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읽고 싸우면 안 되나?
번역 읽고 "음 개쩐다는데 그닥이잖아? 번역 탓인가? 외국어 배우러 간다 ㅂㅂ" 이러는 거면 몰라
읽지도 않아놓고 "아 외국시는 번역으로 읽으면 모르는데~ 원문으로만 읽는게 답인데~" 고나리질 두고 있으면 뭐 어쩌란 거임?
아니 그리고 그럼 평생 안 읽을 거야? 외국어 배우는 중이면 모르는데 외국어 배우지도 않아, 번역도 안 봐, 그럼 평생 안 읽겠다는 건데 그럼 뭐 어쩌겠다는 건데?
그리고 무슨 번역으로 읽으면 가짜고 원문으로 읽어야 진짜라는 개잡소리도 많은데
번역이고 원문이고 느그 선이해 위에 선 감상은 이미 오염된 상태다 이 말이야~
순수한 텍스트 따질 시간에 "개인적인" 감상문 하나 더 올릴 노력이나 하라고!
읽고 그런건데요 시방새야
그 시가 쓰레기 같던가요
ㄹㅇ 원문도 결국 읽을 때 한국말로 해석해가면서 읽을텐데
시 번역이 좋은 게 많이 없긴 함. 그런데 원문 아니면 의미 없다는 사람은.....김우창의 키츠 선집 정도는 읽어보고 말했으면 함. "멀리 멀리 날아가라"의 원문이 "away! away!"인 걸 확인할 때의 충격을 경험해야지 원문 아니면 의미 없다는 말을 안 하게 될 듯.
번역시 매일 읽으며 실시간으로 감동하는 입장에선 그럼 이 감동도 무의미야? 라고 묻고 싶을 지경
내가 영국인이었어도 "away! away!"보다는 "멀리 멀리 날으라"가 좋을 거 같은데... 그리고 "Thou wast not born for death, immortal Bird!"보다 "너는 죽음을 위하여 태어나지 않았다, 불사의 새여"가 더 나을 거 같은데. 한국어가 상당히 표현력이 뛰어난 언어임. 고유어와 한자어가 조합 가능해서.
"임모탈 버드"...., 느낌 있나? "불사의 새"가 훨씬 나음. 아름다운 러시아어 단어 셀쿤칙щелкунчик을 "호두까기 인형"이라고 한 건 멋진 번역이지만 "더 넛크래커the nutcracker"라고 하면...... 느낌 있나?
"Heard melodies are sweet, but those unheard Are sweeter; therefore, ye soft pipes, play on;" 를 "듣는 가락은 달다. 허나 들리지 않는 가락은 더욱 달다. 하여 고요의 피리를 마냥 불어라"라고 김우창이 옮길 때의 충격을 경험해봐야 원문 아니면 의미 없다는 말을 안 할 듯.....
김우창의 키즈 선집은 못구하는건가요? 네이버에 검색했더니 절판이라서...
중고로 구해야 할 것 같네요.....
그건 그냥 님이 한국인이라 그런거 같은데요...
임모탈 버드와 불사의 새에서 받는 느낌의 차이를 니가 영국인이었어도 똑같이 아니 비슷하게라도 느꼈겠냐?
내가 "한국어를 아는" 영국인이었다고 해도 임모탈 버드보다는 불사의 새가 더 나았을 듯. 반대의 경우에, 랭보의 시 "레쩨르니쩨"의 짱짱함을 한국어 번역어인 "영원"이 전혀 담아 내지 못하지. 모국어 외국어를 떠나서 단어 자체의 어감이라는 게 있는 거다.
이런걸 뭐라더라? 사적언어라고 하던가?
보르헤스였던가? 유럽의 각국어들의 "달"을 뜻하는 단어들을 비교하며 어떤 단어가 달을 가장 잘 지칭하는가를 고찰한 에세이가 있음. 미르스끼도 서유럽어와 러시아어의 "고대적 울림"의 차이를 비교함. 기호와 대상 사이의 균열의 감각은 모더니즘의 본질 중 하나고, 무식해서 용감한 애들은 빈정거리기 전에 공부부터 했으면......
"Away! Away!"를 "멀리! 멀리!"라고 번역하지 않고 "멀리 멀리 날으라" 라고 번역했기에 탁월한 것임.
