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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감정은 너무나 다양하기에 그 감정에서 나오는 행동들 또한 너무나 많다. 김사과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의 행동의 원천은 분노와 절망이다. <영이>는 원초적인 감정 그 자체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이 어울릴 만큼 표현들이 자극적이며 단순하다. 등장인물들의 행동들 또한 살인, 폭력, 욕설 등 분노의 극단에서 나오는 행동들을 보여준다. 이 분노는 절망적인 사회에서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것이며 <영이>는  절망적인 사회가 축적시킨 분노의 응축이라고 할 수 있다. 김사과는 이를 그대로 사회로 돌려준다. <영이>는 김사과의 사회를 향한 무기와도 같은 작품이다.

<영이>가 특이한 점은 전달과 표현의 방식이다. 김사과는 고통의 크기를 (11pt, 명조체) 이렇게 표현한다거나 글씨의 크기를 바꿔 감정의 크기를 표현한다. 이 신선하고 도전적인 실험정신은 김사과만의 무기이며 독창적이지 않은 서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우리에게 특별하게 전달되는 이유다.

"한 문장으로 쓰면 될 것을 나는 왜 이렇게 많은 문장을 쓰고 있나. 왜냐하면 백 문장에는 백 문장의 진실이 있고 한 문장에는 한 문장의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고통과 나의 고통이 다른 것처럼, 열 시간의 고통과 십 분의 고통이 다른 것처럼, 백 문장의 진실과 한 문장의 진실은 다르다. 이것은 아주 고통스러운 광경이기 때문에, 한 문장-삼초의 고통이 아니라 천 문장-삼천초의 고통을 안겨줘야 한다."

"나는 읽는 당신을 원하지 않는다. 느끼는 당신을 원한다"

이 노골적인 김사과의 자문자답 이야말로 이 책이 존재하는 이유다. 그것은 감정의 공유다. 이 책은 지식을 얻어 갈 수도, 심금을 울리는 감동을 얻어 갈 수도 없다. 오직 그들의 분노와 절망의 감정을 오롯이 느끼는 것뿐이다. 김사과에게 <영이>를 읽는 현실의 구성원인 독자들은 현실사회라고 할 수 있다. 김사과는 우리에게 분노와 절망의 감정에서 오는 고통을 더욱 크게 부풀린다. 그것이 김사과의 대화 방식이다. 김사과는 결코 공감하지 못하는 자들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 "내 이야기를 듣지 않는 놈들은 다 죽여버리겠다. 왜냐하면 내가 말하고 있으니까" 이 책은 아까 말했듯 김사과의 무기이기 때문이다.

소설이 끝나고 남는 것은 오롯이 소설 속의 인물이다. "당신은 아주 오래 느껴야 한다. 한번 더 사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오랫동안 말이다. 그래야 영이가 당신 마음속에 오래도록, 영이가 죽고 내가 죽은 뒤에도,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김사과가 원하는 것은 공감과 위로다. <영이>의 등장인물들은 너무나 나약하다. 등장인물들의 분열증, 폭력과 욕설은 모두 자신을 지키기 위한 보호본능에 가깝다. 김사과는 <영이>로 독자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고통을 주려고 한다. 약한 개일수록 크게 짖는다는 말이 있다. 독자와 사회를 향해 짖으며 물려하는 <영이>라는 개에게 필요한 건 사회가 주는 따스한 공감과 위로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