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모국어가 아니면 의미가 거의 없다는 생각
박상륭이 한자로 갖다가 말장난 잘치는데 그런거 좀 멋있음
근데 말이 그렇지 모국어라고 뭐 가슴이 막 뜨거워지고 그런 것도 아니지 않나?
그게 아니라 번역되면서 원문과 아예 다른 작품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지. 번역되면서 뉘앙스가 변하고 운율이 변하고 호흡이 변하기 때문에 사실상 번역시는 번역자의 2차창작물을 읽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거지
한시는 한시대로 내비둬도 나 읽을 수 있음. 전공이 한자투성이라
소설은 서사가 중요하고 스토리라인이 중요하기 때문에 문장의 작은 변화는 크게 와닿지가 않지. 근데 시는 온점 하나, 쉼표 하나만 빼도 다른 시라고 말하는게 현대시야.
원문과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된다고ㅋㅋㅋ 번역가가 글자만 바꾸는 직업인줄 아나 님 논리면 고전 서사시는 고대어들이 사어가 되는 순간 생명을 다했어야 했음
아까 소설이라 적은 댓글은 내가 작품을 소설이라고 잘못 써서 일부러 지움 그건 미안ㅇ
고전 서사시는 내가 말하는 시의 의미와 결을 많이 달리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서사시는 지금은 이미 거의 사라진 형식이야. 서사시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것도 문장의 미학적 성취가 아니고.
운율과 사용해야하는 단어들의 규칙은 고전 서사시가 지금보다 더 엄격함 문장의 미학을 더 중요하게 다룬거지
아니 애들아 나는 한시가 읽고 싶은거라니까 나 한자 육년동안 조지게 읽고 지내서 한자 괜찮다니까?
왜 니네 둘이 싸워 씹련들아 나랑도 얘기좀 해줘
ㄴ응 싸우는게 아니야~ 토론이니까 팝콘이나 뜯어~
너는 그럼 그 엄격하게 배열된 단어의 규칙이 번역 과정에서 사라지거나 변화하지 않는다는 얘기야? 나는 루이스 글릭, 폴 멀둔, 찰스 씨믹, 로버트 해스 등 번역시를 수도 없이 읽었어 그리고 그들의 시는 번역자마다 다르게 해석해서 다른 문장으로 번역했어
하나의 시가 3가지 모습으로 번역되고 나는 그 세 시에서 각자 다른 정서적 느낌을 받았어 나는 그게 원문과 같다고 생각할 수가 없어. 만약 시인이 다의어를 다의적으로 사용했다면? 그걸 완벽하게 번역하는게 가능할까?
예를 들어 이현호 시인은 <말들의 해변> 이라는 시를 썼어. 여기서 말들은 우리가 내뱉는 단어들일 수도 있고 정말 달리는 말일 수도 있어 시에서는 그 의미가 중첩되어서 나와. 너는 그걸 다른 언어로 어떻게 해석할 수 있어?
애들아 찾아봤는데 현대 한시 학회라는데가 있대 작품도 찾아보려고
일단 시의 해석은 같은 문화권의 학자들도 다르게 해석하는 일이 잦음 예시로 시경의 해석은 어떤 시대에는 정치에 대한 은유로, 어떤 시대에는 남녀간의 사랑으로 해석했음
시의 특성상 다른 해석이 나오는건 필연적임ㅇㅇ 그리고 그런 생각은 번역을 완전히 망치지 않는 한, 번역본에서도 얼마든지 나온다 봄
해석의 다양성은 번역 얘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번역되지 않은 시에서도 해석의 다양성은 있기 마련이니까. 내가 말하는건 시는 번역되는 순간 다른 시로 변화한다는 거야
나는 '눈'이라는 시를 썼어. 너는 그걸 영어로 번역하려해. 너는 그걸 Snow 라고 할 거야 아니면 Eye 라고 번역할 거야? 그게 하나의 해석이 되는 거야. 그 하나의 해석이 번역과정에서 개입되는 순간 다른 의미는 어디로가고? 해석의 다양성은 어디로 가지?
그니까 문자가 바뀌더라도 작가가 말하려 하는 시의 메세지는 읽을 수 있으니 시의 감성을 느낄 수 있다는게 내 생각임
문자 자체가 메시지고 문자 자체가 시야. 틀이 바뀌면 모든게 바뀌는 거야. 뉘앙스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인 경우가 있고 어조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인 경우도 있어. 그런데 뉘앙스가 사라지고 어조가 사라지면 메시지도 사라지는 거야.
이제니의 시집은 시집 전체가 다 그런 시들이야. 나는 이게 번역되는 걸 상상할 수 없어. 그리고 만약 번역된다 하더라도 나는 그걸 절대로 같은 시라고 말 못하겠어. 여기까지만 할게.
그건 번역가의 기량에 따라 갈리지 근데 언어의 차이로 인해 좋은 번역가도 그걸 못살리고 각주로 달아놓을 때도 많지? 그 부분에선 니 말이 맞다
근데 모국어가 아니면 의미없다는건 인정 못한다ㅇㅇ
千山鳥飛絶 萬徑人蹤滅 孤舟蓑笠翁 獨釣寒江雪
겨울에 잘 어울리는 좋은 시구나... 한시가 멋지긴 하다
만요수는 한시임
시는 모국어가 아니면 의미가 거의 없다는 생각
박상륭이 한자로 갖다가 말장난 잘치는데 그런거 좀 멋있음
근데 말이 그렇지 모국어라고 뭐 가슴이 막 뜨거워지고 그런 것도 아니지 않나?