독자, 작가나 번역가들이 그토록 원문에 집착하는 이유는 다른 것 때문이 아니라 원작가가 창조해낸 언어의 질감이나 이미지를 위한 것 때문임. 존 키츠가 설정한 협화음, 조화, 영웅시체 이행연구, 동음이의어, 이음동의어, 각종 언어유희가 다른 언어로 번역이 되면 말 그대로 '키츠'의 언어가 훼손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가 세팅한 기본적인 언어적 영역안에서 사유하는 것이 불가능해짐. 즉 우리는 키츠가 아닌 '김우창' 역자가 키츠의 시를 일차적으로 해석한 것을 바탕으로 창조한 시집을 읽는거지 '키츠'의 시를 읽는게 아님. 내가 지금 지적하고 싶은 점은 번역본이 무조건 나쁘고 타도해야되며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님. 당연히 주제, 장면, 서사와 문장 아이 그래 백번 양보해서 몇몇 단어까지 독자는 느낄 수 있겠지 아니 있어
느낄 수 있어. 다만 작가가 세팅한 언어적 세계 속에서 문장을 뜯어보고, 맛보며, 상호작용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번역본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고 싶음. 솔직히 위 쓰니가 이걸 가지고 왜 이렇게 화내는 지 이해가 안되는데 내가 생각해보니 이건 태초부터 바라보고 있는 관점이 틀린 것 같음. 독자가 키츠와 대화를 시도? 키츠가 배치해둔 문자, 그 문자의 여러 재배열, 연결를 통해 새로운 의미와 해석을 알아낸다? 문자의 흐름을 파악해 유기적 소통을 연구한다? 어떻게 보면 간단함, 그냥 영어를 잘하면 됨. 그 미세한 이질감을 몇초 사이에 알아차릴 정도의 직관과 만약 그것이 없다면 커버 칠 수있는 지식이 있으면 됨. 키츠는 ‘멀리 멀리 날으라’라고 쓰지 않았음. ‘Away! Away!’라고 썼지. 독자가 스스로 A
way! Away!를 읽고 생각해서 ‘멀리! 멀리!’라고 떠올리기도 하고 ‘멀리 멀리 날으라’라고도 판단하면서 이 구절에 대한 감정, 감성을 느끼고 나름의 의견을 내놓겠지. 난 이러한 상호작용, 언어 사이의 유대감까지 가져가야 키츠의 시를 읽었다고 보는 사람임.
원문 숭배는 이해를 방해할 뿐임. 왜냐하면 시가 언어로 이루어져 있기는 하지만, 정신의 극치로서 시는 언어를 초월하는 어떤 지향점에 있기 때문이지. 의미는 어차피 무한하기 때문에, 번역어에서도 무한한 의미는 창출됨. 시를 깊이 이해한다는 것은 음절 맞추기나 언어 유희나 심오한 의미 이상의 감각적 깊이를 이해한다는 것을 말하는데, 번역으로 이러한 감각적 깊이를 표현하기 위해서라면 원어는 얼마든지 변형될 수 있고, 훼손될 수 있고, 생략될 수도 있는 것임. 백석은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을 엄청난 괴력을 보여주는 압축적 스타일의 문체로 번역했는데, 그 결과 숄로호프의 밋밋한 산문체를 능가하는 <예술번역>의 결과물이 탄생했음. 원문 절대주의는 <예술번역>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정신적 편협함의 소산일 뿐인데,
파스테르나크가 햄릿을 개성적이고 강렬한 언어로 번역했다고 해서 셰익스피어가 표현하고자 했던 무언가가 상실되었을까?...... 우리는 작가의 언어 속에서 의도적인 표현의 비율이 사실 그렇게 높지가 않고, 언어적 표현은 언제나 작가의 의도를 넘어선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예를 들면 "건달"의 어원이 산스크리트어로 <즐거움의 신>을 뜻하는 "간달파"의 음차인데, 어떤 한국 작가들이 이런 어원을 염두에 두고 쓰겠나? 언어에서 의미는 언제나 무한히 창출되는 것임. 벤야민의 번역론에서 이야기되는 순수 언어 같은 형이상학적 개념을 동원하지 않고도,
언어는 언제나 변화하는 상태에 놓여 있고, 키츠 시대의 영어와 우리 시대의 영어가 달라졌기 때문에 어차피 모든 현대인은 키츠의 영어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기묘한 결론에 도달하지 않기 위해서는, 언어를 초월하는 시의 지향점이 번역의 목적이 되어야 함을 고찰할 수 있을 것. 즉 벤야민의 순수 언어와 같은 형이상학적 개념을 동원하지 않고도, 우리는 번역이 갖는 위대한 표현 가능성을 금방 고찰할 수 있는 것임. "away! away!"가 자유시 이전의 다소 정형적인 영시의 리듬 속에서 너무나 젊은 시인에 의해 씌여진 문장이라면, "멀리 멀리 날으라"에는 원문의 가벼움을 보충해주는 고전주의적인 우아한 리듬의 깊이가 표현되었음.
그러므로 우리는 번역을 통해서 원문이 보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할 수 있는 것. "멀리! 멀리!"와 "멀리 멀리 날으라"는 전혀 다른 깊이의 번역인데, "멀리! 멀리"가 왜 쓰레기 같은 번역이고 "멀리 멀리 날으라"가 왜 대가의 번역인가를 이해하지 못하고 둘 사이의 동등함을 주장하는 것은, 깊은 언어 감각의 전달이라는 문학의 존재 이유에 대한 부정으로 귀결되는 것.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327628를
보면 우리는 조향의 ESQUISSE 원문보다 영어 번역문의 문장이 오히려 더 뛰어남을 알 수 있는데, 조향의 원문에 번역문으로는 도저히 표현 불가능한 뭔가가 있어 보일까? 오히려 영어 번역문이 시적 정서를 더 정확히 전달.
