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읽는 중인데 어차피 11월 중에 다 못읽으니 일찍 11월 결산감.
도덕경
읽을까말까 벼르다가 큰 맘먹고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다.
노자의 도라는 것은 무위인데, 과연 국가통치에 있어 노자의 도가 과연 적용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도의 실현은 방법적으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국가를 다스리는 것이고, 그 도의 본질적 모습은 세상의 모든 것을 그저 포용하는 어떤 우주의 존재 원리이자 우주가 작동하는 원리인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뭘 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진흙 속으로, 구더기가 끓는 진창 속으로 발을 한 번 담구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늪으로 빠져버리는 실제 사례들을 생각해보며, 아 어쩌면 노자가 옳을 수도 있겠구나(군대의 수많은 일화와, 부동산 등등)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해도 노자의 무위사상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옳지 않은 것이 아닌가? 이런 고민 또한 도를 완전히 깨닫지 못한 자들 사이에서 붉어지는 고민이라 하니 도의 세계란 깊고도 심오하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모든 이들이 철저히 자신의 이익에 기반하는 사회와 그 내심을 가리기 위한 모든 위선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그 모든 거짓 속에서 죽음이란 유일한 진실을 마주한 이반 일리치가 자신에게 놓여진 죽음이란 진실을 거부하다 끝내 자신을 유린하던 모든 거짓들과 위선들을 뿌리치고 진실을 받아들임으로써 죽음이란 운명을 수용하게 되는 태도의 변화가 숭고하게 느껴졌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계급이나 종교 등에 의해 인생이나 사고 등이 일정방향으로 결정된 운명론에서 탈출하게 되었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운명 ‘죽음’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약간의 용기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
밤의 사색
헤세의 에세이(밤과 불면에 대한 에세이가 몇 편 있어 아마 이 때문에 책 타이틀이 밤의 사색으로 정해진 듯 싶다),시 몇 편이 묶어져 있다. 인상깊은 구절로 책 소개를 대신한다.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기. 안전했던 모든 것을 뿌리치고 훌쩍 몸을 던지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송두리째 내던진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렇게 큰 믿음을 경험하고 운명을 철저히 믿어본 사람은 두려움에서 벗어 날 수 있다.
네가 고통스러운 까닭은 고통을 겁내기 때문이다. 네가 아픈 까닭은 고통을 막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통에서 도망치지 말고, 탓하지 말고, 겁내지 마라, 고통을 사랑하라. 너는 이미 스스로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유일한 마법, 단 하나의 힘, 구원과 행복이 마음속에 있고, 그것의 이름이 사랑이라는 것을 너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 고통을 사랑하라! 거부하지 말고 도망치지 마라! 고통에 담긴 은밀하고 깊은 달콤함을 맛보라.
데미안
너무나도 유명한데다 요즘 인싸 핫픽이라 뭐 더 적을게 있을까 싶긴 하다만은, 그럼에도 이렇게 인기가 많을 주제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코 만만치 않은 주제와 내용을 가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카인 – 아벨의 관계를 강자 – 약자의 구도로 봤다는 점, 전통적으로 기독교에서 선한 것 아닌 악한 것으로 치부하는 것들을 긍정해야 한다는 점, 충만한 생명력, 사랑에의 동경, 성의 충동의 긍정, 기존의 도덕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점 기타 등등등등(모든 것을 서술하기엔 너무 많은 문장을 할애해야 할 것 같다.) 헤세가 니체의 사상을 소설로 옮겨놨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읽었는데
다른 글들을 보니 칼 융의 정신분석학을 소설로 옮겨놨다고 한 글들을 보면서 신기했다.
역시 아는만큼 보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헤세의 저작들을 이해하기 위해선 꿈이 중요한 요인으로 보이는데 관련된 책 추천해줄 만한 거 있으면 추천좀)
그리고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며 읽었는데 갤에 게시했던 내용 중에서 크로머에 관한 부분이, 크로머에게 깊은 상처를 입고 자신의 흑염룡을 불러일으킨 싱클레어가 데미안이란 또 다른 인격을 소환하여 크로머를 혼구녕을 내주고, 싱클레어가 스스로 크로머에 관한 그 상처를 아물만큼 성장하자 사실은 싱클레어 안에 있던 또 다른 데미안이란 인격이 더 이상 필요가 없어져 사라져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작품을 해석하려고 시도했던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지와 사랑(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세계를 인식하는데 지나지 않는 학자 나르치스와 세계의 모든 것을 긍정하고 사랑하며 맛본 예술가 골드문트를 보여주며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툭하고 던진다.
“하지만 나르치스, 자네는 도대체 어떻게 죽을 텐가? 자넨 어머니도 없잖아? 어머니 없이는 사랑도 할 수 없어. 어머니 없이는 죽을 수도 없다고.”
패드립이 아니라 주제를 관통하는 마지막 말이라고 생각한다.
점점 변화하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관계에서 작가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은연중에 드러냈다고 본다.
잘쓰진 못했지만 작품에 관심이 가고 이에 관해 내가 쓴 글을 더 보고 싶다면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344190&search_head=40&page=3
가난한 사람들
늙다리 무식 가난뱅이 데부시킨의 어리고 예쁘고 배우기까지 한 바렌카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다룬 작품. 편지로만 전개된 형식이 신선했다.
연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강함과 넘침에서 나오는 연민이 아니고서야 그것은 주는 자와 받는 자 모두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 주는 사람의 상처를 악화시키고 받는 사람의 마음을 절벽에서 밀어 추락시킨다는 것. 그럼에도 데부시킨을 무작정 욕할 순 없는게 이런 사랑이, 그 희생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고, 나는 할 수 없는 이런 사랑이 더욱 낭만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으며 아프리카 비제이에게 별풍을 쏘기 위해 강도살인을 저지른 한 사건이 계속 떠올랐다.. 도끼가 살아생전에 이런 사건이 벌어졌다면 필히 소설의 소재로 차용하지 않았을까?
12월은 아마 도끼 장편 읽는데 다 보내지 않을까 싶네.. 무지성으로 읽으면 금방 읽을 수 있을 거 같기도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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