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 커트 보니것 주요 소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소설 분야의 쇠퇴를 말하는 목소리가 언제나 들리는 와중에, 1960년대는, 미국 소설계에 있어서 실로 충만한 10년이었던 것 같다. 헤밍웨이나 포크너를 잇는 거물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자질을 달리하는 많은 작가들이, 새로운 소설의 가능성을 찾으려 경쟁적으로 역작을 발표해, 미국 소설사에서도 특필할 만한 시기를 형성했다고 여겨진다. 노먼 메일러의 화려한 실험, 또 한편에는 존 업다이크의 도회적인 단정이 있는 반면, 조셉 헬러의 부조리한 실소와, 윌리엄 스타이런의 인간성의 비극이 있는 형태이다. 또한 저널리스틱한 의미에서는 버나드 맬러머드를 비롯한 유대계 작가들의 활약이 눈길을 끌었고, "블랙유머계"라는 호칭 아래, 전술한 헬러라든가 존 바스, 윌리엄 버로스 등의 다양한 재능이 하나의 조류를 선보였다.
이런 상황은 도대체 어떻게 일어난 것인가.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지만, 인간의 행동은 전부 그 주변 사회의 구조에 의해 깊이 조건지어진다는 의미에서 이 또한 60년대에 미국을 강타한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거대한 사회적 변동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베트남전의 장기화로 인한 경제정책 파탄, 인종문제의 심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건 전 지구적인 규모에서 중요성을 갖는 것이지만) 후기 산업사회의 혼란스런 성장이 보여준 물질문명의 한계. 이들은 "아메리칸 드림"의 붕괴를 가속시켜, 전 대통령 린든 존슨이 말한 "위대한 사회"의 왜곡을 불러왔다. 그리고 물론 미국은 물질문명의 첨단을 달리는 나라인 만큼 현대의 위기가 가장 깊이 파고들어 거기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나라라고도 할 수 있다. 반전운동, 마약, 히피, 성의 자유화, 흑인폭동, 등등 신문 잡지를 통해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현상을 미국사회의 밑바닥 불안의 집적적인 분출이라 한다면, 60년대 미국소설의 성황은 그 간접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수요와 공급의 관계가 거기에 설립했다는 것은, 이른바 획일주의에 나 자신도 속해있으면서도 무언가 불만족을 느끼고, 그렇다고 해서 행동을 하기에는 너무 망설여지고, 그 외의 형태로 자기해방의 실로를 요구하는, 그런 독자가 다수 있었던 것이다.
60년대에 중요한 작품을 발표한 작가의 대부분이, "블랙유머계"의 범주로 총괄된 것도 따지고 보면 그렇게 근거 없는 것도 아니다. 현대 사회를 움직이는 거대한 힘에 대한 반발, 그러나 그 자신도 그 안에 속해있다는 두려움, 마음 속에 남겨진 자유의 가능성 모색, 그 끝없는 노력이 엮어내는 절망적인 웃음, 그들의 작품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것은 현대인이 많든 적든 품고 있는 그런 감정의 반영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작가 커트 보니것 주니어도 또한, 지금까지 서술한 배경 속에서 폭넓은 독자를 획득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소수의 열렬한 지지자를 갖고 있었지만 일반 독서계에서는 무명이나 다름없었던 오랜 기간을 지나, 지금 보니것은 현대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의 한 사람이다.
영국 평론가 토니 태너는 훌륭한 현대 미국 소설론 <City of Words> (1972)에서 보니것에게 한 챕터를 할애해, 그 작품의 현대적 의의를 설명하고, 미국의 평론가 로버트 스콜스도, 보니것을, 로렌스 더럴, 테리 서던, 존 호크스, 아이리스 머독, 존 바스와 함께 논한 <The Fabulators>(1967) 라는 저서가 있다. 후자는, 현대의 실험적 소설 중에서도 중세의 우화와 공통되는 논리구성을 갖고 있는, 6인의 작가를 예로 들며 "사실과 떨어져, 윤리적으로 억제되었던 환상을 통해 인생의 본질에 되돌아간다"고 그들의 작품의 특징을 분석한 평론이다.
