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붕이들은 여타 독서 커뮤니티에 비해 압도적으로 번역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 영문 번역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세익스피어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음.
물론 나는 영문학도는 아니고 개인적으로 셰익스피어를 좋아하는 사람임.
셰익스피어는 모두가 아는 작가이면서 동시에 모두가 잘 알지 못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음.
번역에 대해서도 그런데 많은 이들이 범하는 오류 중 하나가 출판사를 기준으로 번역의 질을 판가름 지으려고 함. 사실 이런 판단이 반은 옳고 반은 그르다고 말할 수 있는데 단일 출판사라 하더라도 각 작품 당 참여한 번역가가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임. 그러므로 번역에 참여한 교수나 학회를 중심으로 보는 게 좋음.
그러나 여기서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게 셰익스피어 번역은 누구의 것이 좋고 누구의 것이 나쁘다고 단적으로 이야기하기 힘듦. 많은 독붕이들이 을지가 낫냐, 민음사가 낫냐 식의 평가와 같이 셰익스피어의 번역의 질을 단적으로 평가하기 힘들다는 말임. 왜냐하면 셰익스피어의 번역에서는 먼저 고려해야할 사항들이 크게 두 가지가 있기 때문임.
하나는 바로 셰익스피어의 텍스트는 공연 텍스트이고.
둘째는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은 전부 시이기 때문임.
즉, 셰익스피어의 모든 희곡들은 기록으로서의 텍스트가 아니라 발화 텍스트라는 말임. 90년대에 들어서 셰익스피어의 번역이 활발해지면서 셰익스피어 텍스트에 나타나는 약강오보격의 무운시 운율을 새로이 조명하면서 이를 번역하려는 시도가 활발해졌음. 그러므로 셰익스피어의 텍스트를 어떤 측면에서 이해하고 싶느냐에 따라서 번역본을 정하는 게 좋음.
좌우지간 셰익스피어는 다른 작가들과 달리 번역을 하나의 문학사적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할 정도로 그 역사가 방대하며 영문 번역에 있어 적지 않은 성취를 남겼음. 서두가 길어졌는데 이만 줄이고 이제 본격적으로 셰익스피어 번역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음.
셰익스피어의 번역의 기원을 추적하자면 실로 오래되었는데 바로 1910년대 후반임. 램의 세익스피어 이야기라는 책이 일본을 통해 한국에 들어오면서 일본에서 유학하던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셰익스피어 번역이 최초로 시도되었음. 이후에도 드물게 세익스피어의 번역이 시도 되었으나 단일 작품 전체가 번역되기 보다는 각 희곡들의 유명한 부분들만을 따로 발췌해서 번역되었음. 대표적으로 줄리어스 시저에서 시저의 연설 대목이나 베니스 상인의 법정 재판 장면이 그런 것들임. 이렇게 간간히 문예지를 통해서 셰익스피어가 부분적으로 소개 되다가 현철이라고 하는 연극인이 마침내 셰익스피어 희곡 두 편, 햄릿과 베니스 상인을 번역함. 물론 영한 번역이 아니라 일본의 번역본을 중역했음. 당시에는 하믈레트와 인육재판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했는데, 기본적으로 현철은 어문학자가 아니라 일본에서 연극을 공부하던 연극인이었음. 그러므로 원문에 충실한 텍스트 번역이라기보다는 공연 대본으로서의 텍스트를 우선시했음. 현철이 셰익스피어 희곡을 번역하게 된 동기는 눈여겨볼만 한데 당시 일제강점기에 한국의 연극은 신파극이 주류였음. 값싼 눈물을 파는 신파극에 진절머리가 난 현철이 우수한 퀄리티의 연극을 소개할 마음으로 셰익스피어 번역을 처음으로 시도했던 것임. 현철의 시도로 그 후에 많은 어문학자와 연극인들이 셰익스피어 번역에 박차를 가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열기는 사그라들어버림. 왜냐하면 연극계에도 현실 참여 문제에 귀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셰익스피어류의 고상한 연극 보다는 비판적 리얼리즘 연극에 눈을 돌렸기 때문임.
(현철 번역의 하믈레트)
이후, 광복을 거쳐 한국 전쟁이 끝나고 모든 것들을 재건하면서 한국의 대학들이 들어서게 됨. 대학이 개설되면서 가장 먼저 들어선 학과 중 하나가 바로 영문학과인데 그 덕에 셰익스피어 연구도 다시 빛을 보게 됨. 이 때 셰익스피어를 전문으로 번역하는 우수한 영문학자들이 대거 출몰하는데 대표적으로 김재남, 최재서, 이종수, 여석기, 이근삼이 그러한 분들임. 여기서 이근삼은 연극에 관심있는 독붕이라면 알 법한 바로 ‘국물 있사옵니다’의 그 이근삼이 맞음. 여하튼 이로서 마침내 셰익스피어 전집 번역이 시도 되었고 마침내 1964년 정음사에서 셰익스피어 전집이 나타나게 됨. 김재남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 김재남 교수가 모든 작품을 번역한 것은 아니고 다른 번역가들과 함께 작업을 했음. 이후 1992년에 출간된 을지서적의 삼정판 셰익스피어 전집이 김재남 교수가 통째로 번역한 판본임. (물론 나는 소장하고 있음. ㅋㅋ 소소한 책자랑임)
연대기식으로 글을 쓰려니 너무 길어지네. 후일에 기회가 되면 다른 번역본들을 소개해보겠는데 그 전에 먼저 주지하고 넘어가야할 부분을 이야기 하겠음.
셰익스피어 희곡은 크게 세가지 판본이 있음. 제 1 사절판, 제 2 사절판, 그리고 이절판임.
간략하게 이야기 하자면 제 1사절판은 배우들이 상연하기 용이하도록 편집한 희곡임. 그래서 저질판본이라는 오명도 함께 따라붙음 제 2 사절판은 셰익스피어가 완성한 원고를 의도에 맞게 여러차례 수정한 판본임. 셰익스피어의 작의에 가장 가까운 형태의 판본임. 그리고 이절판은 셰익스피어 사후에 여러 단체나 연출가들이 각각의 시의성에 들어맞게 상연하기 위해 수정한 판본임. 그러므로 국내에 소개된 대부분의 번역은 제 2 사절판을 근거로 하고 있으나 이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번역본들이 그렇지 않은 것들보다 더 많음. 김재남 교수도 이전의 저작들에서는 제 2 사절판을 번역했다고 밝혔으나 삼정판에서는 밝히지 않고 있음. 이게 왜 중요하냐면 제 1 사절판은 저질판본이라고 하지만 당대 엘리자베스 시대의 연극 실황을 이해하기에 가장 좋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음. 그래서 제 1 사절판본은 여타 판본에 비해 속도감이 굉장히 빠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음.
좌우지간 최재서, 최종절, 김종환, 로얄 셰익스피어 컴퍼니 번역은 추후에 소개하도록 할게.
(이건 내가 소장하고 있는 을지 삼정판 셰익스피어 전집. 운좋게 압도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구함. ㅋㅋ 크기 비교를 위해서 인류의 범죄사를 올려 놓았음)
흐에에 머리 아파 걍 문지 벽돌로 갈래~
하지만 글은 재밌게 읽었다 정보추
재밌게 읽어줘서 ㄱㅅㄱㅅ
아아 삼정판 얼마에 샀어 ㅠㅠ
4만원 ㅋㅋㅋ
와 엄청나네.......ㅠㅠ
헌책 수집이 취미라 헌책방 잠복한지 1년만에 구함
제1사절판 원서는 출판사 뭐뭐 있음