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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조어론 제일의 명대사...  (좆같은 자식!)
읽다보면 작가한테 해주고 싶어짐.



각1설하고,

올해 1월에 독붕이한테 나눔받은 책을 연말이 다 되어서야 읽었음

난이도도 높거니와 글자가 빼곡해서 읽는 데 꽤 큰 체력이 들어가는 책인 건 분명함... 한자는 일일이 찾지 않고 그냥 흘러가듯이 읽었고, 대충 절반 정도는 읽을 수 있겠더라. 나머지 절반은 그냥 모르는대로 봤음. 뭐 어떰.

1권은 각론 풀이에 가까우며, 제대로된 서사가 등장한다는 2권 내용이 궁금하긴 하지만, 아마 좀 나중에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칠조어론 1권은 촛불중이 소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관념들을 늘어놓는 내용이고, 대표적으로 욥기와 처용가에 대한 자체적인 해석, 죽한연에 대한 보충설명이 수록돼 있음.

그중 욥기에 대해 살짝 언급하자면, 촛불중(박상륭)은 욥기의 ‘신’에 대해 이렇게 변호하고 있음.

“신은 개존자가 아닌 전존자이며, 그렇다면, 그가 만약, 도덕적으로 열세를 보일 수 있다면, 그것은 신의 열세가 아닌, 그 세계의 도덕이 쇠퇴한 것이다.”

즉, “신이 감기를 앓고 있는데, 욥만은 숨을 잘 쉬고 있을 수 없으며, 욥들이 앓고 있는데, 그 신만 홀로 음풍영월할 수는 없다.”는 것임.

여기에 김현의 평론을 곁들여 볼까? “촛불중은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하느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 그렇게 된 예언자이다.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외치고,불의와 불신앙을 매섭게 탓하는 대신, 나도 너희들과 같이 아프겠다라고 말한다.”

박상륭이 말하는 ‘욥기’는 구약성경에서 나오는 “전지전능한 신이 인간을 시험하고, 인간은 그 고난을 견뎌낸다.”라는 도식이 아니고, 욥이 이 세상의 모든 아픔(부조리)을 짊어지고 있음을 뜻하고 있음.

이에 대해, 촛불중은 욥이 공시태적 존재(상징적 존재)를 벗어나 통시태화된 인물(현실의 인물)로 자리잡는 다면, ‘크고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음. 그러한 즉슨, 여기서 욥은 촛불중과 같은 “나도 너희들과 아프겠다라고 선언하는 병든 짐승”인 것임.

이처럼 박상륭의 주된 특징이라 한다면 신화, 종교, 설화를 자의적으로 스까묶는 자유로운 상상력이 아닐까. 김주연 평론가는 <죽음의 또 다른 연구>에서 박상륭이 기독교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음을 지적하기도 하는데,

박상륭은 <칠조어론>에서 “신앙의 울타리 안에 양육되어지고 있는 양들께는 이러한 해석이 불가능하다.”고 답하고 있음. 물론 <죽음의 또 다른 연구>는 박상륭 사후에 나온 평론이긴 한데, 아마 박상륭도 생전에 그러한 비판을 의식하고 있었을테니...

근데 이게 또 아예 생뚱맞은 비판은 아니어서, 나도 작년에 박상륭에 꽤 매달려서 이 작품 저 작품 읽고 평론도 읽어보긴 했지만, 결국에 박상륭의 관념은 철학이나 종교학이 될 수 없고, 그저 본인의 뇌내관념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좀 마음에 걸리긴 함.

물론 그 관념은 그자체로 신선하고 기발한 것이지만, 때로는 왜 이 사람의 몽상을 이렇게 에너지를 들여가며 읽어야 되나... 싶을 때가 있음. 아니 갑자기 ‘사람=물고기=양극을 갖는 타원형’이라는데, 이걸 뭐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ㅋㅋㅋ 싶잖어.

그래서 나는 박상륭을 관념작가로 보기보단, 인간의 광기에 집요하게 매달린 문장가 정도로 보는 편임. 문장이 찰지고 서사가 자극적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읽을 이유는 충분하니까...

아무튼 칠조어론 도전하고 있는 독붕이들이 꽤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다들 열심히 읽어서 언젠가 같이 완독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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