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품위란 사람의 공감에서 나오는 거라고 생각한다.

"A 정말 품위있다."라고 B가 말할 때, "품위있다"라는 생각은 B에게서 나오는 거니까.

좀 더 확장시켜보자면, 

개인적으로 윤흥길의 '종탑 아래에서'라는 단편 소설에서 명은이가 우는 장면을 매우 인상깊게 봤다.

아이의 순수성이 침해되었지만, 그것을 작가가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작가는 일부러 화자와 청자 둘 다 아이로 설정해 '전쟁'이란 대주제의 비극성을 심화시키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 부분에서 감동을 받지 않았다.

난 명은이가 눈이 멀었다는 것도, 아이들이 큰 종을 몰래 칠 수 있다는 것도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화자와 청자 둘 다로 쓰였다는 것에서는 마음이 갔다.

이만 거두절미하고, 다시 주제로 돌아와보자.

연민, 나는 이 연민이란 단어가 키워드라고 생각했다.

품위라는 것은 남이 고상하다고, 즉 자신보다 높은 지적, 심적, 예술적 능력을 가지고 있을 때, 느끼는 소위의 경외감이자 열들감이라고 대강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품위와 자존심은 한 끗 차이다.

여기에서 품위와 콧대 높은 것을 가르는 한 단어, 그것이 바로 연민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아무리 똑똑하고,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결국은 사람과 소통하지 못하면, 페터 빅셀의 '책상은 책상이다'의 발명가처럼 될 수 있는 것이다.

윤흥길 작가는 화자와 청자를 모두 아이로 설정함으로써, 아이의 순수하고 연민 어린 시선으로 아이의 울음을 표현할 수 있었다.

아이의 울음은 그 무엇보다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것에 공감함으로써 우린 '아이들보다 더 많이 알고 많이 자란 존재'에서 한층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순수한 시선으로 권력, 또는 재정의 압력에 눌린 사람들의 내면을 들여다 봄으로써, 우린 인간성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