결론으로, 원문이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마 존재하지 않을 것임.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문학에는 언어를 초월하는 시적 지향점이 있다는 것, 그것이 문학의 핵심이고, 그것이 원문보다 중요하다는 것. 번역은 그러한 초월점을 드러내줄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외국어를 못하는 독자를 위한 편법이 아니라, 위대한 가치를 갖는 창조적 작업이 될 수 있는 것임. immortal bird보다 불사의 새가 더 큰 울림을 갖는 이유는 두 언어를 다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독자들에게 다소 단조로운 immortal이라는 단어보다 '불사'라는 한자어의 냉엄한 고대적 대칭성이 더 강렬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 "불멸"이라고 번역했다면 이 감각적 깊이는 훼손되었을 것.
보르헤스의 초기 에세이 중 키츠의 나이팅게일이 왜 immortal bird인가를 고찰한 글이 있는데, 사실 다들 알다시피 현실 속에서는 나이팅게일은 죽는 새고 immortal bird일 수가 없음. 키츠는 나이팅게일을 시적 영원성을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불멸'이라는 번역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아이러니가 '불사'라는 번역어를 통해 더 선명하게 표현된 것.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원어 독해 능력 이상으로 번역의 대가들, 위대한 번역자들이 필요하고, 그런 대가들은 원문을 역사적으로 능가하고 재창조할 수 있는 실질적인 가능성을 갖는 것. 그런 대가들을 통해서 원문이 단순히 죽은 경전이 아니라 살아있으며 무한한 창조력을 가진 텍스트가 될 수 있는 것이지, 우리가 키츠의 본래 의도에 매달려 있을 필요는 사실 전혀 없음. 언어는 사회적인 것이고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가 1:1 단어 대응의 <객관적인> 직역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대가에 의한, 주관적인 <예술번역>을 지향해야 하는 이유(왜냐하면 객관적인 번역이란 사실 허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다시 말하지만, 키츠의 감각 세계 자체와 원문에만 매달려 있으면, 사실 현대인은 그 누구도 키츠의 시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막다른 결론에 도달할 뿐임. 보들레르와 도스토예프스키가 태어난 바로 그 해에 죽은 시인, 인터넷을 해보지 못한 시인의 감각 세계는 어차피 현대인으로서는 결코 똑같이 느낄 수 없는 것. 내 기억에 보르헤스는 키츠를 다루었던 글을 이런 결론으로 마무리함. "고전이란 결코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책들이 아니라, 그저 많은 장점을 지닌 뛰어난 책들일 뿐이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327628
위에서 언급된 조향 관련 글 링크
ㅇㅋㅇㅋ 무슨 말인지 납득함. 그런데 여기서 님이 논의하고자 하는 방향과 내가 생각하는 방향이 다른 것처럼 보임. 나는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는 작가의 책임이라고 생각함, 그리고 독자가 특정 작가의 세계에 돌입해서 몰입하는 경우에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그 영역안에서(영역이라함은 작품 속 세계관과 분위기) 독자들은 마음대로 누빌 수 있다고 봄. 물론, 번역은 예술이지. 난 부정하지 않아. 프루스트의 길고 긴 산문시는 몬크리에프의 번역에 비해서 오히려 문체가 다소 평이하다는 사실은 유명함. 내가 피력하고자 하는 의견은 그건 몬크리에프의 번역이고 그곳에는 프루스트가 직접 고심하며 창작한 단어와 문자의 의도가 안 들어가 있다는 사실임. 나는 시는 언어이며, 언어로 이루어져 있고 그 자체를 뛰어넘는것은 불가능이라 봄.
긴글로 설명해주어서 너무 감사함.
토론에서 패배하니 비겁하게 완장닉달고 온건가요?
저어 방금 입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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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역은... 사회악이다...
ㅎㄷㄷ
근데 원문 뉘앙스 한 번 맛보면 외국어 배우게 되더라ㅋㅋㅋ 읽고 싶은데 번역 안 해주니까 꼴받길래 공부해서 독해 한정이지만 8개국어 가능한데 나라별 번역 비교해보면서 읽어보면 각 나라마다 문화랑 언어가 다르다보니 살린 뉘앙스가 다르고 불어-영어, 일본어-한국어 같이 유사한 언어랑 불어-한국어, 스페인어-일본어 같이 전혀 다른 언어 번역은 뭔가 차이남ㅋㅋㅋ
나는 시 한국어 번역을 읽어도 이해 안 되던데 - dc App
이거 모 소설가 선배님께서 번역시 읽는 건 그 시를 읽는 거랑 구분해야 한단 주장을 들은 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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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으.. 외국어 배우는 중인데여
handkerchief of nostalg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