그게 아니라 번역되면서 원문과 아예 다른 작품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지. 번역되면서 뉘앙스가 변하고 운율이 변하고 호흡이 변하기 때문에 사실상 번역시는 번역자의 2차창작물을 읽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거지
한시는 한시대로 내비둬도 나 읽을 수 있음. 전공이 한자투성이라
소설은 서사가 중요하고 스토리라인이 중요하기 때문에 문장의 작은 변화는 크게 와닿지가 않지. 근데 시는 온점 하나, 쉼표 하나만 빼도 다른 시라고 말하는게 현대시야.
원문과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된다고ㅋㅋㅋ 번역가가 글자만 바꾸는 직업인줄 아나 님 논리면 고전 서사시는 고대어들이 사어가 되는 순간 생명을 다했어야 했음
아까 소설이라 적은 댓글은 내가 작품을 소설이라고 잘못 써서 일부러 지움 그건 미안ㅇ
고전 서사시는 내가 말하는 시의 의미와 결을 많이 달리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서사시는 지금은 이미 거의 사라진 형식이야. 서사시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것도 문장의 미학적 성취가 아니고.
운율과 사용해야하는 단어들의 규칙은 고전 서사시가 지금보다 더 엄격함 문장의 미학을 더 중요하게 다룬거지
아니 애들아 나는 한시가 읽고 싶은거라니까 나 한자 육년동안 조지게 읽고 지내서 한자 괜찮다니까?
왜 니네 둘이 싸워 씹련들아 나랑도 얘기좀 해줘
ㄴ응 싸우는게 아니야~ 토론이니까 팝콘이나 뜯어~
너는 그럼 그 엄격하게 배열된 단어의 규칙이 번역 과정에서 사라지거나 변화하지 않는다는 얘기야? 나는 루이스 글릭, 폴 멀둔, 찰스 씨믹, 로버트 해스 등 번역시를 수도 없이 읽었어 그리고 그들의 시는 번역자마다 다르게 해석해서 다른 문장으로 번역했어
하나의 시가 3가지 모습으로 번역되고 나는 그 세 시에서 각자 다른 정서적 느낌을 받았어 나는 그게 원문과 같다고 생각할 수가 없어. 만약 시인이 다의어를 다의적으로 사용했다면? 그걸 완벽하게 번역하는게 가능할까?
예를 들어 이현호 시인은 <말들의 해변> 이라는 시를 썼어. 여기서 말들은 우리가 내뱉는 단어들일 수도 있고 정말 달리는 말일 수도 있어 시에서는 그 의미가 중첩되어서 나와. 너는 그걸 다른 언어로 어떻게 해석할 수 있어?
애들아 찾아봤는데 현대 한시 학회라는데가 있대 작품도 찾아보려고
일단 시의 해석은 같은 문화권의 학자들도 다르게 해석하는 일이 잦음 예시로 시경의 해석은 어떤 시대에는 정치에 대한 은유로, 어떤 시대에는 남녀간의 사랑으로 해석했음
시의 특성상 다른 해석이 나오는건 필연적임ㅇㅇ 그리고 그런 생각은 번역을 완전히 망치지 않는 한, 번역본에서도 얼마든지 나온다 봄
해석의 다양성은 번역 얘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번역되지 않은 시에서도 해석의 다양성은 있기 마련이니까. 내가 말하는건 시는 번역되는 순간 다른 시로 변화한다는 거야
나는 '눈'이라는 시를 썼어. 너는 그걸 영어로 번역하려해. 너는 그걸 Snow 라고 할 거야 아니면 Eye 라고 번역할 거야? 그게 하나의 해석이 되는 거야. 그 하나의 해석이 번역과정에서 개입되는 순간 다른 의미는 어디로가고? 해석의 다양성은 어디로 가지?
그니까 문자가 바뀌더라도 작가가 말하려 하는 시의 메세지는 읽을 수 있으니 시의 감성을 느낄 수 있다는게 내 생각임
문자 자체가 메시지고 문자 자체가 시야. 틀이 바뀌면 모든게 바뀌는 거야. 뉘앙스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인 경우가 있고 어조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인 경우도 있어. 그런데 뉘앙스가 사라지고 어조가 사라지면 메시지도 사라지는 거야.
이제니의 시집은 시집 전체가 다 그런 시들이야. 나는 이게 번역되는 걸 상상할 수 없어. 그리고 만약 번역된다 하더라도 나는 그걸 절대로 같은 시라고 말 못하겠어. 여기까지만 할게.
그건 번역가의 기량에 따라 갈리지 근데 언어의 차이로 인해 좋은 번역가도 그걸 못살리고 각주로 달아놓을 때도 많지? 그 부분에선 니 말이 맞다
근데 모국어가 아니면 의미없다는건 인정 못한다ㅇㅇ
千山鳥飛絶 萬徑人蹤滅 孤舟蓑笠翁 獨釣寒江雪
겨울에 잘 어울리는 좋은 시구나... 한시가 멋지긴 하다
만요수는 한시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