정도다. 책 한 파트가 끝날 때 저자가 독자에게 하는 조언은 약간 고리타분하기 까지 하다. <3억 5천만원의 전쟁>은 빈틈이 많은 책이다.
단점이 많은 책이지만, 묘한 매력 하나가 이 책을 다 읽게 만든다. 그건 하루 24시간중 2시간 밖에 안자고 일했다는 초인적인 이야기도 아니요, 3억 5천만원의 빚을 10년 만에 다 갚는 기염을 토해낸 한 인간의 지속성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그런건 대부분 사람들이 따라 할수도 없는 것이고, 영화나 소설에나 나옴직한 이야기일 뿐이다.
저자 이종룡씨가 시계 도매상 사장님에서 3억 5천만원의 빚을 진 뒤에 시작한 일은 목욕탕 청소였다. 저자는 이런 일 저런 일을 했었고, 그래서 목욕탕 청소일이야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도무지 청소일이 끝나지 않는 것이었다. 집에서 목욕탕 청소를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사람이 40평이 넘는 대중목욕탕을 빠르고 깨끗하게 할수 있겠는가. 하는 수 없이 집의 목욕탕을 연습삼아 해보려 청소를 시작했을 때 와이프가 한소리 한다.
“그렇게 막 하면 돼? 순서를 정해야지!”
마침내 그는 목욕탕을 청소하는 방법을 터특했다. 그리곤 목욕탕을 효율적으로 청소하는 법을 세세히 서술한다. 목욕탕 청소가 뭐가 대수냐 라는 생각이 들지 모르겠지만, 저자의 목욕탕 청소요령은 묘한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이는 <노인과 바다> 산티아고가 매일 하는 낚시질의 굴레에서, 청새치와 힘싸움을 벌일 때 새로운 요령을 터득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그는 뱃전에 몸을 기대어 이물 쪽으로 젖혀서 그냥 줄을 잡고 앉아 있는 것 보다는 배가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도록, 즉 고기가 글기 힘들도록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렇게 해서 또 새로운 방법을 하나 배우는구나. 어떻게든지 상황에 따라 써먹을 수 있는 방도가 생기게 마련이지(p.83)
또한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에서 주인공 슈호프가 수용소의 104반 동료들과 함께 모르타르가 금새 얼어버리는 혹한 속에서 목숨을 건 것처럼 벽돌을 쌓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목욕탕 청소의 요령을 읽고 있을 때, 청소하는 이종룡씨, 낚시하는 어부 산티아고, 벽돌을 쌓는 슈호프가 머릿 속에 떠올랐다, 그들은 분명히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매우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고, 몸에서는 묘한 빛이 감돌았다. 청소, 낚시, 벽돌쌓기가 경건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이종룡 씨는 2014년 대장암으로 사망했다. 55세. 요즘말로 한창일 때. 사인은 대장암이었다. 사람들은 하루에 2시간~3시간만 자고 생활한 결과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가 죽었다는 얘기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글을 보고 알았다. ‘헬조센’ 풍의 자조적인 글이었다. 노오오오력을 했더니 대장암에 걸려 결국 죽었다는. ‘돌아가실 때 후회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안이 썼다.
그리고 어제 이 책을 읽었다. ‘후회했겠다’는 짐작은 틀렸다. 내가 매번하는 실수가 다른사람의 심정이나 상황을 판단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또 실수 했다. 이종룡씨는 후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란걸 알고 있었다. 3억 5천만원의 빚과, 술과 노름, 절망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목욕탕 청소, 떡 배달, 학원차 운전, 신문에 광고지 집어넣기, 신문배달, 폐지줍기로 스스로를 구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