또한, 보니것의 일생과 작품을 논한 단행본 출판도 잇따라, 지금 수중에 있는 것만 5권 이상이다. 그 중에서는 제롬 클린코위츠와 존 소머의 <The Vonnegut Statement>(1973) 그리고 제롬 클린코위츠와 도널드 L 롤러의 <Vonnegut in America>(1977)가 너무 파고들지 않은 연구서로서 합리적일 것이다.
그런데, 격세지감이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일까, 내가 보니것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이상이나 지난 옛날이지만, 그 무렵 그는 한 권의 장편 <자동 피아노>와 몇개의 단편으로 미국 SF계의 일곽에 이름을 남긴 이색적인 작가에 지나지 않았다. 그 후 <타이탄의 미녀>라는 수작이 발표되어, 그를 재인식하는 SF 독자는 늘어났지만, 내용이 황당무계한 우주 판타지 (정말 이 말 그대로이다)라서 광범위한 독자는 바랄 수 없었는데, 그로부터 시간이 지난 지금, 보니것의 작품은 초기의 SF도 모두 포함해 전부 하드커버로 재간되어 연구서가 나오고, 신간의 서평이 나오고, 모두 베스트목록에 오른다.이런 평가의 급상승은 무엇에 유래하는 것인가. 보니것의 매력은 어디에 있는가. 그의 경력과 작품을 따라가면서 그 비밀을 알아 보도록 하자.
커트 보니것 주니어는 1922년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에서 태어났다. 본서에도 기재되어 있듯이 독일계 이민자 4세로, 아버지는 건축기사, 8살 연상의 형은 유명한 물리학자라 한다. 코넬 대핵에서 생화학, 카네기 공대에서 기계공학을 배우고 테네시 대학에도 다녔지만, 2차대전 발발로 육군에 소집되었다. 1945년 2월 본서의 테마인 드레스덴 폭격을 피해자 측에서 체험했다. 전후 시카고 대학에서 공부한 후 제너럴 일렉트릭사에 근무한 이후 프리랜서 작가로 전향했다.
처녀작은, 1950년에 발표된 단편 <번하우스 효과>, 어떤 이상주의적인 과학자가 자신이 개발한 정신에너지 효과를 이용해 전세계의 무기를 말소하려고 한다는 내용에서 알 수 있듯 순연한 SF이지만, 흥미로운 것은 이것이 당시의 주간지 콜리어스 매거진에 게재된 것이다. 보니것은 "SF작가" 라는 한정된 타이틀에는 본래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그 후 발표된 단편도 SF와 관계가 있었지만, 게재지는 코리어스,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에스콰이어 등의 슬릭 잡지 (윤기있는 종이를 사용한 일반 잡지)가 대부분으로, SF 전문지에는 극소수만 게재했다.
그리고 1952년 그는 처녀 장편 <자동 피아노>를 발표한다. 피아노 연주자가 기계를 사용해 자신의 미의식에 맞는 소리의 배열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라면, 자동 피아노는 미리 프로그램된 소리를 바꾸어 내는 기계이기에, 그것이 완성되면 인간의 존재는 쓸모가 없어지게 된다. 그런 제목이 상징하듯이, 이것은 자동화된 미래사회와 거기에 대응한 혁명의 좌절을 그린 SF이다. 긴밀한 플롯과 억제된 문체에, 오웰의 <1984>나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연상시키는 정통적인 미래 소설로, 지금은 뛰어난 반 유토피아 소설로 평가가 정착되었지만, 당시는 몇명의 SF 비평가가 절찬했을 뿐으로 일반적으로는 묵살되었다.
2번째 작품인 <타이탄의 미녀>는, 그로부터 7년의 간격을 두고 발표되었다. 앞에서도 조금 다뤘던 것처럼, 이것은 전작과는 매우 달라진, 장대하고, 코믹하고, 아이러니한 우주 판타지이다 보니것은 인간이 말하는 '진리'에는 무한한 변주가 있으며 그 중에는 완전히 대립하는 의미를 가진 것도 있다. 그런데 이 우주에는 그러한 다양한 '진리'가 '시계의 부품처럼 딱 들어맞는' 영역, 시간등곡률깔대기가 있다. 거기로 우주선을 모는 신과 같은 전지의 존재가 된 럼푸드. 그에게 조종되는 주인공 콘스탄트는 화성으로, 수성으로 여행을 계속하지만, 이윽고 종착점인 타이탄(토성의 위성)에서, 럼푸드를 포함한 인류 모두가 유사 이래, 우주의 끝에 살고 있는 트라팔마도르 성인에게 조종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람을 먹어버린 이야기라고 해버리면 그만일지도 모른다. 보니것은 스스로 즐기면서 작품을 쓰는 것처럼 보이고 그런 의미에서 잘 만들어진 SF라고 평가하면 그만이지만, 그의 저작 전체로부터 살펴보면, 이 작품이 보니것에게 있어서 하나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인 것을 알 수 있다.
<타이탄의 미녀>는 그 무렵 SF들이 대부분 그랬던 것처럼 페이퍼백으로 나왔지만, 그 직후 혜안이 있는 편집자에게 발견되어 하드 커버의 신판으로 간행되었다. 그러나 보네것에게 주목하는 독자는 아직 별로 없었고, 이어지는 두 권의 단행본도 페이퍼박스로 나와야 했다. 1961년의 <고양이 집의 카나리아(Canary in a Cathouse)>와 <마더 나이트>이다.
전자는 "장편 집필의 자금을 만들기 위해서", 후자는 3번째 장편. 이건 SF가 아니다. 나치 독일의 선전부에서 높은 지위에 올라 이제는 아돌프 아이히만의 이웃 독방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미국인 하워드 캠벨 주니어의 고백 형식을 취한 현대 소설이다. 요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 배경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 보겠다. 캠벨은 실은 마음 속에선 나치의 동지자가 아니다. 그는 독일을 사랑하고 독일 여성과 결혼하고 독일어 연극을 써서 세간에서 성공을 거두지만, 거의 정치에 관심이 없는것과 마찬가지인 예술가이다. 그러나 본인의 이름값 때문에 그는 미국의 첩보기관에 포섭되어 스파이가 되어 나치 독일에서 악명을 얻는다. 표면적으로는 완전히 모순되어 보이지만, 켐벨에게 있어서 이 행위는, 광기의 세계에서 가상의 자신을 만들고, 예술가로서의 정기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었다. <타이탄의 미녀>에서는 은하적 스케일로 확대되었지만, 인간사회를 조종하는 정체모를 거대한 힘과 거기에 농락되는 자신이라는 테마는 매우 현대적인 의미를 지니고 나타난다. 그리고, 거기에 피어나는 냉소와 애도. <마더 나이트>는 그때까지 SF라는 상상화의 세계에서 부당하게 간과되기 쉬웠던 그 특질을 처음으로 일반 독자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형태로 제시한 것이라 해도 좋다.
이 장편으로 도약해, 다음 작품으로 보니것은 드디어 긴 불우의 시대를 빠져나가게 된다. 1963년에 발표된 <고양이 요람>이다. 전작에서 볼 수 있었던 테마와 특질은 여기서도 모습을 바꾸어 등장하고 있다.이것은 가혹한 현실을 거부하고 거짓말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택한 신흥 종교, 보코논교와 순간적인 실수로 이 세계에 찾아온 파멸에 대한 이야기이다. 화자는 작가 자신이라고도 볼 수 있는 프리랜서 작가. 그는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된 날 미국의 중요 인물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기록한 논픽션 <세계가 종말을 맞은 날>을 쓰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완성되지 않는다. "원폭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지금은 사망한 천재 과학자가, 생전 재미삼아 발명한 기묘한 물질 (녹는점이 섭씨 46도인 얼음!)에 의해, 세계가 정말로 종말을 맞아 버리기 때문이다. 제목에 있는 '고양이 요람'은 일본에서 말하는 '실뜨기'이다. 어른은 거기에서 고양이를 보고 요람을 본다. 하지만 벌거숭이 임금님의 비유처럼, 순진한 사람의 눈에는 고양이도 요람도 없다.
대형 출판사에서 하드 커버로 간행되기도 하고, 이 책은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다. "현대 미국의 가장 뛰어난 작가 중 한 명에 의한 올해 베스트 3에 꼽히는 걸작" (그레이엄 그린), "뛰어난 문명 비판 작품이 항상 그렇듯이 많은 비평가들이 '시리어스, 시리어스'라고 생각하는 우스꽝스러운 멜로드라마보다는 훨씬 매력이 풍부하고 깊은 의미를 지닌 작품" (테리 서전). 그러나 <고양이 요람>의 출현을 가장 환영한건 젊은 세대였던 것 같다. 자신들이 만들어낸 것도 아닌 이 세상에 강하게 반발하면서도, 마지못해 역할을 받아 살아가야 할 그들에게 있어서, 인류의 끝없는 어리석음을 블랙 유머를 곁들여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작가가 인류에게 향하는 공감은, 그들 가운데 뿌리 내린 인간 불신에 대적하는 훌륭한 융화제였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보니것의 지지층이 먼저 대학 캠퍼스에서 형성되고, 그 후 일반 독서계로 퍼져나간 것은 사실이다.
1965년, 다섯 번 째 장편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가 발표될 무렵에는, 이미 작가 보니것의 지위는 확립되어 있었다. "꿀벌 이야기에서 꿀이 빠질 수 없는 것처럼 사람 이야기에선 돈이 빠질 수 없는 노릇이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현대사회의 아이러니한 희극이다. 주인공 엘리엇 로즈워터는 알콜 중독인 대부호. 그는 또한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남자이다. 그에게 의미있는 소설은 SF뿐, 특히 칼고어 트라웃에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미래에 일어날 거대한 변화를 본심으로 걱정하는 듯한 "덜렁이"는 SF작가 뿐이기 때문에, 또한 트라우트의 SF에는, 그가 이상으로 하는 "있을 수 없을 정도로 환대의 세계를 그린 판타지"가 있기 때문이다. 로즈워터는 자신의 그런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전재산을 바쳐 축복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무상의 사랑을 주려고 하지만 세상의 일반 상식으로 보면 그의 행동은 광기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래도 내가 보니것의 구작을 이야기하는데에 너무 할애한 것 같다. <제5도살장>이라는 한 권의 책에 덧붙이는 해설로서는 불필요한 부분이 너무 많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쓴 것은, 미국과 우리나라의 보니것을 대하는 갭을 매우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도 물론이지만, 그 밖에 또 하나 큰 이유가 있다. 본문을 이미 읽으신 분은, 이미 예상이 되리라 생각한다. 로즈워터, 트라우트, 캠벨, 램파드, 트라팔마도어 외계인 등이 모두 지금까지 소개한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이름인데, 이 책에서는 그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이야기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작가 본인이 제 1장에서 말하고 있듯이, 본서가 그가 전쟁 중에 체험에 근거한 반 자전적인 소설인걸 생각하면, 당연할 것이다. 즉 <제5도살장>은 보니것이 자신의 지금까지 살아온 현실과 작가로서 쫓아온 환상을 처음으로 유기적으로 연결시킨 작품이다. 지금까지의 5개 장편에서는 표면에 나타났다고 해도 풍부한 상상력에 의해 극단적으로 디포르메 되고 있던 작가의 전쟁 경험이, <제5도살장> 에서는 처음으로 메인 테마로서 거둬 들여진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의 그의 장편 모두가 그랬던 것처럼, 보니것은 메인 테마를 직접적으로 쏟아내는 능력없는 짓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걸 정면으로 쓸 수 있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 거다. 그가 전시에 포로로서 체험한 드레스덴 폭격은 개인의 이성과 감성으로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사건이다. 퍼블리셔즈 위클리 잡지의 인터뷰에서 드레스덴 당시의 참상을 다시 묻는 질문자에게, 보니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라고 대답할 뿐이다. 이 책 속에서 연린처럼 지루할정도로 반복되는 "뭐 그런거지(so it goes)" 라는 말─아마도 그것은, 무너진 폐허에 섰을 때 그의 마음에서 태어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을 것이며, 지금도 그것이 전부일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작가로서 이 말이 내포하는 불가능을 소설로 써야만 했다. 예비 지식이 아무것도 없이 읽으면 이렇게나 성가신 소설도 없을 것이다. 시간 경과에 따른 이야기 전개를 일부러 분절시킨 (읽기 어렵지는 않지만) 기묘한 구성. 사실과 판타지의 융합, 비행접시, 시간여행 등 SF적 취향, 거의 무성격으로 그려지는 등장 인물들, 그러나 보니것은 이런 형태로밖에 자신의 체험을 말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드레스덴 무차별 폭격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우리나라의 독자를 위해 여기서는 본서에 쓰여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보충하도록 하겠다. 폭격은 1945년 2월 13일 밤부터 14일 아침에 걸쳐 행해졌다. 최초로 습격한 것은 영국 공군 소속의 랭커스터 중폭격기 약 8백기. 이들은 2파로 나뉘어 수천 톤의 고성능 폭탄과 65만 톤의 소이탄을 투하해 그것이 만들어낸 불꽃이 300km 밖에서도 보였다고 한다. 이어서 미군의 B1(하늘의 요새) 450기가 폭격을 행해, 숨통을 끊듯이 다음 날에는, P51 무스탕 전투기가, 폐허화된 도시를 떠도는 사람들을 공격했다. 군사적으로는 이 작전은 엄청난 성공으로, 목표 구역을 문자 그대로 괴멸시키면서, 격추된 비행기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이 책에서 드레스덴은 '비무장 도시'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오래전부터 폭격 목표로 간주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때까지 폭격은 거의 없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폭격에서도 군인 사망자는 거의 없었다. 당시 드레스덴의 인구는 동유렵의 난민으로 인해 평상시의 2배로 팽창했다. 죽은 사람은 3만 5천명에서 20만명까지 다양하게 알려져 있지만, 드레스덴 경찰이 제출한 추계 13만 5천명이 현재는 공식적인 숫자로 쓰이고 있다. 연합국 측은 1963년까지이 폭격을 은폐하고 있었다.
덧붙여 본서에선 이 드레스덴 폭격을 히로시마 원폭과 비교해 "히로시마를 뛰어넘는 규모"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 이론이 있는 분도 적지 않을 거라 생각해, 한마디 설명해 두고 싶다. 원폭에 의한 히로시마에서의 사망자 수는 일본에서도 일정치 않다. 십수만에서 20만까지 다양한 숫자가 나오는 것 같다. 다만 사망자의 수에 관해 미국이나 백과사전에서 추계한 수는 7만 5천에서 8만 사이이다. 그리고 미군의 발표에서는, 본서에서도 적혀 있는 대로, "71379"명이다. 하나 유감스러운 점은 살아남은 피폭자를 괴롭힌 방사능은 보니것이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것 같지만, 어쨌든 본서에서 중요한 것은 숫자의 비교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무의미한 대량 살육 중 하나를 저자가 피해자 측에서 체험했다는 점이고, 그것과 비슷한 행위가 아직도 세계 각지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부기)
본서는, 1973년 하야카와 쇼보에서 하드 커버로 출판된 <제5도살장>을 개제한 것이다. 작업에 들어갈 때는 번역문을 전면적으로 다시 체크했다. 또한 괴테의 <시와 진실>으로부터의 인용을 쾌히 승낙해 주신 키쿠모리 히데오 씨에게, 이 지면을 빌려 감사 말씀을 전한다.
1978년 12월
또 원폭 가지고 피해자 코스프레 ㅋ우리가 더 많이 죽었쪄요 피폭자 더 많았쪄요~ 이지랄 ㅋㅋ 차라리 난징대학살을 언급하던가 해야지. 백날 천날 책 읽어 뭐하나 싶음 저런 헛소리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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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판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